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있는 국회'를 바란다
  • 박권상(편집고문) ()
  • 승인 199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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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적인 사실은 정부가 하는 일을 무조건 감싸던 여당이 야당 못지 않은 정부 비판적 자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정기국회가 열리고 예산심의에 앞서국정감사가 한창인데 국정감사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의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인기를 의식한 폭로성 발언이 난무하고여야 간에 비생산적인 말다툼이 벌어져, 야당은 정부 하는 일에 대한 흠집내기 공세에 전력투구하는가 하면 여당은 무조건 정부측을 감싸는등 편싸움 비슷한 인상을 풍겼다. 한마디로 여야간 당쟁의 한마당이었다.

 예산 심의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사실을 확인하고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불가결한과정이 곧 국정감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정감사의 제일 목표는 정확한 사실 확인이요, 객관적이고 필요한 자료 수집이다. 여기에 당리당략이 작용하면 바른 정보를 입수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정보를 캐내지 못하므로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과거의 국정감사는 처음부터 여야 간에, 정부와 야당 간에 당리적인 동기에서 벌어지는 말다툼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여감사의 본질을 훼손하고 예산 심의에 투쟁으로 맞서다가 다수파의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여야 대결 자세, 새 모습 보인 국정감사
 이렇듯 비생산적인 국정심의가 어디서 연유했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독재 정부가 의회를 한낱 시녀로 간주하고, 특히 여당의원을 정부를 방어해주는 경비원 정도로 삼았던 데 있다. 필요하다면 야당을 따돌리고 토론 없이 3분 동안에 25개 법안을 날치기로 채택하는 폭거를 서슴치 않았다. 처음부터 토론하고 타협하고 합의해 법을 만들고 예산을 결정하는 의회민주주의 본질을 부인하고 어떻게해서든지 정부의, 더 구체적으로 이른바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눈에 드는 행동을 다투어 벌이는 것, 그것이 여당의원들의 사고 방식이고 행동 양식이었다.

 야당측 역시 당연히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독재 정부가 하는 일을 합리화시켜 주는 들러리일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이 야당측 고충이었다. 단상 점령이나 완력으로 저지해서라도 정부의 독선?독재에 저항하겠다는 사명의식이 그들을 지배하였다.

 결과적으로 국회는 이성적인 토론과건설적인 경륜이 없고 폭력과 날치기가 난무하는 짜증스런 마당이 되었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을 촉진하는 꼴이 되었다. 법안이나 예산 성립에 실질적 토론이 생략되는 까닭에 으레 정부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상례였다. 야당의 실력 저지가 오히려 정부를 돕는 역효과를 빚어내는 일이 있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해학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달라진 까닭인지, 이른바 문민 정부 출현 덕택인지 국정 심의에서 국회의원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특히 야당은 '폭로보다 대안 있는 비판'이라는 당론을 비공식으로 정하였다. 이기택 대표는 일부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과거청산이라는 정치적 색채가 짙은 안건을 제쳐놓고민생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기로 작정하였다.

당파 의식 버리고 국민 편에 서야
 당면한 현안을 우선해서 다룬다는 것이고, 과거 청산이라는 명분에 집착하여 여야가 격돌함으로써 국회가 파행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정말 정치가다운결단이었다. 과거청산 문제는 예산심의를 전공할 정기국회가 아니더라도 계속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이렇듯 야당의 태도가 달라지자 국정감사가 본 궤도에 올라, 국정현황에 대한 사실 파악과 정부의 잘잘ㄹ못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이 일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여당의원들도 정부 하는 일을 무조건 감싸는 반의회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때로는야당 못지않은 비판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적어도 국정감사나 예산심의에서 여당 의원들이 무조건행정 관료들과 일체가 된다는 것은, 국회가 정부를 비판?견제한다는3권분립의 기본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지만, 실제로 선거에 나가서 자기들이 결정하지 않은, 행정 관료가 결정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딱한 처지에 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여당의 프리미엄이라는 이름 아래 관권의 비호를 받는 그런 선거가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여당 의원들 역시 올바른 의회 활동이야말로 최선의 선거운동이라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의회민주주의를 토착화하는 것이다. 여야의 당파 의식에 앞서 국민의 편에 서서 행정부가 하는 일을 감시?견제하는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다만 유감스러운 일은 김대중씨 납치 사건이나 12?12 쿠데타 그리고 6공 비리 등과 관련한 증인 채택에 있어 개혁을 표방하는 정부 여당에 청산 의지가 엿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천연이 정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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