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찬바람에 한·미 관계 살얼음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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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 방법·정보 공유 놓고 ‘이상 기류’ 형성

국회 외무통일위가 외무부 본부 감사를 한 10월18일. 북한의 핵정책과 관련한 한·미 공조체제를 놓고 의원들과 韓昇洲 외무부장관 사이에 심각한 설전이 오갔다. 이 날 감사장에서는 여야 구분 없이 모두 한 목소리로 ‘정부는 한·미 공조체제가 긴밀하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대북정책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한 장관을 몰아붙였다.

 의원들이 핵정책과 관련한 한·미 공조체제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은 이유가 있다. 바로 엿새 전인 12일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개리 애커먼 위원장이 벌인 촌극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金日成 주석을 면담하고 군사 분계선을 통과해 넘어온 애커먼 위원장은 자기의 군사 분계선 통과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에 비유하면서 “미국인으로서는 처음 군사 분계선을 넘은 것은 정말 역사적인 뉴스”라고 자화자찬하기에 바빴다. 애커먼은 그의 방북 성과와 김일성과의 면담 내용을 묻는 기자들의 거듭된 요청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것은 말할 수 없다. 협상하러 북한에 간 것이 아니고 대화하러 갔다. 서로 진지하게 상대방 의견을 경청한 생산적이고 유용한 대화였다”라고 계속 연막을 쳤다. 북한 핵 때문에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었는데도 그의 태도는 불성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벌어진 상황에 비하면 그의 그런 태도는 오히려 덜 중요한 것이었다. 애커먼은 북한문제 주무 장관인 韓完相 통일원장관과 사전에 약속된 면담을 돌연 철회했다. 또 그는 주요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물론, 金泳三 대통령에게도 그의 방북 목적이나 김일성 주석과 나눈 얘기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통일위에서 문제 삼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애커먼의 방북 목적 자체도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체제가 긴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10월18일 감사장에서 의원들은 “애커먼을 통해 북한 김일성의 메시지가 있었을 텐데, 정부가 이를 파악하고 있느냐”(李世基·민자) “남북한 특사 교환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느닷없이 애커먼이 판문점을 오가며 자기의 정치적 목적으로 남북관계를 이용하는 것을 묵인하는 이유가 뭐냐”(朴 實·민주) “애커먼의 방북에는 뭔가 숨겨진 카드가 있는 것 아니냐”(李鍾贊·새한국당) “자꾸 한·미 간의 공조체제가 긴밀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미국을 너무 쉽게 믿거나, 아니면 미국이 우리를 소홀히하는 것 아니냐”(朴定洙·민자) 하고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미국, 한국 소홀히 취급…김대통령 분노
 이에 대한 답변에 나선 한승주 장관은 “한·미 당국은 거의 매일 눈에 잘 띄지 않게 긴밀히 협의한다. 미국이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알려주는 경우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또 “김일성과 애커먼의 얘기는 개발 의사가 없다는 것과 일반적인 메시지가 전부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장관의 소신에 찬 답변은 외무통일위 위원이나 한국 주재 서방 외교관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 서방의 주한 외교담당자들은 한장관의 답변에 신빙성이 없다고 의심한다.

 외교가의 한 서방 소식통은 “애커먼은 그의 말처럼 단순한 대화 목적으로 방북한 것이 아니다. 애커먼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핵사찰을 수용하도록 설득하러 들어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강경 대응하겠다는 미국의 의사도 전달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전혀 설득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콧방귀를 뀌는 지경이었다. 애커먼은 결국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는 또 북한에서 어떤 얘기를 했고, 김일성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한국 정부에 말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정가의 한 정통한 소식통도 “애커먼이 방북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한완상 장관과의 면담도 철회한 것은 결국 미국이 한국을 그만큼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반증이 되었다. 여기서 김영삼 대통령의 감정이 극도로 상했다. 정부가 소말리아에 전투병을 파병해 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을 거절한 직접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10월21일 취임한 제임스 레이니 신임 주한 미국대사는 19일 애커먼으로부터 방북 결과를 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애커먼 의원을 만나지 못하고 판문점을 넘는 사진만 봤다”고 답변을 피했다.

 현재 한·미 관계는 한승주 장관의 장담처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핵문제를 둘러싸고 무엇인가 양국 관계에 이상 기류가 형성되는 듯하다.

 이에 대해 정가 관측통들은 10월8일 과학기술처에 대한 감사에서 나온 金始中 과기처 장관의 답변을 중요시한다. 이날 김장관은 정부의 비핵화선언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온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대해 “과학자로서 핵재처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제 정세와 시기를 고려해 비핵화선언의 수정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용의가 있다”라고 깜짝 놀랄 만한 답변을 했다. 그의 소신은 나중 기자들과의 면담에서도 재확인되었다. 이튿날인 9일 鄭鍾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김대통령이 주재한 안보장관회의가 끝난 뒤 “비핵화선언에 나타난 정부의 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라고 말해 김장관의 발언은 일단 ‘없던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김장관의 이 날 발언은 워싱턴의 신경을 크게 건드린 것으로 알려졌다. 盧泰愚 대통령 때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지금 미국에 도피해 있는, 당시 金宗輝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미국측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김장관 발언은 미국에 아주 불쾌하게 작용했다. 청와대는 장관의 사견으로 돌리고 부인했지만 장관의 발언 그 자체는 남아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결국 미국은 한국이 미국의 의사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핵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북한 핵문제 해결에 관한 한 주도적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국내 여론의 반발에 부딪힌 형편이다.

 정부가 소말리아에 전투병을 파병해 달라는 클린턴의 요구를 거절한 것도, 국민적 정서가 이를 거부하고 있고 야당도 이를 반대한다는 사실이 감안된 것이기도 하지만 한·미간 감정 대립이 작용한 측면도 강하다. 외무통일위의 한 의원은 “현재의 한·미 관계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이 극도로 불편한 관계였던 시절을 연상케 한다”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북한과 미국은 현재 핵사찰과 관련한 극비 접촉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이런 사실을 얼마나 즉각적이고 상세하게 전달해 주는지는 의문이다. 25일의 남북 접촉에서 한국측은 북한이 핵사찰과 특사 교환을 수용할 경우 내년도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보다 3일 앞서 미국이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이 외신으로 보도되자 통일원은 이를 즉각 부인했었다.
 11월23일 한·미 정상회담을 주목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정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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