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광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6.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상' 심어주며 막강한 영향력 행사 … 수용자 입장의 ‘비평작업’ 전혀 없어

‘ 고급 의상이나 화장품을 광고하는 모델은 왜 무관심한 듯한 표정일까. 어떤 때는 보는 이(소비자)를 무시하는 듯한 인상일 때도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강명구(서울대·신문학) 교수가 옮긴 《영상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존 버거 지음)는 이렇게 답한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광고모델)은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처럼 무관심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왜냐하면 무관심이 잘 드러날수록 그 모델에 대한 소비자의 환상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소비자는 광고가 ‘설득’하는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도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갖는다. 그러므로 광고모델은 “한결같이 무관심한 듯, 초점이 없는 모습을” 한 채 소비자들로 하여금 ‘짝사랑’(환상)을 품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의 광고 속에는 ‘많은 전략’들이 자리잡고 있다.

 20세기의 막바지, 후기산업사회 혹은 고도대중소비사회로 불리는 이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광고에 노출돼 있다. 완전히 포위돼 있다. 한 조사는 도시에 사는 보통 사람이 하루에 접하는 광고 수는 3백 개가 넘는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의 하루 평균 텔레비전 시청시간을 2시간으로 잡으면, 1인당 광고 시청시간은 매일 10분에 이른다(현재 프로그램 방영시간의 8% 이내를 광고로 사용하고 있다). 20~40편의 광고를 매일 접하는 것이다. 서구의 한 학자는 이미 “우리 자신이 광고를 스치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항상 우리를 스쳐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제 광고는 산업·상업으로서의 광고만은 아니다. 광고학자들은 광고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현상이며, 문화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광고의 막대한 영향력에 비해 광고를 ‘소비’하는 일반인들은 광고를 무시하거나, 광고에 무지하다. 반대로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좋아하기만 한다.

“광고가 인간과 세계 지배한다”
 광고를 하나의 담론(사고의 언어적 표현, 일상적 화제, 계약서는 물론 영화·만화·광고 등 사회적으로 의미를 만들고 재생산하는 구체·총체적 현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통해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서구의 진보적 학자들은 “광고가 인간을 세뇌한다”고 지적하면서 모든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이제 광고“라고 벌써부터 말해왔다.

 국내 광고학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89년 한양대와 중앙대가 각각 광고홍보학과와 광고학과를 개설하면서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각 대학의 신문방송학과나 경영학과 등에서 광고에 관한 이론적 접근이 있어 왔지만, 주로 ‘광고산업에 의한, 혹은 광고산업을 위한’ 입장이었다. ‘광고에 대한’ 즉 수용자의 입장에서 연구가 이뤄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국내 광고학의 현주소에 대해 “외국의 이론을 소개하는 수준이며, 우리 나름의 이론을 정립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조병량(한양대·광고홍보학) 교수는 말한다.

 현대사회를 ‘소비조작의 관료사회’로 명명하는 프랑스의 좌파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현대사회의 일상생활을 소비와 직결돼 있으며 따라서 일상성의 연구는 광고의 분석과 직결된다고 보았다. 그는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중요한 분야로 광고를 꼽고 있다. 그는 “소비자는 생산자에 의해 움직이며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역할이 광고”라고 규정하면서 광고전문가를 “현대 사회의 전능한 마술사”라고 부른다.

 물론 이같은 비판적 광고분석보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광고가 갖고 있는 순기능을 강조하는 이론과 연구가 훨씬 많았다.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본주의는 ‘세계체제’로 나섰으며 그 진행과정에는 이미 가속도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는 좀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광고는 소비자에게 접근,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인간에 관한 모든 이론을 동원한다. 이미 금세기 초에 ‘광고심리학’이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 인류·사회학을 끌어들였고 2차대전 이후 커뮤니케이션 이론 및 경영학을, 그리고 최근에는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까지 수용한다.

 광고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만들어 판다는 소박한 경제학의 도구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욕망과 무의식을 자극, 수요를 창조하는 단계로 옮아갔다. 결국 오늘의 소비자는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광고가 환기시키는 제품에 관한 이미지를 구입하는 것이다. 기호학자들의 표현을 빌면 “언어가 지칭하는 사물이 아닌, 사물과 전혀 관계없는 언어”를, 즉 존 버거가 말한 환상을 사는 것이다. 소비를 통해 소비자는 광고가 제시한 환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예컨대 ‘영국신사들만 입는 옷’이라고 광고하는 옷을 사입으면 영국신사처럼 보인다는 ‘환상’을 구입하는 것이다.

 소장학자 정연우(서울여대 강사)씨는 한 월간지에서 “광고가 인간의 사고 의식 가치관 생활양식 등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고 전제하고, 광고의 영향력은 개인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현실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은폐시키기도 해서, 현존 질서를 유지·강화하는 데도 단단히 한몫을 한다”고 강조한다. 광고에 대한 비평의 당위성은 여기서 발견된다. 광고에 대한 비판론은 크게 두 갈래로 분류된다. 우선 소비자의식을 조작하고 과소비나 성적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명시적인 역기능에 중점을 두는 시각이 있으며, 광고에 잠재돼 있는 의미를 파악,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유럽의 네오 마르크시즘 시각이 있다.

 김수정 씨의 91년도 서울대 대학원 신문학과 석사학위 논문 ‘텔레비전 광고의 담론분석적 연구’는 최근 광고연구의 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 논문은 82년과 90년의 한국 텔레비전 광고를 비교분석, 광고산업과 전략이 사회의 변화와 함께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피면서 역사·사회적 맥락 위에서 광고가 생산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중요한 담론인 광고를 분석하고 광고를 통한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구성 과정을 진단하는 거이다. 이 논문은 텔레비전 광고를 담론적으로 분석한 첫 시도이며 동시에 기호·해석학 등의 관점을 구사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성에 호소’에서 ‘감성에 호소’로
 김씨는 82년의 광고전략이 새로움 및 품질개선 등 정보 중심으로 소비자의 이성에 호소하는 특징을 보인 데 비해, 90년의 광고는 인간애와 생활양식 등을 강조, 감성에 호소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밝혔다. 82년의 광고전략이 다른 제품과 구별시키는 제품 중심의 차별화 전략이었다면 90년의 그것은 수용자 중심의 시장 세분화, 즉 다양한 소비자층 가운데 하나를 겨냥하는 전략이 중심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최근의 광고 표현전략은 △드라마 형식 △시리즈(캠페인) △인간애 강조 △생활현장 중시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 연구는 위와 같은 전략과 기법이 압축된 VTR 광고와 세탁기 광고를 사례로 들고 있다.

“남편 사랑은요, 가끔 확인해봐야 돼요”광고 제작사의 전략
 삼성전자 VTR 광고를 만든 제일기획은 ‘화질 좋은 VTR'이라는 상표이미지 구축을 광고 캠페인의 목표로 삼고 △일상생활 속에서의 유머로 광고 기여도를 높이고 상표 호의도를 높인다 △선명한 화질에 대한 4헤드 기능 등을 강조한다 △신혼시장을 집중공략, 점진적인 시장확산을 꾀한다는 기본 전략을 세웠다.

 이 전략을 바탕으로 신혼생활의 에피소드를 드라마화해 소비자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광고를 수용하게 하면서 “남편 사랑은요, 가끔 확인해 봐야 돼요.” “남편 퇴근시간은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등 내용전개에 있어서 극적 반전효과로 광고의 기억도를 높인다는 표현전략을 화면에 담았다. 이 결과 매출면에서 “광고 시작 1개월만에 1백% 이상 신장”이란 기록을 세웠다.

김수정씨의 내용 분석
 김수정씨는 삼성전자 VTR광고가 담고 있는 의미는 VTR이 신부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함으로써 세월이 흐름에 따라 퇴색해 가는 여성의 미모와 식어 가는 신혼의 애정을 방지하고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해준다고 본다. 이 의미는 두 신화(이데올로기)에 근거하는데 첫째는 “여성은 예뻐야 한다”이며 둘째는 “여성의 존재의의는 남편으로부터 사랑 받는 데 있다”는 것이다.

 결국 광고는 일상적 삶과 인간관계를 소비 중심으로 재구성, 이를 통해 자유시장경제를 유지하고 “기존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이같은 광고는 “성의 사회적 관계가 현대 광고의 이데올로기적 가치형성에 분명한 중심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에 이바지하는 ‘광고비평’
 광고에 대한 비평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광고비평을 통해 외국광고를 모방하는 제작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카피라이터 이만재 씨의 지적처럼 광고비평은 우선 광고주·광고제작현장 등 광고생산 구조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강우(세종문화 전무)씨는 “객관적 비평은 광고를 보는 여러 시각의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광고에 대한 연구와 비평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정 등 모든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문제로 떠오른 이 과잉 커뮤니케이션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크게 유효할 것이다. 포지셔닝 개념의 창시자 알 라이스와 잭 트라우트는 “광고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실험하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규정하고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광고에서 사실로 입증된다면 그 이론은 정치 기업 종교 등 모든 행위에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광고비평은 결국 넓게는 현실세계의 모순을 읽어내, 인간의 인간다움에 이바지하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언론연구회(회장 이효성·성균관대 교수) 매체비평분과가 번역한 아더 아사버거의 《대중매체 비평의 기초》(이론과 실천)는 광고비평의 이론과 실제를 알기 쉽게 일러주고 있다. 아더 아사버거의 말을 조금 바꾸면, 광고가 지배하는 현대를 살면서 광고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나는 지배당하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