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간 포로들‘고독한 투쟁’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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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복씨 ≪76인의 포로들≫ 1권 출간 /“2년 뒤 흩어질 때까지‘한국전’계속”



 “세계 어느 나라도 너희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북한으로 돌아가라.”“우리는 살기 위해 조국을 버렸다. 그곳으로 간 후의 운명은 너희가 더 잘 알지 않느냐.”“그러면 인도에 남아라.” “인도에 사는 한 우리는 천민 계급이다. 휴전협정 원칙대로 우리를 중립국으로 보내달라.”

 이것은 지난 54년, 중립국을 선택한 한국 전쟁 포로들이 인천항을 떠나 인도에 도착한뒤 인도 정부를 상대로 벌인‘대결’내용이다. 이념이 지배하지 않는 새 세상에서 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인도로 향한 76인의 포로들이 그곳에서 2년 간이나 고독한 투쟁을 했다는 것은 한국전쟁사에서 묻혀져 있는 史實이다.

 인도로 향한 중립국행 포로들의 후일담을 담은 ≪76인의 포로들≫(대광출판사)은 세계 전쟁사상 가장 특이하고 비극적 존재인 중립국행 포로들에 대한 첫 보고서이다. 저자는, 작가 최인훈이 ≪광장≫에서 창조한 이명준이라는 가상적 주인공을 빼닮은 실존인물 朱榮福씨(69·전 인민군 소좌) (≪시사저널≫제33호 참조)이다. 그는“한두 달 정도 인도에 머물다가 곧 제2의 중립국으로 보내질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이승만 정부가 우리를 그곳으로 보내놓고 곧 반인도 정책을 선언하는 바람에 친공산 인도 정부가 우리에게 가한 무언의 압력은 컸다”라고 밝힌다.

 3부 연작으로 이어질 ≪76인의 포로들≫ 중 이번에 출판한 것은 중립국 인도편이다. 54년 2월6일 거선 아우스트리아호를 타고 인천을 떠나 16일 만에 인도에 도착, 뉴델리 포로수용소에 억류당한 뒤 56년 2월6일 60인승 에어프랑스 사발기를 타고 브라질로 송환당하기까지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광장, 그 이후’라 할 수 있는 주씨의 ≪76인의 포로들≫에는 인도 당국이 북한행을 종용한 사실, 반공 포로들의 반란과 인도군의 무력 진압, 네루 총리의 중재, 유엔의 개입, 이승만에게 보내는 포로들의 탄원과 묵살 과정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이들을 집단이 아니라 개개의 자연인이요, 20대 청년들로서 관찰한 저자의 눈길이 따뜻하다.

 ≪광장≫의 이명준이‘병원 수위쯤 되어 예쁜 간호원들 잔심부름이나 해주며 늙어갈까’ 꿈꾸었던 인도행 배 위에서 여전히 이념 투쟁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졌다. 중립국행이라는 목표 아래 단결했던 76인은 선사에 오르는 순간 다시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로 갈려 서로 1백m 이내로는 접근 하지 못했다고 한다. 2년후 각국으로 흩어져 갈 때까지 이들은‘한국전쟁’이라는 이름의 전쟁을 계속했던 것이다.

 이명준이 그랬던 것처럼 주영복씨는 이들에게 정신적인 지도력을 행사했지만 관찰자형의 인간인 주씨는 여러 차례 회색분자 또는 감상주의자로 매도당했다.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50년 인천상륙작전 직후 김포 양천에서 유엔군을 향해 손을 든 주씨는 인천 형무소에 수용되던 순간부터 자신이‘불결한 인간’으로 분류되는 운명 속으로 뛰어들었음을 직감했다. 이후 6년간 무국적자로서 브라질로 향하기까지 그를 지배한 생각은‘포로 출신으로 살기보다는 익명으로 살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자기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곳, 그곳에서 살기 위하여 그는 6년을 견뎠다. 그것은 그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지난 여름 방영된MBC 텔레비전의 6?25특집 대형 기획물 <76인의 포로들>은 그런 그의 자존심에 작은 흠집을 냈다.‘너희들이 조국을 등진 대가가 겨우 그거냐’는 야유로 들렸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 두달 뒤 MBC가 그들을 초청했을 대 이를 거부한 그의 동료들 중에는“우리를 두 번 죽였다”고 분노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와서 보니 제작 방침에 악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시청률 때문일 것”이라는 주위의 위로에 마음을 많이 누그려뜨렸다고 전한다.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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