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독일의 동독 심판
  • 본·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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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발포명령 관련자 구속 … 호네커 부인도 대상



 통일독일에서 구 동독의 고위 정치인들에 대한 법적 심판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배층에 대한 단죄보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한 때 주춤했다.

 그러나 정치국원 겸 노조위원장이던 하리타슈에 대한 판결에 이어 4명의 전직 국방위원이 ‘살인교사죄’로 구속되고 호네커 서기장의 부인 마르고트 호네커 문교장관에 대한 심판여부가 논란되면서 이제 긴 심판의 과정에 들어섰다.

 구 동독 체제에서 발생한 비인간적 처사로서 지금 독일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동독을 탈출하려던 동독인에 대해 ‘발포명령’을 내린 책임자에 대한 처벌문제이다. 사건 현장이 베를린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베를린 주정부 검찰국은 이미 지난해 11월 병원에서 퇴원하는 호네커 전 서기장을 구속했다.

 그러나 “환자에게 너무 지나친 처사”라는 여론의 비판과 함께 ‘살인교사죄’가 법률적으로 성립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즉각 석방하고 말았다. 그 후 ‘요양’을 이유로 소련군 병원으로 피신해 있던 호네커는 지난 3월 중순 소련으로 도피했다. 이 사건이 나자 독일 정부는 ‘주권침해 행위’라며 항의하고 나섰다.

“송사리만 잡을 수는 없다”
 독일과 소련 사이에 외교문제로까지 번질 듯하던 이 사건은 며칠이 못 가 잠잠해졌는데 독일 언론들은 정부가 호네커 피신을 묵인한 것으로 해석했다. 또한 그 시점이 소련이 최고소비에트의 비준을 받은 ‘2+4 조약’을 독일 정부에 공식 전달하기 전날이었기 때문에 소련이 전승국으로서 독일에 대해 행한 마지막 ‘주권제한 행위’로 간주되기도 했다.

 호네커가 소련으로 피신하면서 잠잠해지는 듯하던 동독 국방위원들의 ‘살인교사죄’는 지난 5월21일 빌리 슈토프 전총리, 하인츠 케슬러 전국방장관을 비롯한 4명의 국방위원이 베를린에서 구속되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61년부터 89년 사이에 1백50명 이상이 국경에서 사살되었다. 4인의 국방위원들은 “국경을 넘으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총기를 사용하라는 호네커의 명령에 공동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 베를린 검찰 측의 해석이다.

 이중에서 특히 케슬러를 체포하기 위해 베를린 경찰은 한 차례 소동을 피워야 했다. 그가 소련 장성으로 변장하고 소련으로 탈출하려 한다는 정보를 독일 국방부로부터 전해 받은 베를린 경찰은 소련 공군기지를 포위하고 삼엄한 검문을 폈다. 이어 검찰은 케슬러의 집 자물쇠를 갈아 끼운 후 “열쇠는 파출소에 와서 가져가라”는 쪽지를 남기고 갔다가 파출소에 온 그를 체포했다. 이들이 구속되자 동독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에곤 크렌츠는 자신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동독 상황에 책임이 있으니 체포하라고 요구했다. 동시에 그는 “법을 위반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실정법적인 문제로 4명의 국방위원이 법적으로 심판 받을 지에 대해서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발포명령이 “구류에는 충분하지만 판결을 내리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또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도 ‘회의적’이다. 유타 림바하 베를린 법무장관도 이러한 정황을 잘 알고 있지만 “송사리만을 잡을 수는 없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 탈출자를 사살한 38명의 국경수비대원 명단이 파악되어 있는데 피해자 가족의 고발이 있으면 자칫 이들만 처벌받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에 <타게스차이퉁>은 사설에서 발포명령을 “인간성에 대한 범죄”로 규정하면서 2차대전 후 나치 범죄자들에 대해 실정법만을 적용함으로써 과거청산에 실패했던 전례를 반복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4명이 구속된 직후 독일에서는 구 동독 정부의 또 다른 비인간적인 처사가 보도되었다. 호네커의 부인인 마르고트 호네커가 장관으로 있던 문교부 산하 청소년 지원과에서는 동독을 탈출하거나 간첩행위를 하다가 체포된 동독인들의 자녀를 부모의 승낙을 받지 않고 강제 입양시켰던 것이다.

외환관리 책임자는 ‘면죄’
 베를린의 <모르겐포스트>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그뤼벨 자매의 부모는 73년 8월 체코를 거쳐 동독을 탈출하려다가 체포되어 수감돼 있던 중 서독 정부에 의해 구제되었다. 그러는 동안 이들 자매는 동독 정부가 선택한 가족에게 강제 입양되어 있었다. 비밀경찰의 감시 속에서 살던 이들은 17년만인 작년 4월 친부모를 만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강제입양 사례가 수백 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위 정치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독일 정부가 너무 관용을 베풀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은 전 동독 외환관리 총책임자였던 알렉산더 샬크골로드콥스키 경우이다. 《슈피겔》이 지난 89년 가을, 그의 비리를 추적, 보도하면서 그의 정치생명은 종지부를 찍었다. 연방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그가 운영하고 있던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업조정과’를 통해 결제된 2백20억 마르크의 행방이 지금까지도 묘연하다. 또한 그는 서독 기업의 탈세를 도와주었고 동독의 불법 무기수출에서 서방으로부터의 불법 전자장비 수입에 이르기까지 각종 범법행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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