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의 권세'부터 꺾어라
  • 이풍(경영인.경제학 박사) ()
  • 승인 1993.10.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썽꾸러기 문제 학생은 까까머리에 새까만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던 옛날에도 있었고, 긴 머리카락에 아무 옷이나 입어도 좋은 오늘날에도 있다. 마찬가지로 검은 돈을 주고받는 일은 친지의 이름을 빌려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던 때에도 있었고,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고 나서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공부를 게을리하면 큰 일이다. 이는 개혁해야 한다. 그런데 개혁에 성공하려면 학생들의 머리를 까까머리로 만들어서 나쁜 곳에 다니며 못된 짓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검은 돈을 주고받는 일 때문에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가 건설되지 못하면 큰 일이다. 불로소득 계층 때문에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면 큰 일이다. 이는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개혁이 실명 금융 거래라는 수단만으로 성공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의 이름을 빌려 쓰거나 가짜 이름을 쓰기 때문에 정경 유착이나 불로 소득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 대화문에서 금융실명제가 '신한국' 건설을 위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제도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듣는 사람이 잘 새겨듣지 않으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2000 신한국'에서 대통령은 "경제를 파멸로 끌고 가는 만병의 근원이 부동산 투기"라고 정확히 진단한 다음에, 이를 근절하기 위한 처방으로 '토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철저한 세제 개혁'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중요한 토지 세제 개혁이나 그밖의 중요한 개혁에 도움을 주는 조처 가운데 하나로 금융실명제가 꼽혔을 뿐이다.

 그러므로 개혁 주도 세력이나 일반 국민이나 금융실명제가 정말로 중요한 개혁이라고 착각해서도 안되고, 금융실명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현상이크게 줄어들지 않는다고 해서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혁이 실패했다고 단정해도 안된다.

 조세 개혁?행정 개혁?정치 개혁처럼 실질적으로 중요한 개혁은 아직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은데, 이러한 개혁은 금융실명제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추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이 성공하면실명을 쓰라는 대통령의 명령이 없어도 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제 이름을 밝히며 거래를 할 것이다. 명예를 배설물처럼 여기는 성자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보통 사람들은 이름을 밝혀서 부끄럽게되고 손해를 보게 되지 않는 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앞당겨 시행한 것은, 조세 개혁처럼 중요한 것들을 앞으로 꼭 추진함으로써사람들이 제 이름을 밝히며 부를 축적하고 향유하는 사회를 이룩하도록 하겠다는 굳센 의지를 보이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토지 투기 이익 환수해야 경제 정의 가능
 대통령의 솔선수범 때문에 공직자들이 마지 못해 재산을 공개함으로써 드러났듯이, 우리 사회에는 불로 소득으로 재산을 축적했기에 정체를 감추려는 사람들이 너무나많다.

 그런데 불로 소득이 합법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채, 재산공개를 통해서 몇몇 공직자들만 도덕적으로 지탄하고 일자리에서 내쫓는다고 해서, 또는 실명제를 통하여억지로 검은 돈 임자의 이름이 밝혀진다고 해서, 이미 축적한 더러운 재산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더러운 재산을 축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지향하는 사회, 곧 평등의 원리에 따라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하는 사회를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불로 소득의 원천이 사라져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원천인 토지 투기와 토지 사유가 바로잡혀야 한다. 토지 투기는 대통령이 말했듯이 경제적 고질의 근원이다. 그러나 토지 투기도 토지 사유가 바로잡힐 경우에는 근절할 수도 있다. 토지 투기만 억제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헨리 조지가 1백여년 전에 말했듯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토지 소유는 귀족층의 근거이자 거대한 재산의 기초이며 권력의원천'이다.

 토지의 권세는 대단히 크다. 지주들의 힘은 무척 세다. 오늘날 스스로 '지주'라고 행세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주는 국회의원일 수도 있고, 장관일 수도 있으며, 기업가일 수도 있고 노동 귀족일 수도 있다. 지주의 권세를 꺾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들이 화적과 다를 바 없이 땀 흘리지 않고 차지해 온 토지 가치는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로 귀속되어야 한다.

 이렇게 개혁된다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땅은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함께잘 쓰라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