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범람시대‘ 소비자불만도 폭증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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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관련 고발 줄이어…안정도 검사 강화 등 시급하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富와 財의 상징이었던 자동차가 일반인 사이에 어느덧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요즘의 젊은 세대는 기동성과 편리함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차 한대 정도는 굴려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정도다.

이처럼 자동차 소유자가 늘어나면서 교통체중?공해 등 부작용과 함께 소비자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87년 7월1일~89년 10월 31일에 접수한 자동차관련 피해구제 접수현황에 따르면 총8백79건인데, 이는 단일제품으로서는 최고 기록이다. 불만 내용을 분류해보면 품질에 대한 것이 64.4%로 단연 으뜸이며 그다음 거래조건, 서비스, 기타 등의 순이다.

이같은 결과는 다른 소비자단체들의 고발창구에서도 비슷한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YMCA 소비자고발센터의 朴仁禮간사는 “자동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기업의 노사분규 등으로 하자 발생률이 높아져서 그런지 자동차에 대한 고발이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89년 1월1일~12월18일 사이에 총6백9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연맹에서도 89년 1월 1일~10월 31일에 총1천2백93건의 상담이 들어왔으며 자동차관련 고발 전담창구를 따로 마련한 11월에는 한달 동안에만 모두 2백2건이 접수됐다.

주차중인 차에서 까닭모를 화재발생도
역시 품질에 관한 고발률이 가장 높은데 그 중에서도 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과 시동 이상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고, 계약불이행?출고지연과 수리지연 등 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중에는 출고직후 고장이 나는가 하면 심지어는 세워둔 차에서 불이 나기도 하는 등 그냥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위험한 사례도 심심찮게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하자들은 아차 하는 경우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키게 할 뿐 아니라 어느 특정회사 차에만 한정되지 않고 공통적으로 발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최모씨(37세?서울 양천구)는 89년 10월26일 하오 12시경 집앞쪽 길에 커버를 씌워서 세워놓았던 엑셀GL(89년 7월 25일 출고)에서 불이 나 식구들을 총동원해 물을 떠다 불을 끄는 등 대소동을 벌였다. 주모씨(35세?서울 서초구)도 89년 4월1일 하오 3시30분경 르망 GTE(4만km 주행)를 몰고 중부고속도로를 가던 중 본네트 안에서 불이 일어나 뒤따라 오던 차량 운전자들의 도움으로 흙을 끼얹어 겨우 불길을 잡았다. 또 유모씨(32세?서울 강동구)는 89년 8월29일 베스타 12인승(1만8천km 주행)을 타고 혜화동으로 가던 중 엔진밑에서 불이 나 주차시킨 후 출동한 소방관들의 도움으로 불을 끄기도 했다.

이렇게 화재나 이상이 발생할 경우 부상당할 뻔했다는 공포와, 대기업에 대한 배신감으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해당회사에 적극적으로 배상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전문지식 결여, 업체들의 용의주도한 책임회피로 결국은 단념하는 선에서 사고를 마무리짓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고원인이 차체 자체의 결함인지 운전자의 잘못인지 기술적으로 정확히 가려내기가 어려운 것도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는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새차에서 기름이 새고 동일한 고장이 반복해서 발생해도 다른 차로 교환받는 길은 거의 막혀 있었던 셈이다.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이 개정된 89년 8월 이전에는 구입가 환불이나 새차교환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소비자연맹의 都永淑 고발상담실장은 그간의 어려움을 밝히면서 “그나마 개정된 피해보상 규정 덕분에 최근엔 기업측과의 의견 조정이 비교적 용이해진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과거보다 개선된 차원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해서 자동차 품질과 관련된 안전문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동안 소비자들 사이에 내수용 차가 수출용보다 안전도에서 떨어지고 가격은 오히려 더 비싸다는 불평이 있어왔지만, 공급에 비해 수요가 폭발적이었던 만큼 이를 감수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사고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구겨진 차를 보면서 그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것만을 다행으로 자위해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외국의 자동차 시험제도와 비교해보면 그동안 우리 소비자들이 참으로 허술한 제도하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를 타왔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이 앞서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에서는 안전을 위해 각각 51, 48, 47개 항목에 대해 엄격한 검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6개 항목만을 형식적으로 테스트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6개 항목이란 연료소비율, 가속성능, 경사도, 최소회전반경, 최고속도, 제동능력 등이며 내구성 주행시험 기준은 2만km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같은 항목들조차 안전도와는 무관한 조사들이며 국가에서 변변한 검사시설조차 갖추지 못하여 업체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만큼 6개항에 걸친 검사조차도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 선진국에서는 자사 자동차에서 결함이 발견될 경우 공개적으로 리콜(하자가 발견된 모든 자동차를 소환, 부품을 교환하거나 수리해주는 것)을 실시하고 있으나 우리 업체들은 기업의 이미지 실추만을 우려, 이에 소극적인 편이다. 이런 사항들은 작년 12월8일에 한국소비자보호원에서 개최됐던 소비자피해 예방을 위한 토론회(자동차피해관련 문제점과 대책방안)에서도 개선돼야할 점들로 이미 지적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의 소비자보호과 崔正根차장은 “하자가 발생할 경우 해당 자동차를 구입한 모든 소비자들에게 편지로 그 사실을 통보, 수리를 받도록 하고 있다”며 “주소가 변경돼 연락이 안되는 경우는 현재 우리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이같은 예외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일간지에 광고라도 내야 하겠지만 우리 풍토가 아직까진 리콜에 익숙치 않아 광고를 게재한 기업만 큰 타격을 입기 십상”이라며 “정부 주도로 모든 업체가 한꺼번에 실시하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생산업체 기술향상 노력도 뒤따라야
이렇듯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그동안 누적돼왔던 문제들이 계속 터져나오고, 이를 방관해온 정부쪽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자 교통부에서도 최근 ‘자동차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 안전기준을 상향조정했다. 개정 목적은 자동차 보유대수 급증에 따른 안전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 주요 개정내용을 살펴보면, 승용차 뒷좌석에도 3점식(배와 가슴을 모두 묶을 수 있음) 안전띠를 달고 운전자가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채 시동을 걸 경우 이를 알리는 경보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했다. 또 급정거시 승차자의 목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승용차와 소형승합자동차의 앞좌석에 머리지지대 설치를 의무화했으며, 브레이크 오일의 기준유량을 알 수 있도록 경보장치를 갖추도록 했다. 그외에도 타이어의 접지면 깊이를 1.6mm이상 유지하도록 하고 당해 타이어 허용하중도 1백%이내(이전에는 1백 30%까지 가능)로 제한, 사용토록 했다. 이같은 기준은 올해 1~5월말의 행정지도를 거쳐 6월1일부터 적용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교통안전진흥공단 성능시험연구소에서 담당하고 있는 국산자동차 안전도검사 강화 등 품질과 안전도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만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소비자들은 계속 불안에 떨며 차를 몰아야 할 판이다. 특히 외제차나 국산 대형차 등 안전도가 뛰어난 차를 구입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일반공산품과의 柳在梧과장은 “자동차가 2만여개의 부품으로 조립되는 복잡한 제품인 만큼 그중 어느 하나가 잘못돼서 고장이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라며 “안전도를 높이려는 기업?정부의 노력과 함께 소비자들도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재수없는 일을 만났다는 식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해야 할 것”이라고 소비자들의 자세변화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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