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대중화에 눈 떠야
  • 박권상(편집고문) ()
  • 승인 199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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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용해 산성비?핵무기 같은 주제에 대해 대중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



 1990년 7월19일자 《시사저널》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교수를 커버 스토리로 엮었다. 커버 스토리는 잡지의 얼굴이고 진열장이다. 독자의 눈길을 끌고 환심을 사는 것이므로 시사주간지의 커버 스토리 선정은 편집인이 가장 고심하는 결정이다. 여기에 대한 판단의 잘잘못으로 잡지의 성패가 좌우되고, 커버 스토리의 선택 성향이 쌓이면 그것이 곧 잡지의 성격을 형성한다. 잡지의 얼굴이라 함은 얼굴을 보고 사람의 성격을 아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당시 편집인이었던 나는 호킹 커버로 선정하는 데 자신이 없었다. 고급 시간주간지로서 아인슈타인 이후의 천재라는 인물, 그나마 지체부자유자라는 인간적인 면도 있어 커버 스토리로 집중 취재하는 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었으나, 그를 표지 인물로 삼았을 때 과연 얼마나 팔릴 것이냐 하는 걱정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호킹 커버 스토리는 선풍적이었다. 우선 가판 실적이 월등하게 높았고 많은 사람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그대 느꼈던 것은,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나 잠재적인 선호도가 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이어 《시사저널》은 일본을 방문한 호킹을 서울로 초청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해 9월8~11일 3박4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그나마 8일이 토요일, 9일이 일요일이었고, 따라서 10일(월요일)에 그의 숙소인 신라호텔의 다이너스티 홀에서 한차례 공개 강연을 열기로 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김제완교수의 강한 항의 겸 간청이 있어 10일 오전에 서울대학교 문화관에서 학생들을 위해‘아기 우주’라는 특강을 추가하였다.

스티븐 호킹 초청과 대전엑스포 성공이 지닌 의미
 이 날 두 번에 걸친 호킹의 특강에 대한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3천석인 서울대학 문화관이나 1천석인 신라호텔 강연장에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복도에까지 청중이 넘쳐흘렀다. 그날 하루 종일 비가 억수로 퍼부었고, 그의 강연 행사를 널리 알리지도 않았는데 젊은 세대가 보여준 관심에 정말 감격스러웠던 것을 잊을 수 없다.

 7일에 끝난 대전엑스포를 보고 느끼는 바가 많다. 한마디로 21세기를 향한 과학기술 정보의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내일에의 꿈을 과학 기술로 설계한 한마당이었다. 특히 젊은이와 어린학도 들이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미래를 그린 포철관이나 선경관 등에 운집하여 몇시간씩 기다리다가 비집고 들어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관객 수가 1천4백만이라는 데 놀랐다. 1천만명 참관이 당초 예상이었는데 40%가 넘었다. 전국민의 3분의 1이 대전엑스포를 다녀옴으로써 21세기 과학기술 사회를 여는 국민의 교육장 구실을 했다. 무엇보다‘과학의 대중화’라는 국가적인 과제에 푸른 신호가 오르고 있는 느낌이다.

 왜 과학기술에 국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는가는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다. 한정된 국내자원, 질 높은 고급 인력 활용, 외국 기술을 이전 받기 어려움 등 다급한 문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으며, 이제‘과학기술만이 우리의 살길’이라 하여 국가 생존의 전략이 되고 있다. 21세기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앞서 과학기술의 패권주의가 지배한다는 것이 미래학자들간의 일치된 예측이 아닌가.

정부 ? 과학자 ? 학교 ? 언론의 지도 역량이 문제
 그러나 지금까지 과학기술은 특수한 사람들이 맡는 특수 작업으로 그릇 인식되고,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치부되어‘과학의 대중화’는 정책의 뒤안길에 팽개쳐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국민 대중이 신경을 쓰고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왔다. 앞서 지적한 대로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이 의외로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문제는 과학기술의 대중화에 발동을 걸어야 할 정부 당국이나 과학기술자들, 학교 교육, 그리고 언론매체의 지도 역량이다.

 스티븐 호킹은 《시사저널》 90년 7월19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과학기술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저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이 말은 일반 대중이 과학에 관한 기본적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그럴 때 대중은 전문가 손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분별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중은 과학에 대해 상반된 인식을 갖고 있다. 대중은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온 생활 수준의 향상이 계속되기를 기대하는 한편 과학을 믿지 않는다.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신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내는‘미친 과학자’를 풍자하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녹색당을 후원하는 행위도 불신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대중은 역시 과학에, 특히 천문학에 관심을 갖는다. <코스모스>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은 것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대중의 관심을 이용해 산성비?온실효과?핵무기?유전공학 같은 주제에 대해 대중이 스스로 분별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지당한 말이다. 과학의 대중화에 박차를 가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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