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문제로 닫힌 문 관광으로 빗장 연다
  • 김당 기자 ()
  • 승인 199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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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장은 핵이라는 고리를 풀어야 하지만 핵문제가 타결되면 남북 교류협력의 제1순위는 관광 분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북한이 대규모 시설과 기술 그리고 자본 축적이 필요하지 않은 관장업에 관심을 쏟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통일원도 관광교류가 북한의 개방을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원의 전향적 자세는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볼 것을 권유하는 《북한방문안내》라는 책을 최근 펴낸 것에서도 엿보인다. 통일원은 이 책을 펴낸 취지를 ‘남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접촉과 방문이 멀지 않아 이루어질 것에 대비해 북한을 처음 방문하는 분들에게 방문 절차 및 사전 준비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 주요 도시의 교통 및 숙박시설에서부터 관광 쇼핑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여행 정보를 담고 있는 이 책은 현재 3천권이 제한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시사저널》이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독자에게 실용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통일을 앞당기는 데 이바지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로 남북대화에 진척이 없는 가운데 관광업계는 북한과의 관광 협력 사업을 추진해 관심을 끌고 있다. 남북합의서를 체결한 뒤로 국내 관광업계는 정부의 접촉 승일을 받아 남북한 관광협력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해 왔다. 그 결과 몇몇 대형 여행사는 북한측과 ‘상당히 진척된 수준’의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관광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진척 상황은 ‘약정서’체결까지이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국영 조선국제여행사를 내세워 최근 국내 5개 여행사와 관광협력사업에 관한 약정서를 체결했으나 핵문제 때문에 그 이상 진척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핵문제 때문에 경제협력 전분야에서 민간교류가 자제되고 있는 분위기여서 관광업계에서도 정부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으나, 큰 투자 없이 외화 수입을 원하는 북한측이 더 적극적인 만큼 핵문제만 타결되면 급진전되리라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승인을 받아 남북한 관광 교류를 추진중인 한국관광공사의 한 관계자도 이에 대해 “북한측이 상당히 의욕을 내비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조선국제여행사가 국내 몇몇 대형 여행사와 팩시밀리 교신 등을 통해 직접 접촉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자세한 내용은 기업의 기밀이므로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핵문제라는 정치적 장벽말고도 현실적으로 관광상품 개발을 둘러싸고 이견이 노출되고 있어 성사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즉 북한 사회의 동요를 우려한 북한 당국이 지정된 관광코스만을 고집하고 있어, 실향민들의 고향 방문과 성묘 관장 등 다양한 상품을 구상중인 국내 관광업체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신변에 대한 안전 보장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여행사와 약정 체결
 한편 남북교류 협력의 주무 부처인 통일원에서는 관광 협력사업에 대해 정부가 원칙적으로 수용할 태세라고 강조하면서도, 관광업계의 접촉 내용에 대해서는 ‘시기상조’임을 내세워 입을 다물고 있다. 통일원에 따르면(37쪽 표 참조), 89년 6월12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지침을 제정한 뒤로 93년 9월30일 현재까지 관광·교통 분야에서 남북 주민간 접촉이 성사된 것은 18건 69명이다. 통일원 교류협력국의 한 관계자는, 북한측 접촉 창구가 주로 금강산국제여행사(평양시 중구역 중림동 소재 합영기업·사장 박종근)라고 말했으나 접촉한 기업과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재외 동포를 제외하고는 관광 목적으로 북한에 입국한 내국인은 한명도 없다. 업계의 접촉도 아직 사업성 검토를 위한 기초정보 수집 차원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통일원측의 평가절하와는 달리 《시사저널》이 입수한 일부 관광업계의 개별적인 ‘관광협력사업 추진계획’을 보면 상당히 구체적인 접촉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ㅇ관광은 제1단계 기반 조성;북한의 관광 협력사업자를 선정하여 세부계획을 수립한 뒤 정부의 승인을 받는다 제2단계 사업추진;남북한을 연계하는 상품을 개발해 외래 관광객 유치 및 이산가족 남북왕래 운송과 안내 등 관광알선사업을 전개한다 제3단계 시설투자;관광호텔 및 대규모 위락시설 등 관광 시설 개발에 그룹 계열사와 공동 참여한다 등으로 정부의 남북경제교류협력 실시방안의 단계와 일치하고 있다.

 업계의 세부 추진계획은 이를 더 구체화 내·외국인을 상대로 단계별로 다양한 코스의 관광상품을 개발해 놓고 있는데, 외국인은 주로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남북한을 연계하는 7박8일짜리 관광상품의 경우, 도쿄에서 항공기편으로 서울 도착(시내 및 서울 근교 관광)→김포에서 평양 순안공한 도착(시내 관광 뒤 고려호텔 숙박)→버스로 금강산 도착(등산 및 금강산호텔 숙박)→평양 도착(서커스 밀 극장 관람)→도쿄 도착 등의 세부 일정을 제시해 놓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일본인 관광객이 전체 관광객의 절반 이상임을 고려할 때 이같은 일정을 짠 것은 북한이 일본 관광객 유치에 거는 기대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관광업계에서는 제한된 국내 관광자원으로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풍부한 자연자원을 보존하고 있는 북한과의 이른바 패키지 관광 상품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포-순안-금강산 노선 제시
 관광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이와 비슷한 사업계획을 추진하는 업체는 ㄹ·ㅎ·ㅅ 관광 등 주로 재벌그룹 계열 대형 여행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업계의 한 관계자는 “관광업은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짭짤한 현금 수입을 올릴 수 있으므로 대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북한이 관광특구를 지정할 경우 대기업의 의욕적인 참여가 예상되나, 당장의 관심사는 설악-금강산 철도 부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보기로 ㅅ그룹이 일본교통공사(JTB)와 제휴를 모색한 것과 일부 대기업이 사업 참여 우선권을 겨냥해 설악산 일대의 관광·편의 시설을 확보하려고 경쟁한 사례를 들었다. 이 관계자는 “현재 핵문제 때문에 멈칫하고 있으나 일단 관광 정상화가 되면 다른 어느 사업보다도 쉽게 남북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한 통일원측 반응은 “92년 11월19일 남북고위급회담 산하에 발족시킬 예정이었던 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에서 남북 관광교류·협력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핵문제로 남북대화가 중단됨에 따라 관광분야 논의도 중단된 상태”라는 관광공사측의 공식 반응과 일치한다.

 그러나 관광업체의 관광협력 사업을 위한 접촉신청이 승인되지 않은 사례가 거의 없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관광 협력사업에 대한 통일원측 자세는 매우 전향적이다. 박흥렬 서기관(통일원 협력과장)은 “통일원은 기본적으로 관광사업이 북한의 개방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어 핵문제가 타결되고 문호만 열리면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서기관은 “문제는 개방으로 인한 동요에 대해 두려움으로 사업 성사 여부는 북한의 의지에 달렸다”라고 말했다.

북한, 10만명·1억달러가 목표
 사실 관광업계의 기대 섞인 낙관적 전망이 아니더라도 남북대화가 진척될 경우 관광사업이 교류·협력 분야에서 앞 순위를 차지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 첫째 근거는 바닥이 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외환보유 사정이다. 북한 당국이 올해를 ‘관광사업 주력의 해’로 정하고 재외 동포를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선 것은 북한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개발계획 제3차 전문가회의에서 보여준 북한의 적극적인 관심도 이를 반증한다. 통일원의 회의 결과 분석에 따르면, 본디 두만강개발계획은 중계·가공 무역과 교통·운송 중심지역 개발이 목적이나 북한측 참석자들은 거기에 관광 중심지역 개발 목적을 결부할 것을 희망할 만큼 관광사업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광 전문가들은 적은 투자로 높은 외화가득률에다 국토개발도 꾀할 수 있는 관광사업에 북한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본다. 관광공사 조사 전산실 윤창운 실장도 “북한은 연간 관광객 10만명 유치 및 관광수입 1억달러를 목표로 수십 종의 관광 안내서와 선전물을 배포하는 등 어느 때보다도 관광산업을 외화 벌이의 주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같은 진단은 목돈 안들이는 현금 장사에 관심을 갖는 국내 업체들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업계에서 추진하는 남북교류 협력사업을 지원하는 통일원의 전향적 자세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올해 처음 통일원이 실명을 드러낸 《북한방문안내》라는 책자이다. 한국관광공사 북한계와 대한무역진흥공사 북방실이 수집한 북한 관광 안내서 및 팜플렛 등 관련 자료를 통일원이 집대성한 이 책자는, 북한을 방문하거나 여행하는 데 필요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통일원은 일반 국민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도 있는 이 안내서를 통일원 이름으로 낸 배경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를 망설이고 있다.

 통일원의 말대로 이 책은 지난 90년 세차례에 걸친 남북 고위급 회담 이후 91년에 민족통일중앙협의회 명의로 펴낸 바 있는 《북한편람》 개정판을 대폭 수정·보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제호와 편성에서 의미있는 큰 변화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발행처를 민족통일중앙협의회에서 통일원 교육홍보국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통일원 박창봉 홍보과장은 ‘가명’을 썼던 까닭을 “실제로 북한을 방문하는 해외동포들이 현지에서 가이드 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정부 기관 이름으로 내면 입국에 불편을 받을 우려가 있어 그런 것일 뿐 근본 취지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관광공사 ‘북한계’개설
 남북 관광 협력사업 지원과 관련해 또 다른 관심을 끄는 것은 관광공사의 북한계이다. 지난해 1월 처음 직제를 개설한 뒤로 북한계의 업무는 아직 북한 관광에 관한 월간 동향보고서를 작성하는 연구·조사 차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한때 남북 교류 분위기가 조성되자 북한계를 국제협력부 유치과로 소속을 옮겼다가 핵문제로 분위기가 나빠지자 다시 연구과로 돌린 데서 알 수 있듯이 상황은 매우 가변적이다. 박황숙 북한계장도 “여건이 좋아지면 언제든지 사업부서로 전환해 조직을 확대할 것”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 시장에 대한 관광공사의 전망은 매우 신중하다.
 최근 방북했던 해외동포 50여명을 표본으로 하여 관광공사가 실시한 비공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첫 방문자가 70% 이상으로 두 번 이상 방문자는 소수에 머무르고 있다.

남북한 연계 관광에 초점
 윤창운 실장은, 최근 북한의 여행 일정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관광사업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만 아직 획일화된 지정 코스가 일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관광사업을 체제 홍보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실장은 사회간접자본 투자시설 미비말고도 여행 경비가 비싸고 유흥시설이 거의 없는 점을 제약 요소로 꼽았다. 윤실장은 북한 관광을 “주로 해외 교포들이 호기심과 귀소본능에 따라 북한을 찾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생활에 길든 사람들이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큰 매력은 아직 없다”라고 평가했다. 관광공사나 업계에서 북한 단일 관광보다는 남북한 연계 관광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광공사의 교류 추진 방향은 ‘앞으로 진행되는 정부의 남북대화 진전 결과와 방침에 따라 실현 가능한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북한이 금강산국제그룹의 박경윤 회장을 통해 “남한 사람들에게도 금강산·백두산 관광을 허용하겠다”라고 전격 제의했던 것처럼, 시기가 문제일 뿐 ‘북한 가는 길’은 언제든지 열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광공사는 94년 남북교류사업에서 금강산 개발사업을 먼저 추진할지, 남북 연계상품개발을 먼저 할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연내에 핵문제가 타결될 경우 통일원의 《북한방문안내》처럼 ‘94년 한국 방문의 해’ 캠페인도 ‘94년 남북한 방문의 해’로 ‘수정·보완’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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