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내선 안될 일본의 정경유착
  • 이우현 (명지대교수 · 경제학)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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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비능률과 불공정 야기… 독자적 관료조직이 그나마 폐해 줄여

일본사회의 가장 고질적 병폐의 하나로 흔히 정경유착이 지적된다. 리크루트 사건이나 록히드 사건 같은 것이 터질 때마다 일본 매스컴들은 이것을 정 · 재 · 관의 유착에 따른 구조적 비리로서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말한다.

정치가와 재계인사의 유착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본 특유의 파벌정치를 알아야 한다. 자민당내 각 정파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신념에 따라 형성되었다기보다는 어느 개별적 실력자 주변에 모인 정치인들의 집단으로서 조직보다도 실력자 개인을 ‘오야붕’으로 모시는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정책이나 인사의 결정은 막후에서 파벌간 타협과 균형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치가는 국민에 대한 호소력이나 능력보다도 파벌에 대한 충성이 우선 요구된다. 이와같은 파벌정치하에서는 보스가 정파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자금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즉 재계의 정치헌금과 파벌적 정당구조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財界, 헌금 내며 정치 주물러

재계는 정치자금의 반대급부로서 자유기업주의적 성격의 정책이나 사용자에 유리한 제안들을 정치에 반영시킨다.

만일 일본에 강력한 그리고 독자적인 조직으로서 관료집단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재계의 영향력이 그대로 반영되는, 다시 말해서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장처럼 국가가 재계의 도구로서의 기능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다행하게도 관료기구를 중심으로 한 행정부가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재계의 독주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관료는 산업화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정치적 의사결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국가의 정책방향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경우 자민당과 재계의 유착구조하에서도 비교적 독자적인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관료집단이 유착의 폐해를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관료들이 국가발전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하여 청렴, 위신, 고능률을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사무차관 이하의 관료는 정치와는 무관한 독자적 인사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인다.

그러면 일보의 정경유착은 정치와 경제의 발전에 각각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식 정경유착, 즉 관료의 완충적 역할이 강조되는 정경유착은 보수당정권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된다. 정치적 안정은 정부시책이 일관성있게 수행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국민에게 신뢰를 가져다줌으로써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정경유착은 일반적으로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욱 크다. 그것은 재계에 유리하게 불합리한 정책을 선택케 하여 일반대중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준다. 즉 정경유착에 의한 정부정책은 비능률과 불공정을 야기시킨다. 일본의 경우 정경유착은 비록 관료기구의 역할에 의해 부정적 효과가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부정적 측면을 안고 있다.

국민대중 희생 위에 대기업만 살쪄

첫째는 정치 및 경제권력의 분배기구가 고정화되어 다양한 국민의 욕구를 흡수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부정과 비리를 상존시킨다는 점이다. 정치권력은 재계와 관료와 유착관계에 있고 그밖의 이익단체를 영향력하에 두어 보수세력의 유지 내지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둘째는 일반국민의 경제적 ·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일본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정부와 대기업은 부유하지만 일반 서민은 가난하다” 는 불평은 생산적 투자에 자원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사회적 투자가 불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바로 정치경제권력의 불균등 분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와같은 불균등한 힘은 산업사회에서 노동자의 지위를 규정하는 노사관계 제도에서 비롯된다. 사용자 위주의 기업내 노사관계는 산업평화와 생산성 향상에는 크게 기여하였지만 노동운동의 사회개혁 역량을 미약하게 함으로써 사회 부문의 후진성과 노동자 지위의 저하를 면치 못하게 한 것으로 이해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일본과 같은 정경유착과 1당의 장기집권 체제는 비록 관료기구가 철저히 독립적이고 순화기능을 한다고 해도 결코 바람직한 발전모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세계사적 경험에서 볼 때 자본주의 경제의 건전한 발전은 정치의 민주적 발전과 동반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다만 일본의 경우 정경유착과 1당의 장기집권하에서도 정치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관료제도와 철저한 직업의식 등 일본 특유의 문화적 여건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일본경제의 지속적 발전도 일본 특유의 제도가 중요한 기능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1당의 장기집권 체제 자체가 일본의 정치경제를 발전시켰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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