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의 등잔’ 러시아군부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199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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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위기 두번째 도와

러시아를 국난에서 건진 수훈 갑은 러시아군이었다. 구국의 주역이 옐친도 아니고 시민도 아닌 군대였다는 사실은, 군의 파생적 돌출로 30년 한 세대를 정치적 미망 속에서 시달려야 했던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CNN 방송을 통해 지난3~4일의 모스크바 내란상태를 소상히 파악해 온 미국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모스크바의 ‘하얀집(의회)’에 출동한 무장 군인들의 군복 소매에 달린 흰색 천 조각에 주목했다. 다음날 새벽에 배달된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는 그 흰색천의 비밀을 모스크바 현지 특파원발 뉴스로 신속히 풀어왔다. 그것은 ‘나로-포민스크 부대’의 부대원 표시였다.

이 부대는 모스크바 남서쪽 20km 지점에 진주한, 우리로 치면 수도의 외곽 방어를 맡는 기갑부대였다. 여기에 인근 ‘칸텐미로브스키 사단’의 보병부대가 가세했다. 만에 하난 군과 군끼리 피아를 구별하지 못해 교전하게 될까 봐 소매 끝에 하얀 천을 단 것이다.

나로-포민스크 부대는 지난 91년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키려던 극우 세력의 불발 쿠데타를 진압하는데도 혁혁한 전과를 올린 부대이다. 당시 탱크에 올라서서 맨손으로 호령하던 옐친에게 감복해 그가 대통령 자리에 앉는 데 결정적으로 수훈을 세운 부대가 바로 나로-포민스크 부대였다. 이 부대는 이번 내란에도 옐친을 위해 또 한차례 알라딘의 램프 구실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옐친에 관한 한 무조건 충성과 지원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군 나름의 자체 평가와 진로 결정에 따른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내란 상태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3일 밤, 러시아 육군본부에서는 사태에 대한 분석과 군의 진로를 놓고 심야 회의가 열렸다고 미국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국방장관 파벨 그라초프 주재로 열린 이 날 밤 회의의 최종 결정 사항은 내란으로 군이 분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러시아군은 옐친을 선택하고 그의 정치 라이벌인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통령을 포기했다.

군의 내분을 막아야 한다는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러시아군의 이번 조처는 어찌 보면 가장 이기적 성격을 띤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군의 이기적 성격과 관련지어 생각할 때, 이번 내란 사태의 주모자 격인 루츠코이 부통령의 무분별한 처사는 군과 결별을 초래해 옐친에게 승리를 안겨 준 요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루츠코이 부통령이 군에 대해 취했던 가장 결정적인 과실은 두가지로 집약된다. 먼저, 루츠코이 부통령은 지난 9월 의회의 이름으로 옐친 대통령을 탄핵한 직후 강경파 장성인 블라디슬라프 아찰로프를 새 정부의 국방장관으로 기용했다. 아프간 전쟁 참전 용사출신으로 군 내부에서 상당수의 지지 세력을 유지해 온 루츠코이 부통령이 평소 군에서 자기를 지지 옹호해 온 아찰로프를 국방장관으로 전격 발탁해 옐친 휘하의 국방장관 그라초프와 대립하는 이중구조의 국방 체계를 만든 것이다.

루츠코이의 이같은 개편 구조는, 군부 내에 새로운 판도가 형성되는 것을 우려하는 기존 세력층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군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 됐다. 누구보다도 옐친 휘하의 현 국방장관 그라초프로 하여금 신변 위협을 느끼게 만든 것이 결정적 잘못이었다.

두번째 실수 역시 루츠코이의 무모함에 기인한다. 내란이 발발한 일요일, 루츠코이와 그의 극우 공산세력 지지자들이 의사당을 장악했을 때 이를 진압하는 데 실패한 내무부 휘하 경찰 병력은 완전히 지리멸렬 상태에 빠졌다. 경찰 대열은 완전히 무너졌고 이 중 상당수는 극우 데모 군중 속에 합류해 버렸다. 바로 이 순간, 루츠코이가 폭도화한 데모군중을 선동하여 텔레비전 방송국을 장악하라고 명령한 처사가 군의 심기를 결정적으로 건드렸던 것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내란 사태를 염두에 둔 행동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옐친은 옐친대로 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군을 자기편으로 돌리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회와의 대결이 점차 중대 국면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그의 군부대 방문 횟수도 점차 늘어났다.

지난 9월1일에는 군부대와 경찰부대를 하루 동안에 번갈아 방문해 군의 최대 관심거리이자 사기 진작의 요체라 할 수 있는 봉급을 인상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장 ·사병들로부터 열렬한 성원과 충성을 다짐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러시아 군부는 이러한 임시 처방으로 군의 고질적인 처우 문제를 쉽게 해결할 것으로 낙관하지는 않는다. 옛 소련이 붕괴한 후 물가고에 허덕여온 러시아 시민 사회의 곤궁은 군 출신 가족에게도 그대로 적용돼, 군에 대한 처우 문제야말로 장차 러시아의 개혁을 저해할 가장 유력한 잠재 요인의 하나로 지목돼 왔다.

따라서 러시아군의 이번 선택과 조처를 옐친이 처방한 단발성 앰풀주사의 효과로 파악하기보다는 러시아군(정확히는 옛 소련군까지도)이 전통적으로 지녀온 '정치 불개입‘ 원칙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파악하는 것이 미국의 러시아 문제 전문가들이 내리는 공통된 진단이다.

그리고 이번 ‘거사’에 출동한 흰 천을 두른 병력이 의외로 적었던 것도 관심거리의 하나가 되고 있다. 러시아 문제 전문가들은 지금이 한창 감자와 야채 수확기인 만큼 군병력 대부분이 집단농장에 사역병으로 투입된 데다, 모스크바 일원을 제외한 다른 변경 부대에서는 이번 내란 사태를 끝난 뒤에야 알 정도로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옐친체제가 더욱 공고화한 현 시점에서 군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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