合黨인가 野合인가
  • 김진배 (정치평론가 · 본지 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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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신뢰와 공약 저버린 갑작스런 ‘간판바꾸기’는 규탄받을 일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이던 민주·공화 두당이 마침내 지난 1월22일 청와대회담을 통해 합당을 선언함으로써 아리숭하던 정계개편의 베일은 벗겨졌다. 이제 여소야대의 정국은 종지부를 찍고 사실상 1당체제 출범이라는 해괴한 정국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가 야당 일부를 끌어들였는지 야당 일부가 여당에 불었는지 간에 그리고 이러한 기상천외의 수법이 혁명적이라고 떠들어대든 야바위식이라고 비아냥거리든 간에, 또한 당사자들의 거창스런 선언에 국민들이 박수를 치든 핏대를 올리든 관계없이 1990년의 정치판도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날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우선 당장 두가지 현상으로 눈앞에 다가선다. 첫째는 비록 합당과정에서 일부의 이탈은 있을지언정 크게 보아 원내 제 1당이 제3당과 제4당을 흡수함으로써 지금까지 1백27석으로서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 끙끙대던 여당이 하룻밤 사이에 90여석(민주 59석, 공화 35석)을 끌어들임으로써 전체의석 2백99석 중 3분의 2가 훨씬 넘는 2백21석 이상을 확보, 사실상 1당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할 것이고, 둘째는 야당으로 창당했고 야당후보로 국회의원이 됐던 90여명의 의원들이 어느날 갑자기 야당의 노선을 버리는 데 성공할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정당의 목표는 정권의 유지 또는 정권의 교체 이외엔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정당이 지켜야 할 일반적인 룰이 있어야 한다. 여당이자 제1당인 민정당이 원내안정세력 확보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야당 또는 무소속 일부를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흔히 보아온 바이고 그 규모가 크다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당 간판을 내리면서까지 콩인지 팥인지 모를 상황을 만들겠다는 것은 정당이 지켜야 할 룰을 정면으로 무시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의 노태우대통령은 민정당의 공천으로 민정당의 공약을 내걸고 그와 그의 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였으며 유권자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민정당소속 국회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들의 다음 선거를 겨냥한 정권연장 수단은 그들의 집을 허물고 그들의 문패를 갈아 다는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정치를 잘해서 보다 많은 유권자의 신뢰를 두텁게 하는 데 힘썼어야 한다.
 흔히 일부 무식하거나 교활한 사람들은 일본 自民黨의 예를 들어 보수정당끼리의 통합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강변하지만 일본의 戰後 정치구도가 혁신세력의 급성장으로 부수세력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한 급박한 상황이었던 데다 언제든지 국회를 해산하여 총선거를 통해 민의를 물어볼 수 있도록 된 의원내각제 1백년의 헌정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더구나 그 뿌리나 줄기를 보면 오늘의 민정당과 민주 · 공화 두당은 달라도 한참 다른 정당들이다. 여당의 의석확보를 위한 노력 자체가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의 신뢰와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바로 정당정치의 룰에서 볼 때 규탄의 대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야당의 경우는 어떤가. 비록 지난번 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제2야당, 제3야당으로 전락했을지라도 그들의 한결같은 구호는 군사독재타도였고 정권교체였다.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 아니할 수 없다. 1년8개월전의 국회의원선거에서 民主黨에 표를 던진 23.9%, 共和黨에 표를 던진 15.6%의 유권자들은 이들 후보자들의 개인적인 역량못지 않게 이들 정당이 야당의 간판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표를 찍었지, 2년도 못되어 여당에 합류할 사람으로 보고 표를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흔히 정치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정치는 현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면 내일의 이 나라와 이 민중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엄숙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지역감정의 해소, 급진세력의 무력화, 경제난국의 극복, 의원내각제 改憲을 위한 정지작업, 남북통일에 대비한 역량축적,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다. 여기에서 이른바 통합 보수新黨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적 당위를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라 속셈을 감추고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1당독재, 維新독재, 군사독재를 서슴지 않은 그 정치작태들을 너무도 똑똑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우선 이야기해보자. 지역감정을 부채질한 원흉이 누구인가. 1961년의 군부정치세력이었다. 1盧3金은 교묘하게도 여기에 편승하여 집권경쟁을 벌인 조연級이다. 급진세력의 대두와 경제난국이 3野공조체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덮어씌우는 것은 東歐의 변화가 의원내각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강변하는 만큼이나 무모하다. 오늘의 어려움을 대통령제 때문으로 돌리는 것은 더 말할 것 없이 6월항쟁에 대한 반역이며 6·29공약 자체에 대한 자기기만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은 달라져야 하고 또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民主와 통일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다.

 통합신당 작업이 3金 중 1金을 고립화시키고 제1야당인 平民黨을 ‘4분의1’黨으로 약화시키며 광주와 전라도의 强性야당의 아성을 웬만큼 무너뜨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올 것은 무엇일까. 오늘 내세우고 있는 그럴 듯한 명분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날려버리고 1당독재식 여야 합작왕국을 눈앞에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혁명적 의원내각제라고 부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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