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가는 대사 낯빛은 어두웠다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199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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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통신




 한·미 관계가 조금 거북해질 것 같다. 이곳 정가나 외교가에서 그럴 만한 확증을 잡은 것은 아니나 징후로 보아 두나라 사이에 이물질이 눈 속에 낀 듯한 불편함이 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 첫 징후는 소말리아에 대한 한국군 전투병력 추가 파병을 제의한 미국 정부 요청이 김영삼 대통령의 입을 통해 공식으로 ‘불가’판정을 받은 점이다. ‘한국군 파병 불가’입장은 이곳 한국대사관과 미 국무부를 경유해 당초 파병을 친서로 요청한 클린턴 대통령에게 답서 형식으로 전달됐다.

 우리의 파병 거부에 대한 미측 공식 반응은 아직 채집되지 않고 있다. 김대통령의 거부 친서는 겉봉에 ‘이 친서를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는 한승주 주미대사의 외교 노트가 첨부되어 국무부 고위 관리의 손에 넘겨졌다. 이를 전해받은 국무부 관리의 눈빛 속에 “한국측의 애로를 익히 이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는 한국 외교관의 코멘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미측의 공식 반응으로 해석하기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무겁다.

‘파병 불가’통보 직후 대사에 신임장
 국가 정상 간의 친서도 개인 간의 서신과 비슷하다. 친서를 받는 쪽보다 보내는 쪽이 더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거절하는 답장을 받을 바에야 아예 친서를 보내지 않음만 못한 법이다. 김대통령의 파병 거부 답서는 클린턴의 외교 콤플렉스를 자극할 것이 분명하다.
 똑같은 내용의 클린턴 친서가 소말리아에 군대를 파견한 30개 국가 원수에게 똑같이 전달됐으리라 가정한다면 우리측 부담은 한결 가벼워질 수도 있다. 한국에 쏠릴 미측의 불안이나 실망이 나라의 숫자만큼 묽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비이락 격인지 모르지만, 한국측이 파병 거부를 통보한 다음날 클린턴 대통령은 신임 주한미대사로 임명한 제임스 레이니 전 에모리 대학 총장에게 신임장을 주고 서울로 (당장) 떠나라고 명했다.

 오전에 신임장을 받은 레이니 대사는 오후에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 간담회를 갖고, 다음날(10월20일) 아침 비행기편으로 서울로 날아갔다. 레이니 대사측으로부터 간담회를 갖겠다는 통보가 《시사저널》워싱턴 특파원 사무실에 날아든 시각은 이보다 하루 전인 18일이지만, 서울과 워싱턴 간의 13시간 시차를 감안할 때 한국 정부의 파병 거부가 전달된 직후가 된다. 대사의 ‘허둥지둥’부임과 한국측 파병 거부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것을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는 논리가 선다.

 신임장을 받는 과정에서 레이니 대사가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이번 파병 거부와 관련해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또 그 지시가 김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증정하는 자리에서 어떤 형태, 어떤 강도로 전달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철학교수 출신, 외교 난제 어떻게 풀지 관심
 한가지 분명한 것은, 워싱턴 특파원단과 대면한 레이니 대사의 표정이 무거워 보였다는 점, 그리고 (당일)오전 11시30분에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고 바로 그 다음날 부임케 됐다는 사실을 두차례에 걸쳐 강조한 대목을 기자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신임 대사와의 간담은 40분간 진행됐다. 그는 역대 주한미국대사가 서울에서 보여온 상궤를 벗어난 정치적 행동과 관련한 비판과, 이에 대한 개선을 종용하는 《시사저널》의 질문에 대해 “과거 그래왔던 것을 시인한다. 앞으로 주한미대사의 역할은 한·미의 동반자적 관계에 맞춰야 할 것”이라고 솔직히 대답했다. 19세 때 미국 방첩부대원, 또 59년부터 5년간 연세대 교수 자격으로 서울에 체류했던 경험을 가진 레이니 대사는 “왜 그런 다짐을 종용하는지 이해하겠는냐”는 《시사저널》의 질문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말고!”를 연발할 만큼 그 시절 그 시대 미국대사의 입김이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4·19 이전의 매카나기나 버거, 그후 하비브나 슈나이더 등 거물 대사들의 장형(Big Brother) 행세를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의 안목에서 신임 레이니 대사의 정직과 소탈은 전임자들과 대조를 이뤘다. 글라이스틴 대사나 워커 대사, 그후 릴리 대사나 그레그 대사 등 원만하고 실무형인 대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재에서 책을 읽다 만 나온 듯한 이 목사 안수를 받은 철학교수 출신 대사만큼 진지한 인물은 없었던 성싶다. 이 점이 바로 한·미 관계에 새로운 징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주재국에서 처음 부닥친 파병 거부라는 외교 난제를 이 정직한 대사가 과연 어떻게 풀어 나갈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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