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여론도 '돌파' 대상인가/실무 장관 경질로는 미흡…'총체적 점검?책임' 새 모습 보일 때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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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훼리호 참사

서해훼리호 침몰 참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대형 사고'임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이 사고는 金泳三 정부의 '위로부터의 개혁'이 안고 있는 한계와 행정부의 '집단적 무사안일' 행태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선박 안전도 검사, 선박 입?출항 관리, 정원 관리, 무선 교신 등에서 정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태만과 직무 유기는 도처에서 입증됐다. 심지어 사고 7일 만에 인양된 '서해훼리호'가 인양된 지 12시간 만에 다시 침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데 이어, 18일 새벽에는 서울에서 전동차 탈선 사고까지 일어나 '행정 전반의 안전도'에 대한 위기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회 일각에서는'서해훼리호 사고는 김영삼 정권이 중간평가를 받아야 할 사안'이라는 비판론이 크게 울려 나오고 있다. 그만큼 단순한 대형 참사가 아니라, 대통령과 내각의 뼈저린 각성과 자각 그리고 국정 운영의 총체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金泳三대통령은 18일 오전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 등 실무 부처 책임자만 문책 경질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면서 '공무원 기강 확립'과 '국민 의식 개혁'을 강조하는 쪽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문책인사 직후 임시 국무회의를소집해 "공무원의 무사 안일주의는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공무원의 기강 확립과 국민 차원의 의식 개혁 운동을 강조했다.

 결국 김대통령은취임 8개월 만에 정치적인 '삼각파도'에 직면하고서도 우회하거나 선회하는 대신, 그 특유의 정면돌파지만, 사고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에서보자면 안이한 상황 인식이자 기대에 못 미치는 미온적인 사태 수습책이 아닐 수 없다.

 김대통령은 전복참사 발생 초기만 해도 민심 수습 차원에서 총리까지 포함하는 대폭 개각, 또는 그동안 거론돼온 몇몇 문제 장관을 이번 기회에 경질하는 소폭 개각 방안도 폭넓게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민심 수습형 개각보다는 문책 인사 쪽으로 김대통령의 의중이 기울자, 경질 폭이 결정되기 전부터 청와대 주변과 언론에서는 '실무장관선 수습'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김대통령이 이처럼 미온적 방법을 택하나 까닭은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개각을 한다면 각료들이 소신껏 일할 수 없다"는 특유의 용병술과 인사에 대한 소신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측에서는 이번 실무장관 선의 인책만 해도 '장관을 자주 갈아치워서는 안된다'는 대통령의 소신에 비추어 볼 때 대단한 결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조기 당정 개편 가능성도
 그러나 김대통령은 이번 참사가 이 사회에 불러온 정치적 울림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듯하다. 우선 돌발적 사고라기엔 어느 부처나 할 것 없이 행정 관리들의 무원칙과 무사안일이 너무나 도드라졌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청와대 안에서만 머물고아래로 확산되지 않은 데다, 오히려 역대 정권에서 켜켜이 쌓인 관료주의의 병폐 위에 사정 한파를 피해 '무사히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태업 현상마저 얹혀져 잇따른 대형 사고를 초래하고있다는 느낌을 국민 대다수가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명 피해는 당초 예상했던 폭보다 훨씬 크고(18일 현재 사망자 2백74명),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까지 합치면 희생자는3백명 선까지 이를 전망이다. 한마디로 각료들의 소신 행정을 위한 배려를 운위할 국면이 아니라, 흩어진 채 불안해하고 불만스러워하는 민심의 가닥을 추스르는 일이 시급한 위기 상황인 것이다.

 물론 청와대 주변에서는 김대통령이 국면 전환 뒤 장기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정 국면을 마무리지으면서 연말쯤 단행할 예정이던 당정개편의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민자당 내에서는 구체적인 자리와 이름 들이 거론되기도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너무 늦으면 곤란하다. 국민 여론은 결코 정면 돌파의 대상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뼈저리게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여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 사고현장에 뒤늦게 줄줄이 내려가 브리핑을 받는 일로 현장 관계자들의 시간을 빼앗는 과거의 관행을 답습할 게 아니라,, 정부가 사안의 무게만큼 책임지는 새로운모습을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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