잔여임기 일정 밝혀야
  • 정리·한종호 기자 ()
  • 승인 199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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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 / 정치문화에서의 민주화 필요하다 김종철 / 실질적인 민주개혁 추진해야 한다

 사회(안병찬 편집국장) : 《시사저널》은 난국 타개를 위한 시국대토론을 준비했습니다. 이 대담은 이번 토론회의 결론 부분입니다. ‘노태우 정권 잔여임기의 과제’를 중심으로 토론해보겠습니다. 현재 국민들의 개혁 및 변혁에 대한 요구가 6공 들어 가장 높게 일고 있습니다. 우선 위기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정국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겠습니다.

 김학준: 먼저 정부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5월9일 6공 수립 이래 최대 인파가 참여한 시위가 있었지만, 과연 이러한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 사태인가에 대해서는 보는 분에 따라서 의견차가 있을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번 사태는 87년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87년의 사태는 이른바 4·13호헌선언에서 비롯되어 6·10시위를 거쳐 전국적인 국민 항의로 확산된 양상을 보였습니다. 호헌선언 자체가 반민주적이고 역사의 흐름을 역류시키려는 결정이었기 때문에 국민적 항의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라는 유감스럽고 개탄스러운 사태가 일어나 국민의 분노를 더욱 촉진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6공 정부가 민선정부로 출범했고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데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우발적인 것입니다. 정부는 있는 그대로 잘못을 시인하고 관련자를 처벌 문책했으며, 총리는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대통령도 두차례에 걸쳐 국민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또 이러한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국민 대다수는 5·9 시위에 상당히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요컨대 정부는 최근 상황을 위기상황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김종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김보좌관의 말씀에서 상당한 시각차를 느낍니다. 물론 현 정국이 87년 6월항쟁 때와 같으냐 다르냐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노동자나 대학생 등 운동권은 현 상황이 87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고 6·29에서 약속된 민주화도 이행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강경대군 사건 이후 일련의 사태를 보면 정권퇴진 투쟁으로 몰아가야 한다는 인식에 있어서 오히려 87년 당시보다도 그 강도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강경대군 사건은 이런 분위기에서 국민의 저항 의식에 불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87년에도 단순히 4·13 호헌발표에서만 국민의 저항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누적된 원인이 있습니다. 80년 전두환씨가 집권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점, 광주에서의 동족살상, 전두환씨 일가의 부정부패와 대형 금융사고, 남영동 안기부 등 정보기구들에 의한 인권유린 등 누적된 모순이 결국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터진 것이죠. 정권을 보는 대중의 눈은 이런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납니다. 저는 정부가 현 정국을 위기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여기서 잠시 최근의 분신사태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분신을 집단적 신드롬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혁명적 순교로 파악하기도 합니다.

 김학준: 분신은 모두가 슬퍼해야 할 불행한 사태입니다. 특수한 신념 때문에 목숨을 끊는 것 자체를 신성시하는 풍조는 사라져야 합니다. 분신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건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김종철: 분신을 사회심리적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분신을 전염이나 사회적 증후군으로 보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분신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러한 행위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무력을 통한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변혁의 방법에 있어서도 가두투쟁이냐 선거혁명이냐 등으로 갈려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대중의 힘에 기초해야 한다고 촉구하지만 그 접근 방법이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사회: 노대통령의 임기는 93년 2월에 끝이 납니다. 일부에서는 노대통령을 마키아벨리주의자로 보기도합니다. 취임 후 지금까지 노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보면 초기에는 공권력을 통한 억압방식은 자제하고 유인과 설득으로 상당히 유연하게 민중융합책을 쓴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후기로 갈수록 강성 친위내각을 구성해서 공세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는 6·29 당시의 약속과도 상충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노대통령은 잔여임기 동안 어떤 과제를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김학준: 노대통령의 정치적 출발점은 6·29 선언입니다. 그 의미는 약 30년에 걸친 권위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여는 것입니다. 취임과 더불어 민주화를 다짐했고 더 나아가 북방정책으로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대다수 국민은 6공 들어 민주주의가 진전되었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외국인들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역류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6공에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도적 민주주의는 상당 정도 완성됐습니다. 이제 앞으로 정치문화와 정치형태에 있어서의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공명선거의 전통을 뿌리내려야 합니다. 이번 기초의회 선거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모범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런 전통을 광역의회선거와 14대 총선에서도 확립해야 합니다.

 김종철: 안국장 말씀처럼 노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강도가 초기와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3당합당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6·29가 국민에 대한 항복이라고 했지만 5·9시위를 보면서 항복한 증거가 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3당합당은 안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29가 정말로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라면 4·26 총선도 국민의 뜻이었습니다. 4당구도에서 어느 정도 민주화가 추진되다가 합당 후 전부 후퇴했습니다. 6·29에서 약속한 것도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5공 당시보다 구속자수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언론에 있어서도 KBS 사태에서처럼 방송통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5공 당시보다 오히려 세련된 언론통제의 징후가 있습니다.

 사회: 현 사태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누적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불신도 심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대통령이 잔여임기에 구상하고 있는 정치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여론도 높습니다.

 김학준: 정치는 순리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는, 소위 작위의 정치에는 무리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정치가 동양문화에도 맞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벌써부터 대권구도니 후계구도니 하면서 문제 삼는 것 자체가 혼란의 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후계자는 민자당 내에서 자연스럽게 헌법 및 법률의 틀, 그리고 당헌에 의해 정해져야 합니다. 작년부터 대권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과연 이런 이야기를 할 때인지 의심스럽고 또 이런 것을 떠드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애국심을 갖고 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습니다.

 김종철: 순리의 정치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합당 이후의 정치는 순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합당 전에는 어떻게 보면 지금에 비해 안정된 상황이었습니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여소야대 정치가 불편하게 느껴졌겠지만 이를 뒤바꾼 것은 순리가 아닙니다. 노대통령이 좀더 양보를 하고 민주화를 계속했다면 오늘과 같은 혼란상황이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현 정권의 도덕성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언론의 보도를 떠나서라도 민자당의 인기도는 최하 수준입니다. 6·29선언 8개항 가운데 제대로 이행된 것이 뭐가 있습니까. 대통령선거 전에 약속한 중간평가도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합당 이후에는 헌법을 지켜나간다기보다는 권력의 연장을 도모하지 않느냐 하는 의혹도 높게 일고 있습니다. 이런 시국에서 노대통령이 앞으로의 일정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노대통령은 임기 1년 전에 경선으로 차기후보를 결정하겠다는 의견을 여러차례 밝혔습니다. 이에 대한 예측이 가능할까요?

 김학준: 그것은 민자당 당원들이 결정한 문제입니다. 국민의 뜻과 역사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김종철: 과거의 사례가 참고가 될 것입니다. 노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노대통령은 12·12나 5·17당시 신군부로서의 역사적 짐을 지고 있습니다. 노대통령이 그간의 공과에 대해 자신있게 깨끗하게 물러갈 수 있을지 냉정하게 판단해볼 때 ‘믿어도 좋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3당합당 10일 전 노대통령은 “인위적 정계개편은 안한다”고 했다가 3당합당으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런 이유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국민들의 불신을 사고 있습니다.

 사회: 내각제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갑시다. 노대통령의 ‘3김 역할론’과 관련해서 내각제를 생각할 수 없습니까?

 김학준: 전적으로 저 자신의 생각이지만, 내각제도 분명히 민주주의의 한 제도입니다. ‘내각제=반민주’라는 등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각제를 채택한 선진 각국은 모두 반민주국가 입니까. 내각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를 불온시하는 일부의 시각에 우선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노대통령도 6·29선언에서 개인적으로는 내각제를 선호하지만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개헌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또 이를 일방적으로 통과시킬 수도 없습니다.

 김종철: 국민이 원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문제일텐데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국회에서 정할 문제입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여소야대 정국이 민정당에 불편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과거의 정치경력이나 동질성으로 보아 민정·공화당의 최소 합당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민주당을 포함하여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가졌는데 이는 내각제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생겨납니다.

 사회: 이제 향후의 시국안정 방안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종철: 야당지도자들이 민주개혁이나 구국의 명분을 걸고 여당에 들어갔는데 야당시절에 약속한 것들을 합당 이후에 전부 지키지 않으니까 정치를 편하게 바라볼 수 없습니다. 정부는 공공연히 북한과의 교류를 추진하면서도 재야에서 접촉하려하면 이를 일체 불허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왜 이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정부의 모순된 정치행태에 대한 불신이 많습니다. 다소 기계적인 논리이긴 하지만 정부가 이를 빨리 해결하면 사회가 안정되겠지요.

 김학준: 노대통령 취임 이후 민주화 다음으로 역점을 둔 사업은 북방정책으로 평화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한·소관계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게 충격적 사건이 있어야만 변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사건의 연속’은 없을 것입니다. 남북관계는 지금 본질적으로 조정되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방북자는 정부의 허가를 밟도록 되어 있는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사회: 분배와 성장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물가고와 공해, 주택난이라는 삼중고에 국민들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노대통령의 집권후기 대책은 어떤 것입니까?

 김학준: 민주주의를 제도적·외형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풀어가려면 부의 균형 배분을 통한 계층간 지역간 갈등을 완화하는 일이 대단히 시급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6공 출범 이후에 하늘에서 떨어진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60년대 이래 공업화를 중심으로 한 근대화 정책에서 이미 배태된 문제입니다. 또 공해문제에 있어서는 사회 각 부문과 국민의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이를 모두 특정 정권의 책임으로 몰아치는 것은 결코 문제 해결의 단서가 아닙니다.

 김종철: 미국·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자본주의는 대재벌이 권력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재벌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가진자 위주의 정책을 하루아침에 일소하기는 힘들겠지만 근본적인 경제정책의 뼈대를 바꾸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수 국민의 경제적 평등과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회: 정치불신이 요즘처럼 팽배해서야 앞으로 있을 광역의회 의원선거, 총선, 대통령선거를 제대로 치를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김학준: 총선은 민의가 정확히 표현되는 선거가 될 것입니다. 그만큼 선거에 임하는 정당들이 후보선정과 정강정책 채택에 있어서 참신하고 자기 희생적인 전환을 보여야 할 중대한 계기이기 때문입니다.

 김종철: 지금 상황으로 볼 때 6월말 광역의회 의원선거가 제대로 치러지기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적 허무주의와 냉소주의 시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야당지도자들도 자신의 정치수명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대권 운운하면서 천박한 권력지향적 행동을 계속해서는 국민들이 희망을 갖기 힘들 것입니다.

 사회: 노태우 정권 잔여임기의 과제는 역시 국내 정치문제에 집중된다고 하겠습니다. “국민 전체 의사를 받들어 권위주의를 불식하겠다”고 한 민주화 혁명의 행보는 잔여임기의 큰 숙제입니다. 그동안 대증요법에만 치중한 듯한 노대통령의 정치역량은 그가 취임사에서 약속한 대로 ‘민주주의의 지도와 국민화합의 나침반’을 가지고 항진하느냐로 판가름날 것이라고 봅니다.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상황인식이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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