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잡음 잘날 없는 세종문화회관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90.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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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소강당’ 사용 시비… ‘개관 12년에 관장 12명’의 행정부재가 원인

1978년 4월에 개관되어 개관 12년을 눈앞에 둔 세종문화회관이 또다시 일관성 없는 예술행정의 치부를 드러내놓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강당 사용권을 놓고 클래식계와 대중가요계의 반목을 유발, 아직까지 그 휴유증이 남아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소강당 사용권을 둘러싸고 클래식계와 연극계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향의 ‘팝스 콘서트’나 ‘양악과 국악과의 만남’ 같은 실험적인 기획연주 이외에는 대중가수에게 무대 개방을 제한해오던 것과는 달리 지난해에는 대중가수 패티金, 李美子씨의 단독 리사이틀이 개최되는 바람에 클래식계의 세찬 반발이 일어났었다. 클래식계와 대중음악계의 품위 논쟁으로까지 비화된 이 사건은 개관 이래 운영자문위원직을 맡아온 두 원로음악인 金聖泰,朴容九씨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퇴하는 결과까지 낳았다.

박용구씨는 “왜색짙은 뽕짝이나 국적 불명의 서양풍 곡조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가수에게 이 무대를 개방하는 것이 마치 예술계 민주화나 되는 것으로 안다면, 그것은 인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 이라고 심경을 토로하면서 “대중가요의 맛은 마이크를 통한 확장된 기계음이 특징인데 왜 대중가수가 몇십만명의 대중앞에서 마이크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제쳐놓고 굳이 음향장치 및 조명장치가 클래식 연주에 적합하게 설비되어 있는 세종문화회관에 서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고 반문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수백억의 市費를 투입한 세종문화회관의 산하 8개 단체가 한해 수십억의 예산을 쓰면서도 시민들의 정서적 호응을 얻지 못하고 마침내는 유행가수를 앞세운 흥행자본의 본격적 진출을 가능케 하기에 이르렀다면, “그 책임은 감독관청인 시청에 있고, 더 나아가서 문화정책의 책임을 시장에게 물어야 한다” 고 밝히고 있다.

두 원로 음악인의 사퇴가 던져준 클래식계의 충격파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또다시 소강당 사용권 문제로 클래식 연주계를 자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연말, 90년대 시행될 지방자치제를 앞두고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시의회 의사당으로 쓰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 연극인들의 세찬 반발에 부딪혔다. ‘세종문화회관 별관사태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연극인들은 1월19일을 ‘연극 없는 날’로 정하는 등 서울시의 결정에 정면으로 맞섰고 이에 서울시는 몇가지 대안을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세종 소강당의 개방은 금년 7월 이후 가능하며 그 요율과 시행방법은 연극인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겠다” 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자 연극인 대책위에서는 소강당 사용을 “1년중 1백80일 이상 연극 공연에 대관해줄 것” 을 요구하고 나섬으로써 이번에는 음악계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소강당은 89년만 해도 연중 대관일 3백5일 가운데 2백50여일을 연주회가 차지함으로써 명실공히 연주공간으로 위상을 굳혀왔으며, 또한 소강당 대관을 희망하는 음악인의 수효는 실제 대관자보다 훨씬 많아 음악인들끼리도 대관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사용권을 두고 자칫하면 음악계와 연극계의 알력을 유발할 수도 있는 이번 사건은 이해 당사자와 충분한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시의 방침’ 때문에 애꿎게 두 예술계의 갈등으로 번진 격이다. 개관 12년 동안 세종문화회관을 거쳐간 세계 정상급의 연주가들 및 유명 교향악단들을 생각할 때 이 무대가 한국의 공연예술, 특히 음악부문에 끼친 공적은 쉽게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89년도만 해도 대강당에서 양악, 오페라, 국악 등의 연주회가 1백56일간, 소강당에서 2백49일간 개최되었으며 그밖에 무용, 뮤지컬, 영화 등의 예술행사까지 포함하면 연중 대강당은 2백여일간, 소강당은 2백66일간 각종 예술행사를 치러낸 셈이다.

그러나 총 공사비 2백21억원, 건축가 이정현씨에 따르면 그당시 스물다섯평짜리 아파트 3만세대분을 지을 수 있는 돈으로 지은 동양 최대의 세종문화회관에 대해서 새삼 그 공적을 가릴 만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예술행정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표를 살펴보면 초대 관장부터 현재 12대 관장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문화예술전문가와는 거리가 먼 행정직 관리가 등용된 사실을 알 수 있고, 그나마 개관된 지 12년 동안 12명째이니 평균 임기가 1년 정도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같은 현상은 8개 전속단체의 예산집행 및 운영전반을 전담하고 있는 행정담당 공문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어느날 갑자기 세종문화회관에 발령받아 가까스로 예술행정에 대한 업무를 파악할 만하면 평균 2년만에 타부서로 전출되기 때문에 이들이 일관성 있는 예술행정을 수립 · 집행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88년 6월에 개관 10주년을 맞아 개최된 ‘세종문화회관 운영에 대한 평가 및 발전방안 모색을 위한 심포지움’에서 극작가 차범석씨가 한 제언은 그런 점에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비록 개관 당시에는 ‘다목적 집회장’으로 설립되었다고 해도 오늘에 와서는 “서울시가 관장하는 건물이니까 서울시가 주인이라는 낡은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서 한국의 공연예술을 위한 중심지이자 산실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고 서울시의 관료주의적인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또한 일관성이 결여된 예술행정 때문에 야기된 8개 전속단체의 산적된 문제점을 타결하기 위해서는 기획행정력을 겸비한 전문예술경영인과 예술 감독제의 도입도 적극 고려해볼 시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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