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의 '치부'印稅 부조리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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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인지 공방'으로 표면화

  조용한 베스트셀러는 없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를 함께 갖고 있는, 출판계의 이 오래된 속설이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둘러싸고 다시 회자되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와 이책을 펴낸 출판사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이 인세시비로 팽팽한 명분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인데, 이 공방전은 법정으로 옮아갈 가능성까지 비치고 있다.

  80년대 한국문학사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동시에 장기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태백산맥》(전10권)의 작가와, 사회과학 서적을 출판하며 탄탄하게 자리를 굳혀온 80년대의 대표적 출판인의 공방전이란 점에서 이실랑이는 많은 시선을 모으고 있지만, 문단·출판계에서는 "해묵은 치부 가운데 일부가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출판사 "인지위조 출판은 불가능한 일"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진 인세 부정시비는 그간 거개가 공개되지 않은 채 작가와 출판사건 혹은 저작권협회나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나아가 법정의 문턱을 오가며 끊이질 않고 있다. 작가·저자들은 《태백산맥》이나 되니까 인세문제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태백산맥》의 인세공방을 살펴보는 일은 출판계의 해묵은 문제를 진단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인지(인세)는 일반 독자에게 낯익은 용어는 아니다. 인지란 발행부수를 증명하기 위해 출판사가 발행하는 책의 판권지에 붙이는 저작자의 검인을 일컫는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책의 발행이 불가능하다. 저작자는 이 인지를 통해 저작권을 보호하며 그대가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저작자가 출판사로부터 받는 인세는 그 인지수에 통상 책 정가의 10%를 곱한 액수이다. 물론 저자와의 협의에 의해 인지를 붙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인지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작가와 출판사 사이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태백산맥》인세시비는 작가 조정래씨가 그간 자신이 작성해온 인지(세)장부에 나타난 발행부수와 출판사의 발행부수에서 차이가 난다고 주장하면서 일어났다. 조씨는 이 소설 제1부가 발간되던 86년 10월부터 지난 4월15일까지 출판사가 인지를 요구할 때마다 그 분량을 기록해왔다. 그 장부에 의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찍어준 인지는 모두 1백67만3천매였다. 그러나 조씨는 이보다 많게는 9만8천부까지 출판사가 부정출판, 인세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출판사측이 판매현황을 정확히 공개하지 않아 의혹이 깊어졌으며 저작권을 보호받기 위해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 3월 21일 출판사에 넘겨준 인지 3만5천매에 자신만 아는 비밀표시(검은 점)를 해두었다가 며칠 뒤 시중에 새로 배포된 책(제1권의 경우 45판·발행일 3월20일) 가운데서 비밀표시가 없는 인지가 붙은 책을 찾아보았다. 작가측에서는 비밀표시가 없는 책은 부정출판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 비밀표시가 없는 인지가 붙은 책 75권을 발견하고 4월23일 김언호 사장에게 내용증명을 띄웠다. 조씨는 이 내용증명에서 출판사가 부정출판을 했으므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히고 아울러 제적 장부와 위조한 도장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김언호 사장은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인지를 붙이지 않은 책은 없으며, 더구나 도장 위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는 《태백산맥》의 출판권을 작가가 가져가기 위한 책략"이라고 주장했다. 김사장은 "현재 1백72만1천부가 발행된 책이며 인세만 해도 7억5천여만원을 지불했는데, 불과 몇만부의 인세를 가로채기 위해 인지를 위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으면서, 현실적으로 인지를 위조 출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출판사 직원과 인쇄소·제본소 등과 손발을 맞추어야 하는데, 한길사의 이미지와 출판인의 윤리상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비밀표시가 없는 인지는 파본·반품된 책에서 떼어내 붙인 것이라고 강조하고 일단 작가로부터 인지를 받아오면 그 사용권은 출판사가 갖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가와 출판인의 자존심 싸움
  인세시비에서 비롯된 이 대결은 작가와 출판인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으로 번져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팽팽한 명분싸움으로 옮아가 있다. "단순한 인세문제였다면 문제가 된 인세만 받고 벌써 해결했을 것"이라는 조씨는 출판권을 가져오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며 "작가의 저술활동이 출판인의 비리에 의해 훼손되는 이같은 사회악을 척결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길사 김언호 사장은 "한길사가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이유로는 출판권을 절대 넘겨줄 수 없다"고 말하고 "작가가 소송을 걸면 적극적으로 대응,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태백산맥》은 지난 89년 11월 완간되면서 인세를 10%에서 12%로 올리고 출판기간을 향후 5년간으로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재계약을 체결, 3년반 정도의 계약기간을 남겨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책은 3백만부까지 판매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태백산맥》의 인세 실랑이는 작가가 출판사를 불신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출판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같은 불신이 생겨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우선 출판사의 세금이 인정과세로 매겨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즉 출판사는 가능하면 매출액을 줄여 신고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매년 세금이 전년에 비해 20%씩 높아지기 때문인데, 출판현실로 볼 때 매년 20%씩 성장하는 출판사는 그리 많지가 않은 것이다. 세무서측에서도 출판물 유통구조의 난맥상 때문에 정확한 판매량을 추적할 수 없는 현실이다. 출판과 그 유통구조의 과학화가 우선되지 않는 한 발행·판매부수의 정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출판문화는 지식산업의 꽃, 양심의 마지막 거점 등으로 일컬어지지만, 작가와 출판사와의 관계 그 바탕에 '숙명적인 입장 차이'가 깔려 있다. 한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면 작가와 출판사측의 이같은 입장 차이가 증폭되기 십상이다. 즉 작가쪽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탁월하기 때문에 반응이 좋다고 여기는 반면, 출판사측에서는 자신들의 성실한 영업과 판촉의 결과라고 자부하면서 자신들이 한 작가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입장 차이와 상반된 기대심리는 매우 미묘한 것이어서 평소에는 여간해서 노출되지 않는다. 이같은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에다 작가와 출판사와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가장 먼저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이 인세문제이다.

  즉 부정출판인데, 무인지의 경우는 무인지 책이 발견만 되면 비교적 그 처리가 간단하다. 그러나 인지위조 문제는 보다 복잡하다. 출판인들은 "인지위조는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 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인장위조가 형법상 저촉되는 '범죄행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인장위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출판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작정하지 않는 한, 인지위조를 통한 부정출판은 불가능하다고 출판인들은 말한다. 출판사업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한 젊은 출판인은 "설령 출판사 직원과 인쇄소·제본소 등을 구슬려 부정출판을 한다 해도 그 사실은 이내 드러난다"고 말한다. 실제로 70년 대말 베스트셀러 소설을 펴냈던 한 작가는, 나중에 제본소에 확인한 결과 실제로 40여만부가 발행되었음을 알아냈다. 그때까지 그가 받아든 인세는 고작 8만여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출판사가 작가의 도장을 맡아 보관하며 무단으로 찍어낸 것이다.

  반면, 인지위조는 "출판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인지위조를 발견하고 소송 직전까지 갔던 한 작가는 "인쇄소나 제본소는 출판사에서 전해준 인지수대로 제작하는 것이므로 인지위조 출판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제본소가 문제되는 경우는 무인지 출판일 때 해당되는 것이라는 것이다(인지는 제본소에서 붙인다). 위조인지는 대개 작가가 찍어온 인지를 동판이나 고체수지로 떠 사용하는데, 육안으로는 판별이 용이하지 않고 확대해야 구별된다.

  그러나 발행부수가 수만부를 넘지 않는 경우 실제로 인지위조 사실을 발견해도 작가들은 공개하지 않고 넘어가는 편이다. 작가 ㄱ씨는 "우리에겐 전통적으로 송사를 꺼리는 경향이 있으며, 인지부정 시비로 문제 작가라는 낙인이 찍힐 경우, 출판계에 발붙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인지위조, 무인지 출판 그리고 무단 게재 등 부정출판은 끊이지 않아 왔다. 79년, 지금은 없어진 한 출판사가 당시 인기작가 7인의 작품집을 무인지로 출판했다가 강력한 항의를 받았으며, 80년대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출판사가 인장을 위조했다가 법정으로 간 경우도 있다. 그 출판사는 곧 문을 닫고 말았다.

  최근에 원로작가 ㅂ씨가 자신의 전집에 붙은 인지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 ㅈ출판사에 지형반환을 요구하는 등 갈등을 겪고 있다. ㅂ씨는 "작가가 자신의 책 발행부수를 확인할 길이 전혀 없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이처럼 작가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현실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서글프다"고 말한다.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회장 김정흠)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부정출판물이 1백여건이나 발견되었으며 올 들어 4월 말까지 25종의 부정출판물이 발견됐다.

  《태백산맥》의 인세시비가 어떻게 결말이 나든 그 결과가 출판계의 '치부'를 도려내는 큰 계기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 "부끄러운 일"또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문단·출판계에서는 개탄하고 있지만 그 개선책은 "상호간의 신뢰회복"이라는 '교과서적인 지적'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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