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의 예술, 90년대의 주역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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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신예’들을 통해본 전망 - 지난 10년의 한계와 성과 승화될 듯

 ‘내용적 급진주의’와 ‘형식적 급진주의’로 대별되는 특징을 보여왔던 80년대를 보내고 새 연대기를 맞이한 시점에서 본지는 90년대의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등 우리 예술계를 이끌어나갈 젊은 주역을 발굴, 90년대 예술의 과제를 염두에 두면서 이들 젊은 예술가들을 주목하고자 한다.

문학 : 金永顯
역사창조의 생명력 표상

 젊은 소설가이며 시인인 金永顯(35)씨는 ‘90년대 문인’의 선두주자이다. 그는 창작과비평사의 《84신작소설집》에 단편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고 88년 시집 《겨울바다》 (풀빛)를 출간하면서 시인이 되었다. 그는 발표작보다는, 아니 발표작 때문에 ‘신예’라는 문학적 신분을 넘어서서 90년대에 그가 발표할 문학에 더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문학을 통해 사회변혁을 바라마지 않는 ‘문예운동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문학적 장인정신’을 함께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89년 이상문학상 물망에 올랐던 그의 소설 <멀고 먼 해후>를 평론가 李御寧씨는 “신인급으로서 이 정도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작가가 이번 이상문학상의 심사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이 기쁘다”라고 말했다. 나이 많은 평론가들이 그의 형식적인 면에 박수를 보냈다면 30대 전후의 평론가들은 김영현씨의 주제의식에 높은 평가를 내린다. 89년말 실천문학사가 펴낸 《올해의 소설 1990》에서 젊은 평론가 정호웅씨는 김씨의 소설 <포도나무집 풍경>에 대하여, “미래를 향해 빛나는 역사창조의 생명력을 표상한 점에 크게 주목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영현씨는 84년에 등단했지만 시집 《겨울바다》를 펴낸 직후인 88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갔다. 87년 대통령선거를 마치고 극동의 패배감에서 다시 일어서는 운동권 지식인을 그린 <포도나무집 풍경>을 시작으로 89년말 <달맞이꽃>에 이르기까지 그가 발표한 10여편의 소설들은 평론가와 저널리즘 그리고 독자들뿐 아니라 비슷한 연배의 작가들로부터도 큰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그를 ‘90년대의 작가’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70년대 대학 운동권 출신이다. 서울대 철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77년 문리대 ‘편집부’ 결성과 관련돼 이을호, 김사인 등과 함께 투옥, 징역 1년6월을 살았고 석방 즉시 ‘강집’(강제징집) 돼 3년 동안 전방에서 근무했다. 4년반 동안 유폐의 시절을 보내고 80년대 초반 대학을 졸업했다. 어린이들을 위해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있다가 노사문제로 그만두고 잠시 월간 《노동문학》 편집장을 맡았었다.

 ‘후배들에게 쫓기는 재교육 세대’로 80년대 중반을 지나, 80년대 후반에 들어 소설을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성숙되었다고 그는 80년대를 들이켰다. 광주항쟁과 그 이후 우리사회 변혁운동의 변화된 국면은 문학 내부에서 민족 · 계급 개념/통일 · 노동문학 등 첨예한 사상투쟁의 긍정적 결과를 낳았지만 그는 “작가 자신의 노력들이 평론가가 미리 설정해둔 개념적 틀에 의해 재단되는 경우가 허다했다”면서 약간의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급속화 산업화는 “해체시 · 실험소설 등 다양한 문학형식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처럼 그는 문학적 편파성을 지양한다.

 그의 주제의식은 그의 시집과 그간 발표했던 10여편의 소설에 잘 배어 있듯 민중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를 개선하려는 ‘역사적 자아’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다. 실존적 자아에서 역사적 자아로 발전하는 과정을 그린 <벌레>, 수배중 체포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친구와 그 가족을 이야기한 <그해 겨울로 날아간 종이비행기>, 지배권력에 이용당했던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 40년이 지난 뒤 권력의 반인간성에 비로소 눈뜨는 <목격자>등 그 외 단편들은 내용과 형식이 탁월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는 80년대 후반, 작가로서 자신의 설 지점을 분명하게 찾았다. “선배 문인들의 전반적 인식 자체가 사회변화에 적응을 못했다면 후배문인들은 인식틀에 문학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세대의 문인들의 풍성한 민족문학의 틀을 형성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문제는 문학적으로는 80년대말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문학이 노동문학과 일정하게 진전될 것입니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역사적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이다. “역사 발전에 대한 신념을 저버리거나 비웃는 풍토가 우리사회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는 “요즈음이 80년대 초반 상황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벽두에 창작집을 묶을 예정이다. 그리고 전후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이 땅의 삶을 담아내는 장편소설에 곧 손을 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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