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교류, ‘가요무대’ 공동제작부터
  • 정리 · 이문재기자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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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90년대 새 방송질서 전망’ … 통폐합 원상회복이 선결 문제

 언론통폐합으로 시작된 80년대를 전두환 전대통령의 국회청문회 중계로 마감하고 90년대를 맞이한 우리 방송은 숱한 과제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본지는 康賢斗교수(서울대?방송학)와 金萬龍교수(한국외국어대?방송학)와의 대담을 통해 ‘80년대의 청산이 90년대 방송의 과제’라는 관점에서 방송사통폐합의 ‘원상회복’, 방송구조 개편문제, 남북한 방송교류 등을 살펴보았다.

康=방송통폐합이 10년간 거론되지 않다가 이제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언론통폐합의 문제는 무엇인가를 차분히 이성을 갖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시각으로 보면 모순논리가 있어요. 지금 방송전문가와 방송인들이 주장하는 공영방송제도와 80년 당시 통폐합의 이론적 근거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金=그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80년대 통폐합의 명분은 방송의 공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새삼스럽게 공영방송 정착화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80년대의 공영방송과 지금 쓰이는 공영방송이란 용어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방송이 다원화 시대를 맞더라도 공영 방송의 정착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90년대는 특수·전문 방송 시대

康=80년대 방송의 파행성은 70년대에도 존재했던 것이지요. 방송의 정권종속과 상업방송의 성격은 그때부터 계속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80년 방송통폐합의 근본적인 문제는 90년대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문제는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통폐합을 단행했다는 것입니다.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에 파행적인 결과를 낳았지요. 개국을 앞둔 새 특수방송도 그 결정과정에서 또다른 측면의 절차를 무시했습니다.

金=현재의 방송상황이 강압적 5공비리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방송인 내부에서는 기득권보호 차원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삼가고 있고 연구자들은 이미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는 한마디로 이 문제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문제는 심각하게 대두될 것입니다. MBC지방사가 주식반환 건으로 본사를 제소한 것은 비단 MBC만의 문제가 아니라 CBS?TBC?DBS 등 방송통폐합 모두와 관련됩니다. 따라서 이 문제가 해결?청산되지 않고는 방송민주화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입니다.

康=제가 갖는 관심은 전파의 원상입니다. 전파의 원상은 국가재산입니다. 통폐합된 현재의 문제는 전파사용 허가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정부 또는 정권이 통폐합 조치로 전파를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송통폐합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전파를 가져간 그 부분에 대한 원상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지요. 또한 당시 합의된 자산평가가 헐값이었다면 그 문제도 원상회복 논의과정에서 다뤄져야겠지만 전파의 원상문제는 그 문제와는 각도가 다른 문제입니다. 90년대는 특수방송의 시대가 아닐까요. 불교방송?평화방송?교육방송 그리고 경찰방송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金=강교수께서 지적하신 대로 특수?전문 방송시대가 열린다고 봐야지요. 더불어 방송미디어의 다원화 시대의 서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민주주의는 다양한 주의 주장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매체의 다원화는 필수적입니다. 이제 라디오 채널이 10여개가 되는데 채널이 많아지면 자연히 전문화될 것입니다. 긴 안목에서 보면 제3의 매체가 생겨나는 것은 방송종사자의 자기혁신과 처우개선, 방송 행위에 대한 공적인 평가 등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겁니다. 불교?평화방송의 출현을 환영하면서도 이 두 방송의 개국이 정치적 산물이란 점에서는 불만입니다. 87년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공약 실천의 일환으로 태어났는데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康=또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과연 이들 방송이 특수방송이냐 하는 것입니다. 곧 개국할 두 방송이 실제로는 일반방송을 지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민영 등장하여 경쟁체제 돌입해야

金=관영?민영?상업방송이 한번도 정착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방송제도에 관한 대전제는 어떤 제도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송제도이든 올바로 운영만 하면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갑니다.

康=현재의 공영제도를 더 다듬어 발전시켜나가는 게 좋지 않느냐는 의견도 많은데요.

金=제가 민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현재 방송 정체성의 불투명함과 방송의 이원독점 상황, 경영의 방만과 창의성 결여를 극복하고 방송제작구조의 다원화를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민영방송이 등장하여 경쟁체제?상호보완체제로 돌입해야 합니다. 기존의 양방송사의 발전과 더불어 양방송사와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전국적인 방송망의 신설, 그리고 각지역 도시마다 독립된 텔레비전국을 갖춰 지역문화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크게 보면 각도시마다 4개의 방송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제 생각입니다.

康= 공영방송제도를 지지하는 일반적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의 공영구도에 경쟁요소를 도입하고 상업성을 허용하면서 새로운 채널을 도입하는 방안은 없을까요? 상업성을 배제하면 공영방송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돼야 하는데 세금을 줄이는 차원에서 상업방송을 한다면 오히려 공영적이지요. 경쟁문제 역시 통폐합 상황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지금 4개 채널이 있는데 채널끼리의 경쟁이 없는 이유는 현재의 공영방송 체제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릅니다. 만약 그걸 알 수 있다면 제도를 요란스럽게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새 채널 설립문제는 공영?민영과 관계가 없다고 봐요. 이렇게 보면 새로운 방송제도에 관한 논란은 조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金=어떤 형태의 방송제도이든 공익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원칙입니다. 방송이 이윤추구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민영방송제 비판론의 근거는 민영은 상업방송이고, 따라서 공익성보다는 재벌의 이윤추구 논리에 지배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영방송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康=김교수께서 속해 있는 방송제도연구위원회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방송에는 두개의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는 정부의 손아귀로 떨어지는 것이고 또하나는 재벌의 손아귀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정부의 시녀가 더 무섭다는 걸 우리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정부와 재벌에서 벗어나는 안전지대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북경아시안게임 남북방송교류 이정표될 듯

康=갑자기 방송인들에게 현안으로 다가선 것이 남북방송교류 문제입니다. 방송현장이나 방송연구자들이 부끄럽게도 너무 오랫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우쳐준 것이 근래의 베를린장벽 붕괴와 잇따른 동유럽의 개혁바람이었습니다. 그간 우리의 남북방송 문제는 남북교류를 충실히 보도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었어요. 이제는 단순한 매체로 그칠 것이 아니라 방송 스스로가 변화의 에너지를 창조하는, 변화의 주체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金=강교수께서 이 분야의 개척자 역할을 해오셨는데, 제가 보기엔 첫째로 북한방송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다각도로 심화되어야겠고, 둘째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방송편성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프로그램과 방송인력의 교류, 방송 프로그램의 공동제작입니다.

康=올가을 북경아시안게임은 남북방송교류의 한 이벤트가 될 겁니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무슨 프로든 교환 방송만 되면 분단고착 해소에 기여합니다. 처음엔 메시지가 담긴 방송은 피해야 합니다. 남북한 양쪽 다 현재로선 상대방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저항과 거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관광?스포츠?자연다큐멘터리 등에서 교류를 시작해야죠.

金=그와 아울러 전파방해를 서로 제거해야 합니다. 라디오의 경우는 전파방해만 중지하면 상호 청취가 가능합니다. 텔레비전은 남북한의 방송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녹화방송을 이용하더라도 서로 상대방의 텔레비전을 시청해야 합니다. 동유럽의 민주화는 고르바초프와 텔레비전이 이룩해냈다는 말을 우리는 교훈으로 삼삼아야 합니다.

康=우리가 남북방송교류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북한에 비해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전파방해가 우리의 자신감 없음을 증명하고 있어요. 문제는 정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일반 국민들은 수용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현재 양방송사에서 방송하는 <남북의창>이나 <통일전망대>가 그 좋은 예입니다.

金=맞습니다. 남북방송교류에서 중요한 자세는 낙후된 북한방송을 멸시할 것이 아니라 그 수준을 끌어올려 우리와 대등한 동반자로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남북 공동프로그램 제작, 가령 <가요무대>같은 프로그램을 공동제작할 수 있을 겁니다.

康=그 정도에 이르면 상당부분 남북방송교류는 성취된 것이지요. 남북방송교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는 상호간의 신뢰회복입니다. 양쪽 다 이익이 있다는 인식이 필요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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