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영' 가능한가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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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전산망 구축과 '현지화' 치중…시기 상조 지적도



 중국 동북 지구 평원과 광개토대왕비, 호령 소리가 가미된 배경 음악. 올해 6월 재개된 대우그룹의 기업 광고는 많은 한국민이 오랫동안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만주 대륙을 경영했던 광개토대왕의 역사는 언제나 한민족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였다.

 이 기업 광고는 대우그룹이 지난해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기업에 거는 기대를 묻는 이 조사 결과 '해외 진출'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났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영'은 올해 3월에 지난 3년간 그룹 차원에서 실천했던 경영혁신 운동인'관리혁명'을 뒤이을 개념으로정해졌다.

 세계 경영을 주제로 한 기업 광고는 방영되고 있는 전자?통신편을 비롯해 자동차?건설?금융 분야의 연작 광고로 내보낼 예정이다. 대우그룹 내부에서는 이 광고의 기본 개념인 세계 경영이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해온 그룹 이미지와 가장 잘 맞는다고 판단한다.
 대우그룹이 다른그룹에 비해 더 많은 상품을 해외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은 아니다. 대우그룹의 모기업이자 간판수출기업인 (주)대우는 80년대 초반 수출 1위의 종합상사였으나 현재는 3위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그룹 전체의 수출액도 4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세계 경영이라는 구호가 자기네에게 어울리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대우 경영기획실장인 孫泰一 전무는 "세계 경영은 단지 수출이나 수출선 확대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한다.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전략을 구상하고, 그 전략에 따라 현지에서 경영 활동을 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대우자동차의 해외시장 진출 전략이 한 예가 된다. 대우자동차는 중국 러시아 우즈베크 이란 필리핀 페루 베트남 등지에서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2000년까지 연간 1백만대의 자동차를 해외에서 생산한다는 목표이다. 이는 전체 생산량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이다. 자동차 부품과 소재도 상당량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세계적 수준의 자동차 기술과 디자인도 선진국에서 흡수한다는 목표이다. 대우자동차는 2000년 매출 목표를 21조4천억원으로 세워두고 있다.

해외 지사와 현지법인 가장 많아
 대우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해외 진출을 위한 기반이 잘돼 있는 편이다. 우선 현지 진출의 척도라고 볼 수 있는 해외 지사와 현지법인의 수가 국내 그룹 가운데 가장 많다. 93년 현재 해외 지사는 86개에 이르고 현지법인은 58개에 달한다. 대우그룹이 내부적으로 2000년을 기준으로 정한 목표치에 따르면, 해외 지사는 1백여 개로, 연구개발센터를 포함한 현지법인은 2백여 개로 늘어나게 된다.

 더욱이 올해 말에 이르면 모든 해외 지사와 현지법인은 '대우글로벌 네트워크'라는 온라인 전산망으로 연결된다. 이 전산망을 통해 다달이 모든 해외 투자 자회사의 시산표가 전송된다. 본사에 있는 투자관리부에서는 이를 통해 쉽게 해외 네트워크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모든 해외 투자 자회사를 온라인 전산망으로 관리하는 그룹은 삼성그룹뿐이다.

 최근 들어 대우그룹은 해외 지사나 현지법인의 '현지화'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주재원들의 의식을 현지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을강화하거나, 해외 지사나 현지법인에서 근무하는 현지인을 물갈이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학력이 높고 능력이 뛰어난 현지인을뽑아 한국에서 교육시켜 활용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그동안 현지인들은 임금이 싼 통역직이나 비서직에 한해 선발해 왔다.

 대우그룹 해외시장 공략법은 다른 그룹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다. 위험이 높은 국가에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것이 공격적 해외 투자의 요체다. 이 점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기 전인 지난 87년 대우그룹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규모인 1천만달러를 투자해 福州에 냉장고 공장을 건설했다. 대우그룹 내부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대우그룹은 이 공장을 폐쇄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가끔 대우그룹의 진출전략이 무모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하는 것은 이런 시행착오 때문이다. 대우그룹 내부에서는 '세계 경영이란 구호가 너무 이른감이 있다'라는 지적도 있었다. 세계 경영이라는 말에 걸맞는 전략과 경영 활동은 95년 정도가 돼야 본격화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세계 경영이라는말은 간혹 어려운 선진국 시장을 포기하고 손쉬운제3세계나 개발도상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하는모양이다. 지난 11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대우그룹 분석 기사도 이런 뉘앙스를 풍긴다(이 기사의 요약 기사를 실은 국내 언론이 이 기사의 뉘앙스를 과장하거나 왜곡했는지 여부가 후에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대우전자의 배순훈 사장은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견해"라고 반박했다. 대우전자의 예만 보더라도 큰 규모의 해외 시장은 영국과 프랑스에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판매보다 기술 습득에 주력
 선진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 시장에 맞는 전략을 세우겠다는 것이라고 대우그룹측은 설명한다.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에서는 광고를통해 대우 상품을 알려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한국 상품이나 '대우 상품'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 선진국 시장에선다르다. 한 계열사 사장은 선진국 시장에서 광고를하려니까 현지 협력 업체가 말렸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선진국 시장에서는 장기적으로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갖춰나가는 수밖에 없으며, 이를 단기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반면 선진국 시장은 첨단 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현재 2개뿐인 해외 기술개발센터의 수를 2000년까지 20여개로 늘리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독일에서 자동차 기술과 관련된 연구소를 세우고 옛 소련 지역에서 과학기술 인력을 활용하는 연구소를 추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마케팅에 강하다고 알려져온 대우그룹은 최근전사적인 기술전략을 정립해 가고 있다. 새로운 기술개발 전략의 핵심은 '단순히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늘리느냐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얼마나 적재 적소에 하느냐'하는 데 더욱 신경을 쓰자는 것이다. 해외에 연구소를 설립하거나 인수해 첨단기술을 흡수하자는 전략도 한 예이다. 기술전략의 핵심은 그룹 전체의 기술개발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독립 사단법인인 고등기술연구원을 설립한 데 있다. 이 조직은 이미 개발돼 있는 기술을 잘 활용해 새로운 상품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 계열사별로 운영하는 연구개발 조직과는 별도로 운영된다. 고등기술연구원의 任孝彬 부원장은 "하이테크든 아니든 개의치 않고 각 계열사가 빠뜨린 연구, 수익성에 상관 없이 장기적으로필요한 기술을 연구하는 데 힘쓸 계획"이라고밝혔다. 경영 전반을 고려하면서 기술개발을 하자는 기술 전략은, 단순히 기술자뿐만 아니라 그룹 임원들도 참여하는 기술관련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기술위원회를 발족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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