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프로메테우스
  • 권희영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
  • 승인 1990.02.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 마르크스 전기》 蘇 마르크스 - 레닌주의연구소 지음 김라합 옮김

 칼마르크스라는 이름은 19세기 이래의 현대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든 중요한 학자들은 비판적이건 긍정적이건 그에 대해 언급하였으며 모든 중요한 사회운동은 그의 이름과 관계를 가지고 있고 특히 러시아의 10월혁명 이후에 주요국가에서는 그의 이론이 공식적인 국가적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그의 사상에 반대하였다. 한 개인으로서 이와 같은 비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 있었던가?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 무렵부터 그의 이름이 우리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사회주의적 입장에서 민족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은 그의 사상으로 투쟁의 기초를 삼으려고 하였다. 일제는 그의 이름과 함께 우리의 민족운동을 탄압하였다, 해방후의 남북의 정치상황도 그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남북대립도 그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그의 이론을 지지하건 또는 반대하건 그에 대한 지식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이론에 지극히 적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평가만을 반공교육의 일환으로 제공하여왔다. 사회의 발전과 지적요구의 확대에 따라 그러한 방법이 더 이상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기에 이제 우리는 그의 저서들을 직접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전기들도 읽게 되었다.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에 의해 저술된 이 전기는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 연구소는 명실공히 마르크스에 대한 세계 최대의 연구소이며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연구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풍부한 역사적 배경의 설명, 마르크스 저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 그리고 잘 다듬어진 문체에 의해 이 책이 쓰여졌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실증적인 자료들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이 전기는 따라서 마르크스전기 중 가장 우수한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서 우리는 혁명가로서, 이론가로서, 지도자로서, 학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난하지만 성실한 삶을 가졌던 인간 칼을 만나게 되고 그가 치러낸 프로메테우스같은 생애 앞에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점이다.

 그러나 이 책의 허약한 측면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겠다.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레닌의 평가를 넘어서서, 다양한 연구업적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 단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이제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의 사회적 변혁과 그에 따른 이론적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를 감안해본다면 이 책이 ‘구사고’에 바탕해서 저술된 것임을 곧 읽을 수 있다.

 전기라는 장르도 역시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의해 그 내용이 수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읽고 거기에서 떠나야 한다.

 번역상의 문제에 있어서는 역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1973년의 소련판을 번역한 1984년의 독일판을 중역한 것이다. 지명이나 인명표기에서 어색한 점이 간혹 눈에 띈다. 그러나 그것은 사소한 것이며 이러한 귀중한 책을 번역한 역자의 노고에 고마움을 전한다.
 마르크스연구에 있어서 우리의 학문적 능력의 한계가 분명하기에 바로 소련에서 이같은 한계들을 극복한 내용으로 다시 쓰여진 마르크스전기가 출현하기를 바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