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국민도‘신경제’를 택했다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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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회복’내세운 자유당 총선 압승 … 퀘벡주 분리 운동 새국면



 캐나다의 정치 지도가 바뀌고 있다. 최근 실시한 총선에서 지난 9년 동안 이 나라 정치를 지배해온 집권진보보수당이 하루아침에 군소 정당으로 전락하고 제1야당인 자유당이 집권당이 됐다. 또한 신생 야당으로 퀘벡주 분리운동에 앞장서온 퀘벡당이 창당 3년 만에 제1야당이 됨으로써 퀘벡주 분리 문제는 더욱 현실로 다가섰다. 특히 퀘벡주의 독립 여부를 묻게 될 오는 95년의 주민투표를 앞두고 퀘벡당이 이번 선거에서 정권을 창출할 발판을 마련한 것은, 캐나다가 멀지 않은 장래에 2개의 주권국으로 쪼개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여서 관심을 끈다.

크레티앙, 퀘백 출신이지만‘분리’반대
 10월25일의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은 가혹했다. 그들은 집권한 지 4개월밖에 안된 진보보수당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가차없이 투표로 몰아냈다. 진보보수당은 종전의 1백55석을 거의 다 내주고 고작 2석만을 건졌다. 의석을 잃은 사람 중에는 캐나다 첫 여성 총리였던 킴 캠블 당수도 끼여 있다. 반면 제1야당 자유당은 기존 의석에 30석을 추가한 1백77석을 얻어 단숨에 집권당이 됐다. 또 지난 88년 단 한 의석도 없이 출범한 퀘벡당은 54석을 얻었고, 같은 상태에서 6년전 출범한 우익 개혁당도 52석을 얻었다. 그러나 주요 야당인 신민주당은 43석에서 9석으로 줄었다. 정치판이 완전 물갈이된 셈이다.

 집권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얼마나 컸으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가장 큰 불만의 원인은 캠블 정권이 3년째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경제를 살리지 못한 데다 무려 11%에 이르는 실업률이 겹친 데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내년 1월1일 발효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안심리가 가세했다. 지난 6월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한채 도중하차한 전임 멀로니 총리의 뒤를 이었던 캠블 총리는 결국 전임자가 남긴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무너진 것이다.

NAFTA 재협상 등 과제 산적
 자유당 당수인 크레티앙은 캠블 정권의 경제 실정을 맹공격하며 대안을 제시해 이번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집권하면 60억달러에 이르는 공공사업을 추진해 앞으로 3년간 12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한 것이 주효했다. 올해 59세인 그는 레스터피어슨, 피에르 트뤼도, 존 터너 등 세총리 밑에서 재무장관을 포함해 9개 장관직을 두루 거친 노련한 정치인이다. 19남매 중 여덟 번째로 태어난 그는, 어릴 대 오른쪽 귀가 멀고 입이 비뚤어져 언어 구사에 지장을 받았다. 그는 이런 선천성 장애를 극복하고 퀘벡주 라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변호사를 개업했다가 29세 때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퀘벡주 출신이지만 퀘벡주 분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해 온 반분리주의자이다.

 지난 90년 ‘만년 야당’이란 딱지가 붙은 자유당의 당수직을 맡은 지 3년 만에 대권을 잡은 크레티앙이 가장 먼저 해결할 과제는 경제 회복이다. 그는 3년째 침체에 빠진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 2백60억 달러나 되는 예산 적자를 중이는 것도 크레티앙 정부의 큰 숙제다. 11%에 이르는 실업률을 얼마나 낮추느냐 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게다가 집권 자유당은 총 2백95석 중 1백77석을 얻어 안정 의석을 확보하긴 했지만 퀘벡당·개혁당 등 야당 세력의 강력한 도전도 만만치 않아 얼마나 정국안정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크레티앙이 집권하자 이를 가장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나라는 미국이다. 크레티앙이 선거 유세중 자기가 집권하면 캐나다?미국?멕시코 3국이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재협상하겠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캐나다산 밀 수입량에 쿼터를 책정해 불이익 조처를 취할 경우 이 협정의 최종 승인을 유보하겠다는 방침을 보였었다. 그는 총선 승리후 가진 회견에서도, 11월17일로 예정된 미 의회의 북미자유무역협정 승인 여부에 대해“그건 미 의회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해 종전의 재협상 방침을 거듭 천명했다.

 그러나 크레티앙이 굳이 미국과의 관계 손상을 무릅쓰면서까지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재협상할 지는 두고볼 일이다. 캐나다 수출량의 75%는 미국과의 교역에서 나온다. 이 협정이 제때 발효되지 못해 종전보다 대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 장벽이 높아질 경우 캐나다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다. 캐나다의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재계 인사들의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현재 대다수 기업인들이 이 협정이 인준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크레티앙이 이들의 원성을 사면서까지 재협상 방침을 관철할지는 알 수 없다.

 의욕에 찬 크레티앙 신정부가 극심한 경제난, 미국과의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점점 활기를 띨 퀘벡주의 분리 운동 등 안팎의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하다.
下昌燮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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