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가슴을 푼 여성 시의원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1991.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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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가슴에 안겨 젖을 빠는 아기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라고 말한다. 젖가슴에 품은 아기를 그윽한 애정으로 내려다보는 엄마의 표정은 어떤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모성의 힘을 느끼게 만든다.

  입헌군주제의 덴마크는 14개의 현이 현의회를 구성해 지사를 선출하며, 수도 코펜하겐이 특별구를 이루어 시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코펜하겐 시의회장에서 벌어진 시의회 의원의 ‘젖물리기 시위'는 모성의 힘으로 인권(여권)을 떨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티니 슈미더스는 1974년 코펜하겐 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만 20세의 젊은 나이였다. 시의회가 예산안을 심의하던 4월 어느날 티니는 갓난아기를 담은 유아바구니를 곁에 놓고 의석이 앉아 있었다. 회의가 열띤 논란을 계속하고 있을 때 아기를 안아올린 티니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젖을 물렸다. 이 행동이 근엄한 시의사당의 체면을 깎는다고 여긴 남성 의원들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티니는 의사당 직원에 의해 즉시 퇴장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무엇 때문이죠? 나는 선출된 의원이에요. " "그렇지만 아기는 여기 있을 수 없어요. 그 아기도 선출된 것 아니지 않습니까."

  티니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회의장을 떠나기를 거부했다. 조그마하지만 강력한 티니의 도전은 코펜하게 여성운동사의 제 3장으로 기록되었다. 코펜하겐은 1879년에 입센의 <인형의 집>을 초연하고 1924년에 최초의 여성각료인 니니방(교육부장관)을 배출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는 도시이다.

벌써부터 공명서 위협받는 광역의회선거
  본래 자치라는 말은 ‘자연히 다스려진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제 일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행동은 없을 터이다. 제 일을 스스로 다스리는 행동이야말로 자율과 민주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는다.

  시끄럽기도 하고 다채롭기도 한 민주적 분화를 위해 우리가 맞이하는 것이 지방시대의 개막이요 광역의회 선거이다. 그런데 정당의 후보자리를 돈으로 거래했다는 얘기가 벌써 터져나오고 있다. 부산 동래에서는 돈을 달라는 유권자들의 요구에 환멸을 느낀 후보가 사퇴하는 일도 생겼다. 우리가 근심하는 것은 기성 정당, 기성 정객의 금권선거 습성과 타락한 득표 관행이다. 이런 때 삶의 현장에서 일해온 시민운동가의 다양한 경험이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면 직업적 정치세계와 무관한 '지방문화의 변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민운동 후보들의 자질도 한결같지 못하다. 그중에는 자질이 미지수인 인물도 있다. 더구나 조직력과 자금력을 가진 기성정당은 이번 광역선거를 14대총선과 그 뒤의 대통령선거 척후전으로 생각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을 기세이다. 서울 YMCA기 최근에 광역의회 선거에 관한 유권자 의식조사를 한 일이 있는데 젊은 유권자(20~30대)의 45%가 투표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또 그 까닭은 “기존정당을 불신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36.7%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현실의 한끝을 보여주는 결과라 하겠다.

  지난 주말 한 시민운동단체가 공연한 촌극 <누가 가시나무왕을 뽑았나?>는 교수와 변호사 그리고 공추가(공해추방운동가) 3명이 참여와 자치를 위한 광역의회 선거 후보로 나가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가시나무에게 세상을 맡기진 않겠어요"
  공추가 : 왜 교수님 같은 분은 후보로 나서지 않는거죠?
  교수 : 나는 올리브나무예요. 내가 왕이 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유익한 일을 해야지요.(변호사에게 떠넘기듯이)사회정의를 위해서 이번 선거에 나가시죠.
  변호사 : 난 포도나무에 불과해요. 선거에 입후보하라는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공해추방운동가에게)나보다는 오히려 사회운동가가 적격일 것 같은데요.
  공추가 : 난 올리브나무도 아니고 포도나무·무화과나무도 아니지만 절대로 가시나무에게 세상을 맡기진 않겠어요. 난 입후보하겠어요. 우리들이 갖고 있는 냉소주의·패배주의와 싸워서 이기겠어요.
  변호사 : 이젠 평범한 나무들이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정말 과감히 입후보하든가, 아니면 가시나무가 아닌 나무를 골라 뽑는 것이지요. 자, 조심하면서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발 밑에서 가시나무가 자라고 있거든요.

  이런 시민운동은 중앙정치의 오염을 지방에서 차단하고, 제3의 선택으로 여도 야도 아닌 시민후보를 뽑자는 정치논리적 접근을 꾀한다. 또 맑은 물, 푸른 하늘, 밝은 미래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자는 생활문화적 접근도 시도한다.

  과연 그들이 현실적으로 새로운 정치문화 창조의 운동성, 정당 후보들과의 차별성이라는 연초록의 ‘시민 색깔'로 "가지마다 새잎이"나게 하고 "지역마다 새 싹이"돋게 할 수 있을지 좀더 시간이 지나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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