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시대 이끄는 젊은이들
  • 김동선 편집위원 ()
  • 승인 1990.01.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 각 부문에서 권위주의 · 형식주의 타파에 활력소 역할

  현재의 젊은 세대는 2천년대 한국사회의 ‘견인차’, 또는 ‘주춧돌’로 표현되고 있다. 그들이 성장하여 맞을 2천년대의 한국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쉽게 상상할 수 없으나 이 세대의 특성이 한국사회에 끼칠 영향은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고 있다.

 그들은 우선 20세기의 마지막 연대인 90년대에서 우리사회 각 부문의 하부구조를 형성한 뒤 2천년대에는 사회 각 부문에서 중심세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대에 대한 특성을 성찰하는 것은 미래의 한국사회를 조감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업의 하나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재의 젊은 세대 특성을 규정할 때 사용하는 잣대는 그들의 교육환경이다. 그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학교 교육에서 격심한 경쟁을 겪었기 때문에 수단 · 방법을 불사하는 사고방식이 몸에 배었고, 이 결과 ‘과잉자기애’라는 부정적 측면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 그들은 ‘탈권위’와  ‘합리주의’ ‘정당성’ 추구가 강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측면 때문에 이 세대는 과거 어느 세대들보다도 동세대간에 이질감이 강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80년대에서 심화된 지역 · 계층간 갈등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유발한 학교 교육, 지역간 · 계층간 갈등심화 현상만으로는 젊은 세대의 특성과 그들의 장차 역할을 해설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겪어야 했던 정치상황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 세대의 특성, 나아가서는 이들이 미래의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예측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들이 겪었고, 그들이 겪었던 80년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80년 이맘떄의 우리 사회 분위기를 되돌아 보면, 국민들은 ‘희망의 80년대’를 머릿속에 그릴 수 없었다. 70년대를 마감하는 시점에 10 · 26에 이어 12 · 12라는 엄청난 사태가 터졌고, 계엄령으로 언로마저 막혀 끼리끼리 모이면 그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수군대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열중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었기 떄문이었다.

 그러다가 ‘서울의 봄’이 왔고, 저 비극적인 ‘광주 민주항쟁’과 함께 암울한 80년대가 개막되었던 것이다.

 크게 보면, 80년대 우리의 사회상은 ‘억압과 투쟁’ ‘굴종과 저항’으로 대별 될 수 있다. 이러한 80년대의 사회상 속에서 가장 큰 희생을 당한 세대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20대 청년들이었다.

 억압에 항의하는 투신 · 분신 자살이 줄을 이었고, 감옥에 끌려가고, 강제징집과 제적이라는 이름으로 배움의 터전에서 추방되었다.

 이러한 현실이 감수성이 예민한 20대들에게 어떤 충격과 사고를 형성시켰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정의를 위한 투사가 되느냐, 아니면 현실을 외면하고 순응할 것인가.

 전자의 길을 택한 그룹은 ‘운동권’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됐다. 그들은 열정적 지지를 받기도 했고, ‘과격학생’이라고 매도당하기도 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80년 이후 87년 6 · 29까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입건된 대학생수는 3천1백53명이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은 7백27명으로 이들 대부분이 대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5공화국하에서 젊은 세대들이 겪은 희생이 어떠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의 죽음 · 투옥 · 제적 등의 희생과 그 희생의 결집으로 얻어낸 6월항쟁의 승리가 그들 세대 전체의 민주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추론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젊은 세대가 우리사회 도처에 뿌리박고 있는 권위주의와 형식주의 타파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겪은 그러한 역사성 때문인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