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군보다 세다
  • 김당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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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집단이나 단체 또는 세력을 꼽는다면 어디를 들 수 있을까.《시사저널》은 지난 89년 10월 19일 창간 이후 해마다 창간 기념일을 앞두고 일반 국민과 각계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 응답에 따르면 해마다 순위의 변종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획기적인 판세의 변화는 처음 있는 일이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넓은 의미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는 군 ·안기부 ·검찰 등 국가 권력을 떠받치는 중추 조직과, 이들과 팽팽한 길항관계를 유지했던 재야 및 학생운동권의 영향력 약화이다. 그 대신 사회 ·시민운동 단체, 소비자보호단체, 경제인 단체 및 노동조합, 변호사 단체 등 이익 단체들의 영향력은 커졌다. 이같은 변화는 이른바 좌우 세력의 퇴조와 중간 세력의 부상으로 해석된다.

그중에서도 영향력이 가장 큰 단체로 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사무총장 서경석)이 꼽힌 것은 경실련 관계자들조차도 송구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놀랄 만한 일이다. 특히 경실련은 표본 별로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모든 세대에 걸쳐서, 그리고 행정관료 교수 경제인 언론인 정치인 사회 ·시민운동가 등 6개 분야 전문가 집단 모두로부터 영향력 1위라는 고른 지목을 받았다. 경실련의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한 분야는 언론계와 사회단체 그리고 경제계였다.

민자당 ·안기부도 영향력 퇴조
반면에 지난 90년부터 줄곧 영향력 1위를 지켰던 민자당은 이번에 9위로 몰락했다. 지난 3년간 10위권 안이었던 이른바 ‘대구 ·경북세력’이 아예 세력 지도에서 사라진 것은 달라진 정치권의 판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상위 그룹이었던 군부와 안기부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 또한 새 정부 이후 펼쳐진 일련의 숙군 및 사정 작업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특이한 점은, 권부의 핵심인 청와대 비서실의 영향력(92년 4위)이 10위권 안에도 들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청와대 비서실을 힘 있는 집단이나 세력으로 꼽기에는 김영삼 대통령 개인의 영향력(권력 집중 현상)이 너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

지난 90년에 특히 큰 영향력을 차지했던 전대협(한총련의 전신) ·전민련 ·전노협으로 상징되는 학생 ·재야 ·노동 운동권의 퇴조도 뚜렷하다. 다만 노총(4위)과 전노협(7위)이 진보세력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10위권 밖이지만 전교조와 환경단체 또한 도덕성을 무기로 잠재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여전히 건재하는 세력은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과 종교집단 그리고 언론매체이다. 특이한 점은 시민단체 범주에 포함된 소비자보호단체(3위)가 떠오른 점이다. 이러한 현상 또한 정당의 영향력 약화와 함께 이익 ·압력 단체의 영향력 강화를 예고해 준다.

피부에 닿는 정책 대안이 국민 신뢰 얻어
경실련의 뚜렷한 부상과 이러한 이익 ·압력 단체가 상위권으로 올라선 것은 개인의 영향력 판도변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15쪽 설문 참조). 정치인이나 공직자를 제외한 민간부문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10인의 영역을 보면 재계(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등 5명) 종교계(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 시민운동(서경석 목사) 재야 ·통일 운동(문익환 목사) 등이다. 눈에 띄는 점은 목사가 3명이나 되지만 그 활동 영역은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직업적 시민운동가인 서목사(6위)가 교계의 원로인 한목사와 재야의 대부인 문목사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평가받은 것은 우리 사회의 집단세력 판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목사는 젊은층과 언론계로부터 상대적으로 크게 인정받았다.

경실련과 서경석 목사의 영향력이 이처럼 커진 배경은 경실련이 창립 이후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온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정부도 속수무책이던 한 ·약 조제권 분쟁 조정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설문조사 전에 언론에 크게 부각된 경실련의 한 ·약분쟁 중재 노력과 조정 능력이 시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우 세력의 퇴조라는 시대흐름과는 별도로 한낱 시민운동단체가 전경련과 노총 등 거대한 이익단체와 종교 집단, 언론매체의 힘을 앞질렀다는 것은 놀라운 현상이다.

상여금 없이 월급만 94만원인 한 전업 시민운동가가 재벌 총수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고, 회원이 1만명인 시민운동 단체가 수백만명을 조합원으로 거느린 노동 단체들보다 더 큰 힘을 갖는 현실을 이른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퇴색’만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소신 있는 개량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서경석 사무총장의 답변은 간명하다. “일단 민주화가 되면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합법적인 방식으로 개혁되기를 원한다. 합리적인 대안 모색과 정론 피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급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선한 의지를 조직화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추구하는 것이 경실련 운동의 가장 큰 힘이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경실련의 영향력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뒤 이른바 국민의식 개혁을 위한 정부의 시민운동 활성화 방침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와 고리를 맺고 있는 ‘경실련사람’으로 행정부와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도 한완상 ·황산성 장관과 정성철 정무1차관 이세중 대한변협회장(부정부패방지위원장) 인명진 목사(행정쇄신위원) 신대균 목사(행정쇄신 실무위원) 등 10여 명이나 된다.

물론 경실련의 자산은 60여 명의 헌신적인 실무간사와 2백여 명의 우수한 연구원들이다. 그중에는 교수직과 민간기업 연구소장직을 버리고 경실련 상근을 택한 유재현 박사(경제정의연구소장) 같은 이도 있다. 그리고 이들이 내놓는 실질적인 프로그램과 정책대안들이 바로 경실련의 위상과 영향력인 셈이다

실제로 경실련이 표방하는 ‘중간층의 지지를 받는 개혁적 시민운동’은 주택임대차법 개정과 토지 ·금융 ·세제 개혁에 관한 정책대안의 제시 등 국민의 피부에 닿는 쟁점 부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 왔다. 각종 선거에서 공명선거 캠페인을 주도한 것이나 이문옥 감사관과 이지문 중위의 양심선언을 이끌어낸 것 등도 경실련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에는 부정부패 추방운동본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 운동협의회(정사협), 우리쌀 지키기 범국민대책회의 등과의 폭넓은 연대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경실련은 활발한 발언에 견주어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실련이 기대고 있는 이른바 중간층의 ‘좌고우면’하지 않는 태도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서목사의 지론대로 ‘민주화되었기 때문’인지도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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