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을 위한 변명
  • 최일남 칼럼니스트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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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가을이었다. 단 한 표차이로 일단 부결되었던 자유당의 3선 개헌안이 이틀 만에 가결 쪽으로 뒤집히자 국회의사당은 난장판이 되었다. ‘사사오입’이라는 해괴한 숫자놀음 끝이었는데 단상 단하에서 여야 의원끼리 난투극을 벌인 건 물론이고, 당시 서른 세살의 한창 나이이던 이철승의원은 의사봉을 쳐 가결을 선포한 단상의 최순주 부의장을 번쩍 들어 의석으로 통하는 계단에 내려 놓았다. 그 틈을 타서 야당측 부의장이었던 곽상훈씨가 개헌안 부결의 확정을 선언, 의사봉을 빼앗아 다시 땅, 땅, 땅 두들겼다.

1958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전야였다. 국회본회의장의 야당의원들은 엿새째 계속된 농성으로 어지간히 지친 상태였다. 오전 10시가 되자 국회 경위 옷을 입은 3백명의 낯선 사나이들이 순식간에 의사당으로 난입했다. 그들은 전국 경찰관 중에서 선발된 무술경관으로, 자유당 정부가 전날 밤 부랴부랴 경위복을 입힌 것이다.

아전인수의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
급조 경위들은 ‘단상을 사수하던’ 야당의 소장의원들을 몰아내고 의석을 지키던 야당의원들마저 마치 떼를 떠서 옮기듯 밖으로 들어냈다. 어떤 의원은 속기사 책상 위에 올라서서 “아이고 아이고” 울었으며, 박순천의원은 “차라리 총을 가지고 오라”고 울부짖었다. 그렇게 야당을 싹쓸이한 다음, 야소여대의 자유당국회는 “의석을 소란케 한 사람을 퇴장시켰음을 선포한다”는 한희석 부의장의 희한한 선언에 이어, 국가보안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그 뒤로도 비슷한 상황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심지어 의사당에 ‘오물을 투척한 사건’도 있었으며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는 해프닝도 생겼다. 삿대질과 고함은 약과였으며 여야의 몸싸움 정도는 너무 흔해빠져 거론할 건덕지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승만대통령은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아전인수의 탄식을 뇌었을 것이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고 말이다. 그 뒤에 있는 ‘제3별관’에서의 ‘기습통과 의회’는 그야말로 하늘아래서는 볼 수 없는 작태였으며, 역대국회서는 항상 이와 흡사한 일이 반복된 셈이었다. 자연히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자질 이야기가 나오고, 이제는 그것이 정치인들에 대한 매도와 각성을 촉구하는 여론으로 집대성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 국회서 실현된 전두환씨의 증언 과정에서 이 문제가 또다시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확실히 볼썽사납다. 누구나 흥분하면 헛말이 나오고 거친 말투로 번지게 나름이며, 한번 튀어나온 말은 여간해서 주워담기 힘들고 억지를 부리기 십상이다. 도전에 응전하는 것은 좋으나 이미 이치와 논리가 증발한 마당에서 상대방의 맞고함을 찍어 누르기 위해 목청껏 볼륨을 높이다 보면, 자칫 욕설로 발전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면 만사휴의다. 사람들은 아무개 의원이 무슨 욕을 했다는 사실만을 오래 기억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본전도 이자도 놓칠 공산이 크다. 하물며 언어표현이 주무기인 국회의원. 그것도 대다수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점잖지 못한 언설을 휘둘렀을 때의 손실은 이만저만 아닐 터이다. 따라서 거개의 언론들이 전두환씨의 증언 내용에 어이없이 실망한 눈을 곧바로 현장의 국회의원들에게 돌려, 심한 경우 ‘시정잡배’수준으로 몰아붙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때의 잘못은 양자의 失態를 같은 분량으로 다루는 무리에 있다고 믿는다. 참석한 의원들의 중구난방을 잘 했다는 것이 아니다. 저쪽을 친 손으로 이쪽을 치는 평면적 균형 감각이 그 자리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본말을 옳게 인식하는 자세가 아니며, 근자에 와서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정치권에 대한 환멸을 조장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화해하고 용서하며 다같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과 시간을 펼쳐가기로 작정한 가슴에 또다시 재를 뿌린 장본인에게도 결과적으로 득될 것이 없다. 기어코 잊어서는 안될 일과, 기회 있을 때마다 질책하고 표로 선택해서 ‘정치적 물갈이’가 가능한 일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앞에서 열거한 사건들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의사당내에서의 저런 작태는 역사의 기록에서 머지않아 무산되었을 망정 사사오입과 보안법 파동이 불러 일으킨 왜곡과 비리는, 지금도 마침내 청산돼야 할 ‘견본’으로 모두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무엇이 원인 제공 구실을 했는가를 살피고 그걸 소홀하게 넘기지 않는 태도도 나쁘지 않다.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고 희석시킨다
물론 이와 다른 의견이 많다는 것도 충분히 인정한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정치인들은 여전히 버캐가 켜켜로 쌓인 낡은 행실로 사사건건 우리를 실망시킨다고 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5공청산은 한두사람에 대한 문책이나 응징으로 끝나는 게 아니며, 함께 그 시대를 산 모든 국민이 더불어 져야 할 멍에같은 것이라는 견해까지 있다.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회의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그런 수준의 정치인이 일차적으로 부담해야 할 자책감이나 반성이 한편에서, 그들을 ‘할 수 없이나마’선택한 측의 의무는 전혀 간과해도 되느냐는 점이다. 5공청산의 짐을 나누어 지는 것은 좋으나, 해결의 우선순위나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고 희석시키는 구실을 함으로써 항상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기 알맞다.

이런저런 의미에서, 전씨의 증언태도 불성실과 의원들의 소란행위가, 각각 81% 대  21.2%로 집계된 《시사저널》의 여론조사 결과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여러 설문 가운데 두 항목의 대비가 유독 눈에 띈 것은 개인적인 관심이 그 분분에 쏠린 탓이기도 하겠지만, 줄기와 가지, 또는 숲과 나무를 구별하는 시각의 합치를 발견한 느낌을 괜찮았다. 안 그럴 때도 있을 것이로되, 되도록 선입견을 배제하고 원리 원칙에 충실하려는 노력의 소중함도 동시에 깨닫게 해주었다. 글을 쓰는 무서움의 뿌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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