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와 제일제당, 싸우면서 큰다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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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의약품·화장품 분야서 전면전 예상…국제 경쟁력 강화 측면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시장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흔한 예로 삼양라면과 농심라면, OB맥주와 크라운맥주, 펩시콜라와 코카콜라 같은 경쟁 상품들은 속된 말로 ‘박 터지는 싸움’을 피할 도리가 없다. 숙명이다.

 기업들이 특정 품목 하나만 놓고 맞부딪치는 것은 아니다. 다각화를 추진하다 보면 많은 영역에서 서로 맞부딪치는 기업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치약·치솔 같은 생활용품으로 유명한 럭키와 햄·소시지 등 식품으로 잘 알려진 제일제당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럭키는 올해 안에 식품 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다. 럭키는 우선 조미료를 선보이면서 시장의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조미료 시장은 현재 제일제당과 미원이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생활용품 분야의 최강자인 럭키가 새로이 뛰어듦으로써 조미료 업계에 일대 파란이 일 것이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조미료 시장은 ‘미원’으로 대표되는 화학 조미료와 ‘다시다’로 상징되는 천연성 조미료로 양분된다. 럭키는 화학 조미료가 전혀 들어 있지 않고, 천연 원료로 만든 ‘양념’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려 한다. 화학 조미료를 기피하는 주부를 대상으로 하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업체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틈새’(니치마켓)를 파고들겠다는 전략이다. 럭키는 ‘천연 양념’으로 주방을 꽉 채우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럭키, 식품업 참여로 제일제당에 도전
 럭키의 식품업 참여에 기존 식품 업계는 다소 긴장하는 눈치다. 현재 제일제당은 설탕에서는 삼양사, 조미료에서는 미원, 육가공 식품에서는 롯데와 맞서고 있다. 과거 미원과 백병전을 벌였던 제일제당으로서는 또 하나의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난 셈이다.

 럭키의 식품업 참여에 대해 업계 일부에서는 ‘보복이 아니냐’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2년 전인 91년 제일제당은 세제와 샴푸 시장에 진출해 세제의 선두주자인 럭키와 한바탕 세제 전쟁을 치른 바 있다.

 두 회사는 경쟁 초기 단계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은품을 지급하고 소나기 광고를 퍼붓는 등 출혈 경쟁을 벌였다. 따라서 그에 대한 보복으로 제일제당이 아성을 지키고 있는 식품업에 럭키가 뛰어든 것이 아니냐 하는 관전평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럭키는, 정밀화학과 유전공학 쪽에 중점을 두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품을 하게 된 것이지 특정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쨌거나 럭키와 제일제당은 사업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더 늘어난 셈이다.

 연간 매출이 2조3천억원에 달해 이개 기업임에도 규모가 웬만한 재벌과 맞먹는 럭키는, 자금·조직 면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식품 사업 진출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들다. 럭키가 생활용품에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활용품과 식품은 ‘업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 제일제당측의 지적이다. 한 예로 비누·치약과 같은 생활용품에 비해 유통 기간이 짧고 변질 우려가 높은 식품에서는 반품 처리가 큰 문제인데 신출내기인 럭키가 과연 그것을 해결할 비결이 있느냐는 것이다. 럭키측도 그 점은 인정한다. 그래서 공부하는 자세로 조미료 시장부터 진출해 품목을 점차 다양화하겠다고 대답한다.

 럭키가 ‘한국의 듀폰’을 꿈꾸는 종합 화학회사인 반면 제일제당은 식품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이다. 럭키의 사업 구조를 보면 여전히 석유화학과 산업 건재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붕이 60%가 넘는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생활용품과 화장품으로 친숙하지만 이들 품목은 3분의 1이 채 안된다. 한편 제일제당은 의약품(정밀화학)으로 영역을 넓히고 2년 전부터는 생활용품 시장에도 뛰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전체 매출의 85%를 식품이 차지하고 있다(도표 참조).

 이처럼 기업의 성격이 전혀 달라 두 회사는 서로 부딪칠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럭키와 제일제당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이미 10년 전부터 있어왔다.

 두 회사는 83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유전 공학을 산업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럭키와 제일제당은 83년 이전까지는 서로 경쟁할 일이 없었으나 유전 공학이라는 접점이 새로 생기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금성사와 삼성그룹의 삼성전자는 가전업계에서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유전공학과 정밀화학 쪽에 대규모로 투자해온 럭키는 90년대 들어 인터페론과 간염백신 등 의약품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한편 제일제당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인터페론과 간염 백신을 의약품 시장에 내놓아 최초로 시장에서 럭키와 마주치게 됐다. 그러던 중 91년에 제일제당이 세계 시장에 뛰어듦으로서 두 회사 간의 접점이 하나 더 생겼고, 올해 럭키가 식품업 진출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두 기업은 경쟁적 관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제일제당이 화장품 사업에 참여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2년 전 제일제당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면서 샴푸를 함께 들고 나온 것은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신호탄이 아니겠느냐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에 대해 제일제당측은 ‘화장품을 안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하겠다는 말도 아니다’라고 아리송하게 밝히고 있다.
제일제당 화장품 손대면 또다 접전
 럭키는 이미 84년 태평양화학과 한국화장품이 주도하던 화장품 시장에 진출해 5년 만에 업계 2위 자리를 차지했다. 태평양화학과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10% 이내(업계 추정치)로 좁힌 럭키는 앞으로 3~4년 안에 화장품 업계 1위 자리를 빼앗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제일제당이 화장품에 손을 댄다면 럭키와 제일제당은 생활용품·의약품·화장품 등 세 분야에서 전면적인 경쟁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80년대 초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 상대로 떠올랐던 럭키와 제일제당은 90년대 들어와 현실에서 맞부딪치게 되었고 2000년대에는 경쟁이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럭키는 의약품 생산과 같은 정밀화학과 유전공학에 치중할 계획이며, 제일제당도 부가가치가 높은 이 분야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럭키와 제일제당은 앞으로 또 다른 사업영역에서 만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그룹에서 분리해 나온 제일제당이 사업 다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제당의 사업 구조는 식품 쪽의 비중이 압도적인데 식품은 이미 성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햄·소시지 등 육가공 식품은 소비 수준이 향상되면서 성장률이 둔화되는 현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제일제당으로서는 사업을 다각화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이다.

 제일제당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으나 유통업을 깊이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어떤 형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럴 경우 이미 유통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럭키와 또 하나의 접점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시장을 개방하기 전까지 국내 기업들은 한국이라는 닫힌 시장에서 제한된 경쟁만을 해왔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생활용품만 해도 프록터 앤 갬블(P&G)이나 유니레버 같은 다국적 기업이 대거 진출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다. 이 다국적 회사들은 식품도 취급하고 있다.

 럭키와 제일제당은 피차 버거운 상대를 만난 셈이지만 국제 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오히려 이를 반기는 측면도 있다. 한 예로 제일제당이 세계 시장에 뛰어든 이후 세제의 포장 용기는 대폭 축소되었다. 당시 전세계 주부들이 작은 용기의 세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포장 용기가 작은 고농축 세제를 선보임으로써 국내 세제 업계도 세계적 조류를 탈 수 있게 됐다고 제일제당측은 자부한다.

 럭키측도 제일제당이라는 경쟁 업체를 만나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국내 생활용품업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럭키로서는 어차피 프록터 앤 갬블이나 유니레버 등 세계적인 기업과 ‘올림픽’을 치러야 할 판인데, 그 전에 제일제당이라는 좋은 경쟁 상태와 만나 ‘프레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접점이 늘어가고 있는 럭키와 제일제당의 경쟁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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