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 이시형 (신경정신과 전문의) ()
  • 승인 199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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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뱅이’놀이 문화

설날 연휴, 술 · TV · 고스톱에서 벗어나자
 운동하고 오는 길에 차나 한잔하자고 후배집엘 들렀다. 네살박이가 인사를 하고 손님수를 헤어보더니 바쁘게 나갔다. 엄마가 시켰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녀석은 작은 담요를 끼고 들어오더니 방에다 펴는 것이었다. 그 속엔 화투에 칲까지 아주 한 세트로 준비되어 있었다. 놀란 것 손님들만이 아니었다. 당황한 아버지가 소리쳤다. “아니야, 이 손님은 아니야.”

 허리에 양손을 얹고 폼을 잡고 선 녀석이 순간 머쓱해졌다. 칭찬을 기대했던 꼬마는 기겁을 하고 보따리를 들고 나갔다. “애, 교육 잘 시켜놓았다.” 그래서 좌중엔 폭소가 터졌다.

 이게 요즈음 우리 사회 분위기다. 모였다하면 ‘고스톱’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는 것 같다. 참으로 기가 찰 일은 기찻간에서의 꼴불견이다. 멀쩡하게 차려입은 젊은 신사들이 그렇게 할 이야기가 없을까. 종착역에 닿을 때까지 ‘고스톱’에 아주 정신이 팔려 있다. 기차 여행은 우리를 상상의 세계, 환상의 나라로 끌어들인다. 경치에 취하기도 하고 옆자리 친구와의 정담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우리는 이중 어느 것도 안된다.

 우리에겐 ‘대화문화’가 없다. 토론에 미숙해 국회의사당에서도 걸핏하면 삿대질이요 싸움질이다. 時事 이야기도 좋고 고급스런 문화, 예술 이야기도 좋다. 좌중의 분위기에 맞는 대화 주제가 자연스레 나와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게 잘 안된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이야기한다는 게 아주 힘들다. 이게 심하면 대인공포증으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대인관계에서의 불안지수가 다른 어느 민족에 비해 높다.

 서구사람은 처음 만나도 마치 십년지기처럼 허물이 없다. 우리는 이게 안된다. 그저 어색하고 서먹서먹하다. 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뭔가 ‘딴짓’을 해야 한다. 술을 마셔 아주 취해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 주당들은 시작했다 하면 2차, 3차 아주 끝장을 보는 버릇이 있다. 떠들고 싸우고 누가 하나 뻗어야 집에 간다. 아니면 노름이라도 해야 한다. 여기엔 말초신경의 짜릿한 자극을 맛볼 수 있어 재미도 있다. 대화에 미숙한 사람에겐 꿩먹고 알먹는 격이다. 앉아 쉬어도 뭔가를 해야 대인불안이 해소된다.

 이러한 전통이 우리에겐 일과 놀이의 구별이 없게 만들었다. 일하며 잡담하고 마시고 놀며 그리고 일한다. 외국인의 눈엔 일을 하는 건지 쉬고 있는 건지 구별이 안된다. 밭 매면서 이야기도 하고 쉬엄쉬엄 마시기도 하고 낮잠도 즐기며 우리의 일하는 모습은 참으로 평화롭다. 눈앞의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서구의 작업장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일하며 쉬고 또 쉬면서도 일을 하는 게 우리 풍토다.

심심풀이 놀이 좋아하는 것도 성격결함
 앉아 쉬는 동안에도 뭔가를 해야 한다. 오랜 집단 농경생활속에 우리는 혼자 있는 습관이 들지 않았다. 끈끈한 관계사회속에 서로 엉켜 살아왔다. 3대가 한방에서 생활했다. 그러면서도 위계질서가 분명했다. 어른 앞에선 술도 담배도 삼가야 한다. 자세도 반드시 꿇어앉아야 한다. 이런 분위기속에 대화문화가 성숙되기란 어렵다. 세살 꼬마에서 팔순할아버지까지 한방에 살면서 공통의 화제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주 친한 친구 이외의 사람과 만나면 상당히 긴장되는 게 우리의 대인관계다. 거기다 우리의 겨울은 길고 춥다. 밖에 나돌아 다니기도 어렵다. 그저 따뜻한 방바닥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다. 이야기거리는 없고 노름밖엔 달리 할일도 없다. 돈 안들이고, 손쉽게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농사 일이 끝나면 긴 겨울, 별 할일도 없다. ‘심심풀이’로라도 해야 한다. 이런 전통은 우리에겐 거의 조건반사처럼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의식상황에서 텔레비전의 출현은 현대판 구세주다. 이것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대인긴장도, 남아도는 시간도 문제가 될게 없다. 설날 아침 차례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텔레비전부터 켜는 집도 많다. 가족오락회를 마치 자기집 오락인 양 즐기고들 앉았다. 어른은 마시고, 모이면 고스톱판이다.

 이게 우리의 놀이 풍경이다. 어디에서나 똑같은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설악산 폭포밑에 앉아 섰다판을 벌린 사람도 있었고 내장산 단풍그늘아래서 술에 취해 뻗은 사람도 보았다. 이런 풍경도 있다. 학교갔다 온 아이가 “엄마 배고파”하고 울상인데 안방 고스톱판에 정신이 팔린 엄마의 대답 좀 들어보소. “짜장면 시켜먹어, 전화번호 몰라?”

 혹시 당신은 이 중의 한사람이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지 묻고 싶다. 신문을 펼쳐보라. 세계는 지금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심심풀이라니? 그렇게 할일이 없을까?

 앉아서 놀이나 하고 지내겠다는 사람이라면 성격상 문제점이 많다. 이들은 거의가 찰라적인 기회주의자다. 짜릿한 말초신경의 자극을 위해 자기만 아는 개인주의자요, 이기주의자다. 문제의식도, 공공에의 봉사라는 것도 안중에 없는 사람이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반사회적 성격으로 발전된다.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은 혼자 있어도 고독하지 않다. 그게 더 생산적이다. 모이면 모이는 대로 건설적인 이야기로 좌중의 자극제가 된다. 그리고 보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은 춥다고 방구석에 죽치고 앉아 있질 못한다. 운동이 아니면 산책을 즐긴다. 추위에 떨기도 해봐야 한다. 그래야 부신피질의 기능도 강화된다. 피부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 동물은 움직이는 게 그 본성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번 음력설 연휴부터는 좀 다르게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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