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 민족분리 · 독립운동에 제동
  • 모스크바 · 외신종합 ()
  • 승인 199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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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정부, 아제르바이잔사태 무력진압 … 권부내 보수파 · 혁신파의 갈등 심화 조짐

 소련 남부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의 민족분규가 정부군의 무력진압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시에 지난 20일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이곳에 급파된 蘇연방정부의 진압군이 민족주의자들의 저지선을 뚫고 시가지로 진입하면서 양측간에 교전이 벌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전했다.

 “거리가 피로 물들여졌다.” 아제르바이잔 관영통신사의 한 간부는 이렇게 수도 바쿠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바쿠공항에 이르는 도로에 시체가 즐비하다고 AP통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말했다. 한편 진압군 사령관 블라디미르 두베뉴크 장군은 사망자 공식집계가 정부군 14명을 비롯, 83명이라고 밝혔으나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 대표들은 사망자수는 약 6백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유고슬라비아의 탄유그 통신은 소련군 소식통을 인용, 진압군이 바쿠시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3천5백여명이 살해됐다고 보도했다.

미소뒤의 ‘철의 이빨’ 보인 고르바초프
 “우리 시민들은 승용차와 버스로 도로를 차단했으며 그곳에는 주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진압군의 탱크와 무장병력수송차는 저지선을 넘어 닥치는대로 깔아뭉개고 지나갔다. 그들은 우리측 민병대의 진지에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바쿠시의 한 시민은 진압군과 저항군의 초기 교전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 대변인은 20일 바쿠시 전역이 이미 정부군에 점령됐으며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타스통신과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은 인민전선 지지자들이 정부군에 먼저 발포함으로써 정부군이 응사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전투로 희생자들이 발생했다고 보도했으나 구체적인 상황은 밝히지 않았다.

 진압군이 바쿠시를 장악한 후 바쿠시위원회는 비상사태 철회와 진압군 철수를 요구하면서 진압군이 철수할 때까지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또 이 지역 주둔군중 약1백명이 소속부대를 이탈, 저항을 하고 21일에는 아제르바이잔 사관생도들이 정부군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사태가 혼미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압군의 공격은 20일 새벽에 개시됐다. 아제르바이잔 민족주의자들이 蘇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 요구의 일환으로 아제르바이잔인들에게 총파업을 요구, 바쿠시의 직장과 교통수단이 마비된 이후의 일이었다. 당시 그곳의 지배권은 실질적으로 공산당으로부터 민족주의자들에게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진압공격이 개시되기에 앞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은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충돌사태에 대해 아제르바이잔 회교도들을 비난하고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군이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무력진압을 시사했었다.

 한편 민족독립운동을 이처럼 무력에 의해 해결하려 함으로써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국내외로부터 적지 않은 우려와 비난을 받게 됐다. 소련의 한 정치분석가는 분쟁이 확대돼 러시아인이나 슬라브계 병사들의 사망이 늘어나게 되면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주요 도시들에서 경제문제 등을 둘러싼 전반적인 불만감이 팽배해져 긴장이 고조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다른 분석가들은 이번 사태로 소련 공산당내에서 개혁파와 보수파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볼티모어 선〉지는 소련의 무력진압의 성격을 “고르바초프의 민주화정책과 그 정책에 의해 야기된 민족주의 힘의 충돌“이라고 규정하고, 이번 사태는 지난 85년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서기장에 지명되었을 때 전외상 안드레이 그로미코가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동무들, 이 사람은 멋진 미소를 띠고 있으나 ‘鐵의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게 당시 그로미코의 평이었다.

 진압공격이 개시되기 몇시간전만 해도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에서 열리고 있던 한 환경회의에 참석, 개혁주의자의 체취를 물씬 풍기며 핵실험 전면금지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공화국들의 연방 이탈 움직임에 일단 쐐기를 박았으나 최근의 다당제허용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민족주의자들의 요구를 크게 수용하는 선에서 민족문제를 해결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 분쟁 해결에서 군사적 수단보다 정치적 수단을 앞세워 세계적 명성을 얻은 고르바초프 자신이 정작 국내문제 해결에서는 무력에 호소하는 아이러니를 이번 아제르바이잔 사태는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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