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양심선언하시오"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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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연세대교수 金東吉

  김동길 교수 자택의 대문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열려 있었다. 대문 오른쪽에 '김옥길', 왼쪽에는 '김동길'이라고 쓰인 문패도 그대로 달려 있었다. 강의 도중에 한 '강경대군 죽음에 대한 발언'이 대자보 사건으로 비화되자 김 교수는 지난 8일 연세대에 사표를 제출, 충격을 주었다.

  "내가 묻기를 어인 일로 이 깊은 산중에 사나요. 빙그레 웃고 대답은 안하니 내 마음 스스로 한가하여라. 복사꽃잎 덜어져 물위에 흘러흘러 간 곳이 묘연한데 사람 사는 세상은 아니로구나. 이 시처럼 '빙그레 웃고 대답은 안하니'그런 식으로 나갑시다."이렇게 서두를 꺼낸 김 교수는 그러나 시종일관 모든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했다.

● 36년간의 교직생활 중에 언제나 학생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습니까? 왜 사표라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까?
  적어도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교육은 하나의 예술입니다. 예술은 작품을 만들 의욕이 었어야 할 수 있는 건데, 누가 뭐라든지 간에 한가지 뚜렷한 사실은 내가 사표 한 장에 명시한 것처럼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잃었으므로 교수직을 사임합니다"그한마디밖에는 다른 말로 표시할 것이 없어요.

● 연세대 대자보에 여론조사를 실시하자는 학생의 의견도 제시되었습니다. 사표가 반려된다면 다시 강단에 서시겠습니까?
  강단에서 내려오기 위해서는 사표를 내야만 가능하니까 낸 것이지 사표를 받겠는가, 안 받겠는가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사표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내가 학교를 물러난 엄연한 사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 사표 제출에 대해서 '분신'처럼 과격하고 경솔할 방법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자보를 붙인 당사자와 논쟁을 하거나 또는 사회과 학생회가 제안한 공개토론회를 통해 학생들의 잘못된 사고를 깨우쳐줄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내 논리에 수긍하건 말건 내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내 의욕에 관한 문제입니다. 내가 교육을 그냥 단순한 직업의 하나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달리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요. 극단적이라거나 경솔한 결정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표를 안 내고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교육을 예술로 알아왔던 내 의식구조로는 그 이상 다른 방법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제안하는 토론회란 것도 그래요.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인민재판하듯, 그런 말에 대해서 한번 토론할 것이니 모이시오. 이렇게 학문적인 차원이 아니라 감정을 가지고 모여서 성토대회를 하겠다면 내가 나갈 일이 없는 거지요. 학생이 옳다는 걸 전제하고 교수의 반동성에 대해서 성토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안습니다.

● 그 학생이 찾아와 용서를 구한다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선생님께 제자로서 나는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습니다. 이러면 용서를 못할 이유가 없지요.

● 정년퇴임을 3년 앞두고 사퇴한 데 대한 아쉬움은 없습니까?
  '역사와 신앙'이란 제목으로 정년퇴임을 대비한 '고별강연'을 계획했습니다. 40년을 강당에 선 한 역사교수로서 신념이 이런 것이다 하는 걸 말하려고 했지요. 이제 그것을 할 기회가 없어졌으니 이 다음에 글로 써서 "이런 강연을 하려고 했다"고 말하지요.

● 이 시대 대학이 남아 있는 교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학생 눈치 보지 않고 소신을 밝힘으로써 스스로 학교를 떠난다면 대학에는 침묵하는 비겁한 교수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학의 민주화를 위해서 끝까지 인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수의 사회적 책무를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교수의 사회적 책무라는 것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인데 나는 학생과 교수의 관계가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그런 인간관계가 있어야 교수직이 할 만하다고 봅니다. '어용교수''비겁한 교수'나는 그런 말을 쓰기를 원하지 않아요. 한 시대 양심이라는 것은 각자 가지고 있는데 남의 양심을 가지고 문제삼을 건 없지 않습니까. 계속 교수직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걸 가르치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고마운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수직을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비난받아야 할 까닭은 없지 않습니까.

● 유신시절에는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표명 때문에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고 5·17 때는 강제 해직되기도 하셨습니다. 그동안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아오신 입장에서 이 시대 젊은이에게 당부할 말씀이 있을 법한데요.
  70년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사형선고를 받았거나 교직을 떠났거나 정보부에 끌려가 고생을 했거나 하는 식으로 희생한 사람은 여럿입니다. 그런 아슬아슬한 고비를 지나면서 오늘날 젊은 학생들이 그만큼 발언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되었다고 역사를 공부하는 나는 풀이하는데, 그렇게 원동력이 되었던 사람들의 과거의 경력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건전한 상식이 아니라고 봅니다. 내 주장 아니면 다 틀렸다고 하면 그게 독재지요. 그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각자가 자기의 자유를 제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 춤추는 것은 자유지만, 옆사람 얼굴을 툭 치면서 내가 좋아서 춤추는데 무슨 상관이야,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 제2의 6·25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어진 만큼 현시국은 "결코 위기가 아니다"라고 밝히셨습니다. 55년에 연세대에 취임한 이래 학생운동의 변천을 죽 지켜보셨는데요. 오늘의 대학 사회를 시국과 연관시켜 설명해주십시오.
  강군 장례식을 중심으로 해서 '야'의 세력이라고 할까 운동권의 힘을 발산해보자 이런 건데, 아직은 모르지만 나는 일단 좌절된 걸로 봅니다. 그것이 고조되려면 정치권이 불이 붙어야 되는데, 일단 발등의 불을 끈 걸로 봅니다. 그것은 여당이 머리를 짜내서 끈 것이 아닙니다. 정부의 묘책이나, 야당의 작전으로 끈 것도 아닙니다. 야당은 오히려 어디까지 가는 게 유리할까, 기회주의적인 입장에 섰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자부하는 53% 사람들이 정권타도나 사회혼란까지는 원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권퇴진 보다는 차후에 정당한 범의 절차에 의한 새 정권 수립을 바란 것입니다.

● 6·10항쟁 당시와 지금의 양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6·29 선언을 몰고온 그때는 민중이 합세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그대에 비해서 경제가 많이 나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식이 높아졌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전두환씨가 법의 제재를 받지 않은 것은 "7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그 사람을 감옥에 보낼 수는 없다"는 국민적 합의가 작용했다고 봅니다. 국민이 화가 나서 감옥에 보내야 된다고 했으면 대통령도 정권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올해의 양상은 살기도 힘들로 현정권도 꼴보기 싫지만 전두환씨가 세운 '임기 후 퇴진'은 그대로 유지해야지, 이거 흔들면 안된다는 국민의 생각이 반영했다고 봅니다.

● 최근 김지하씨 글과 서강대 박홍 총장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현체제에서는 양비론적인 시각이 결과적으로 현정권에 유리하게 작용된다는 점이 반박논리의 핵심입니다. 김 교수의 논리도 현정권을 돕는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반발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흥분하면 5공이 6공으로 넘어가는 양상과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87년 대통령선거나 88년 국회의원 선거를 놓고 보면 우리는 패배한 겁니다. 흥분하는 사이에 정부 작전에 말려 패배한 것입니다. 야당 지도자들은 6공에 와서 5공청산을 떠들자격이 없습니다. 야당이 합심했다면 5공을 쓰러뜨리면서 6공이 새로운 저절로 5공이 청산되는 건데 야당의 분열 때문에 5공이 6공으로 연장되지 않았습니까. 나는 야당의 지도자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5공청산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당신들은 그런 생각 안하고 계속 당신들이 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 김교수의 논리가 현정권을 돕는 논리로 이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정권을 돕는 게 아닙니다. 정권을 쓰러뜨리면 그보다 더 나쁜놈이 나오니까 민주 절차로 정권을 교체하는 게 좋다는 것이지요. 궁극적으로 말하면 오히려 나빠지게 한 것일 수도 있지요. 다른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막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냉정히 생각해 봅시다. 이대로 끝났을 때 노대통령이 전대통령만한 처지도 안되면 어떻겠습니까. 설악산말고 오대산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 또 부정을 전부 들추어내서 체포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을 본인과 그 주변이 전혀 걱정 안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에 전대통령이 백담사에서 두 겨울을 나고 천대를 받고 수모당할 줄 미리 알았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그렇게 순순히 내려갔을까요?

● 시국수습을 위해 현정권이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첫째도 신뢰, 둘째도 신뢰, 셋째도 신뢰입니다. 신뢰받는 정권을 만드는 것은 대통령의 결단에 달렸습니다. 내가 꼭 한가지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국민 앞에 양심선언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정치권에서 어떤 이가 "내가 한마디 하면 끝납니다"이런 말들 했잖아요. 그러지 말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으라는 겁니다.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전대통령이 모아 놓은 자금을 어떻게 썼는지를 국민에게 속직히 밝히는 겁니다. 야당 분열 공작하는 데 얼마를 썼고, 그래서 그들이 자빠졌고, 세 김씨에게 얼마를 주었다, 그리고 이 다음에는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죄지은 사람이 고해성사하듯이 그리고 국민이 이를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은 임기 전에 물러나지 말고, 조국을 살리려면 양심선언을 해달라"이것이 내 주장입니다.

● 텔레비전 방송의 시사토론에서 김 교수는 지금 학생운동을 이끌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1%의 과격집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전국적으로 강경대군 장례에 몰려든 40만 인파와는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십니까?
  과격분자가 아니라도 현실에 대한 불만이 크고 현정권이 비민주적이라고 여길 때는 젋은 사람에게 동조하는 힘이 커집니다. 강경대군 죽음 뒤 잇따른 분신은 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현정권에 도덕적 능력이 없고 현정권이 비민주적이기 때문에 파생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인구가 4천만인데 그중 40만이 움직였다고 해서 정권이 넘어질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운동권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해온 지식인들이 배척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와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민족분단, 빈부격차, 도덕성 타락 등 숱한 과제를 안고 있는 이 땅에서 과연 자유민주주의만이 최선의 대안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대안이 아니라 국시입니다. 과거에는 허울만 좋게 자유민주주의였지, 실제로는 독재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존 스튜어드 밀이 《자유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유민주주의에서 제일로 표방하는 '언론의 자유'가 어느 정도 고지에 올랐습니다. 경제적 자유는 아직도 뒷전에 밀려 있지만, 나 개인의 입장에서는 데카르트부터 사르트르까지 주장해온 "존재유일의 기초는 자유"라는 신념을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 자유의 고지는 1백m밖에 안되지만, 내 시대에 이만한 자유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이제 이만큼의 자유가 확보돼 있으니, 한번 각도를 바꾸어 나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자유는 그 자유가 있을 적에 평등을 향해서 가야 된다"라고 그러나 자유를 빼앗기고는 평등을 향해 못갑니다. 말할 자유가 있는 지금, 나는 비로소 토지에 대한 국가관리를 주장합니다. 토지가 공동소유가 되기 전에는 남북통일을 못한다. 토지 문제에 대한새로운 조처가 없는 한현재의 난국을 수습 못한다. 토지매매 없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 못하면 이 자유가 가치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혁명을 하자. 이것은 내 이념에 맞지 않으니까 나는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둘째는 세제 개혁을 단행해야 합니다. 많이 버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돼있는 현행 세재를 개혁해서 다 비슷하게 잘 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인은 정치에 돈 빼앗기지 말고 세금을 많이 내서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지요.
  텔레비전이 매체로서 굉장히 강력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텔레비전 출연 요청을 거절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앞으로 강의를 안 해도 세가지 일을 하게 됐어요. 강연, 글 쓰는 일, 텔레비전을 통해서 민중과 접족하는 일, 이 세가지를 내 역량이 미치는 데까지는 계속할 겁니다. 강단은 떠났지만 강의 부탁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한 사립대학 캠퍼스에서 사회라는 보다 넓은 교육장으로 나와서 민주주의와 그 역사가 이렇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거지요. 연세대 학생만이 한국의 젊은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사회교육을 위해서 남은 세월을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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