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 경제 그 立地와 行路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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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성장’ 강조는 분배갈등 심화시킬 수도

국민이 납득할 정책의 과감한 실천 통해 위기 극복해야

 지난 12일 오후 5시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12층 상의클럽에서는 趙淳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각료와 李承潤의원을 포함한 민주자유당의 경제 브레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그것도 예상보다 1주일이나 연기되어 어렵게 마련된 당 · 정협의회에 임한 13명의 최고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다. 1시간 가량 계속된 이날 첫 대면은 최근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표방한 민자당이 안정론을 강력히 주장해왔던 정부의 기본 경제정책 방향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개각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시점에서 양측의 다분히 修辭的인 ‘균형성장’ 정책 방향에 대한 합의가 언제까지 지켜질지 아직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표면적으로 정부와 민자당간에 현격한 의견차이를 빚어냈던 성장론으로부터 민자당이 다소간의 양보를 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있었던 회견 분위기를 보면 회견을 서둘러 마치려는 趙부총리의 다소 소극적인 태도에 비해 당쪽을 대변한 李의원은 보다 적극적으로 회의 분위기를 설명했던 점으로 미루어 경제정책 실권은 이미 당쪽으로 넘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다음날 민자당내에서는 정책 ‘失機’에 대해 정부측 참석자들이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개혁후퇴’ 우려. 국민들 따가운 눈초리

지난 몇주 동안 논란의 초점이 되었던 ‘성장’과 ‘안정’은 복지 구현과 함께 게을리할 수 없는 경제목표이고,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정책과제이다. 그러나 갑작스레 이루어진 3당통합 이후 많은 국민들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은, 현 경제난국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나치게 성장이 강조됨에 따라 보수 대통합의 거대 여당 출범을 계기로 성장위주 정책이 실제로 선택될 경우 불균형 시정을 위한 제도개혁이 상대적으로 퇴색될 우려가 짙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합당 이후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 등 경제개혁 조치 연기를 시사하는 민자당 고위 당직자들의 잇따른 발언으로 더욱 증폭되었다.

민자당 출범과 관련해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공동대표 邊衡尹교수는 “아직 신당을 이끌어갈 경제팀이 최종 결정되지 않아 분명한 색깔을 알 수는 없지만 합당에 참여한 3당의 성향으로 보아 신당이 기업과 한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 분명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우려가 크다” 고 전망하고 “그간의 고도성장의 공도 많지만 그에 따른 그늘로 인해 지금 얼마나 허덕이고 있는데 다시 회귀 조짐을 보이다니 위험한 발상이다” 라고 민자당의 정책 방향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경제개혁조치와 관련해 정부와 각종 단체들의 조사결과를 보면 금융실명제의 경우 국민의 75.4%가 실시를 바라고 있고 국민의 80%는 현 조세제도가 공정치 못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비실명 예금계좌는 1.3% 가량이며 증권시장의 경우도 전체 3백만명 중 가명계좌는 2% 미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것은 금융실명제가 실시됐을 경우 대다수 국민이 세금의 추가부담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현재 전국 사유지의 70%를 국민 3%도 안되는 소수의 지주가 소유하고 있다.


경제난국 헤쳐갈 뾰족한 수 있나?

1년 사이에 급격히 떨어진 성장을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난국을 맞고 있는 우리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민자당의 정책대안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균형 속의 성장’의 잠정 합의로 현 경제팀의 정책기조는 당분간 유지되겠지만, 민자당 인맥이 대거 포진할 새 내각은 수출 회복과 이를 위한 투자촉진책 등 단기 정책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제약을 안고 있다. 지난해 봄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민정당과 정부의 당 · 정협의회에서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새어나왔던 것을 볼 때 민자당의 성장우선정책으로의 선회는 이미 예상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3당 합당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黃秉泰의원은 “지난해 들어 부쩍 경제위기론이 대두될 만큼 경제가 빈사상태에 빠진 것은 사실이고, 이미 중증이 되어 획기적인 정책 없이는 되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이 우리(민자당)의 생각” 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소득재분배를 꾸준히 이루어야 하지만 이는 점진적인 개혁이어야 하고 성장 유인이 바탕되지 않은 개혁이란 성립되기 어렵다”고 밝힌다.

지난 1년간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느냐, 구조조정을 겪고 있느냐에 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수출은 연초부터 심각한 퇴조 양상을 보여 1월중에는 무역수지가 6억6천만달러 적자를 나타내 5년만에 최고 적자폭을 기록했다. 통화 역시 1월 총통화량 증가율이 전년 동기에 비해 22.4% 급증, 통화량 과잉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경기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심리를 자극, 한달 사이 소비자물가지수는 1%나 뛰어, 연중 두자리대 물가상승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환율 역시 한꺼번에 절하할 수 없는 대외적 제약 때문에 최근 들어 있었던 소폭의 원화절하는 수출을 지연, 수입을 재촉하는 결과를 만들어 놓았다. 증권시장 역시 억지춘향식의 12 · 12 증시 부양책에서 보았듯이 자생력을 거의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신당의 등장은 재계의 투자의욕을 회복시켜 경기는 다소 되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거대 여당의 출현이 올 봄 노사분규의 진정국면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 ‘맘모스’ 여당의 탄생을 환영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고위 간부는 신당의 태동을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큰 가닥이 잡혀 가는 것”으로 평가한다.


대기업의 대정부 입김은 더욱 커질 전망

현재로서 대기업이 합당에 얼마만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경제위기론의 진원지였던 업계는 일단 한가닥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대기업들이 대정부 로비와 함께 정책 결정에 끼치게 될 영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업계의 대정부 의사 개진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라고 전경련의 한 간부는 기대했다. 최근 제조업 기계수주 증가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1월말 현재 특별설비자금 신청액도 당초 지원 규모 1조원을 크게 상회하는 3조7천억원에 달해 투자 분위기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사분규에 대한 공권력 행사의 강화와 함께 보수 신당에 대한 재계의 기대도 투자분위기 회복에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 위험 속 정치권도 삐거덕

그러나 물가는 개각 이후의 정부여당에 여전히 짐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신당이 성장유인책을 강력하게 도입할 경우, 통화량 급증에 따른 물가 압력은 더욱 가중될 것이고, 일단 국민들 사이에 인플레심리가 정착되어 버리면, 정부가 어떤 물가안정대책을 펴도 물가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위험성이 높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미 엄청나게 불어난 총통화량과 함께 집값이 움직이기 시작해 인플레심리가 가속화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라고 통화관리의 시급함을 지적한다.

졸지에 단일 야당이 되어버린 평민당의 林春元의원은 “그들이 원내의석수만을 믿고 모든 경제개혁안들을 일방적으로 후퇴시킬 경우 장외투쟁밖에 없지 않겠느냐?” 고 반문하고 있어 20일 열리는 임시국회가 순탄치 않을 것을 미리 짐작케 한다. 민자 2백16석 평민 70석의 숫자가 보여주듯 거대 여당 지배하의 13대 국회에서 민자당은 개헌정족수 1백98석보다 8석이나 많은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金浩鎭교수(고려대 · 정치학)는 “여당내부 파벌간의 차기 대권을 에워싼 대립과 갈등이 심화될 조짐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의 정국은 여야 대립관계뿐만 아니라 여당 각 파벌간의 대립이 심화되어 오히려 4당 체제보다 불안이 가중될 소지를 안고 있다” 라고 진단한다. 金교수는 또 정국운영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세력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힘과 힘의 대결 양상을 보일 경우 신당이 바라는 만큼의 정치적 효율성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현명한 정책 선택이 경제 앞날 좌우

민자당과 정부가 벌여온 논쟁의 핵심은 단순하게 요약할 수 있다. 정부는 서울올림픽 직후 나타나기 시작한 경기침체 현상을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체질개선의 호기로 삼아보자는 주장이고, 민자당에서는 더 이상의 방관은 곧 추락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 경제가 하나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으며 그 선택은 앞으로 5년, 10년 한국 경제의 앞날을 좌우할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현명한 정책 선택과 아울러 정책의 확고함과 일관성이 견지되는 가운데 투자나 소비 등 제반 경제 행위가 보다 예측 가능한 바탕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정치적 안정을 표방한 보수 신당의 등장이 경제적 안정으로 이어지려면 국민의 공감대형성을 통한 투명한 비전의 제시와 확고한 실천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거대여당으로 탈바꿈한 민자당 앞에 가로놓인 과제는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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