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 거센 물결 야권 ‘새 판짜기’
  • 김재일 정치부차장 ()
  • 승인 1991.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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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신민총재 행로, 재편 방향 가름할 듯

 세간의 관심은 다시 金大中 신민당총재에게 쏠리고 있다. 야당통합을 포함한 야권의 재편논의가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거취가 문제의 핵으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야권재편의 가장 큰 변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복안과 거취에 따라 야권재편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될 것이고 재편의 향방 · 범위 · 방식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거취는 여권의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지난 24일 의원 당무위원 합동회의는 격론을 거듭한 끝에 김총재를 재신임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김총재에 대한 신임을 묻기 위해 전당대회를 열 필요가 없어졌다. 또 신민당은 야당통합과 조직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광역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후 김총재는 당 안팎으로부터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다. 선거를 치르기 전만 해도 그는 야권의 대권 후보로 굳혀지고 있었다. 광역의회 선거에서 전국적인 기반을 굳히고 여세를 몰아 민주당을 흡수 통합, 잇따른 국회의원선거, 자치단체장선거, 나아가 대통령선거에 대비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김총재 스스로 그토록 집요하게 추구해서 마련한 ‘지자제'무대, 30년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에서 그가 맛본 것은 참담한 패배였다. 평민당은 지역당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합당의 형식을 빌려 신민당으로 이름을 바꿔 선거에 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 신민당은 서울지역의 출마전체 의석 1백32개 중 21개 의석만을 건져 아예 ‘호남당'으로 굳어져버렸다. 대권경쟁에 있어서 '부동의 야권후보'였던 김총재의 입지는 선거 후 그게 손상을 입었다. ‘집념의 정치인' 김대중 총재는 어쩔 수 없이 대권 시나리오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불붙은 야당통합 논의와 거세지고 있는 야권재편 움직임은 야당의원들의 위기감에서 비롯된다. “이대로 가나가는 다 망한다." 한 신민당의원의 이 말은 광역의회 선거 후 야권 전체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압승이라기보다는 야당의 참패라고 볼 수 있다. 야당 성향의 20~30대 젊은이들이 정치에 싫증을 느끼고 선거를 외면함으로써 야당에 참패를 안겨줬다. 분열상태에 있는 야권이 뭉쳐서 재정비되지 않는 한 젊은 층의 관심을 투표로 연결시킬 수 없고 야당의원들은 선거에서 매번 질 수밖에 없다고 야당의원들은 한결같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총재가 불참한 가운데 22일 열린 신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김총재의 퇴진문제가 공식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그가 당내에서 누리는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생각할 때 예전에는 있을 수 없는 문제 제기였다. 의원들 역시 ‘불경스러운’ 발언들을 서슴없이 쏟아놓았다. 그만큼 의원들의 입장이 절박했다고 할 수 있다.

야권통합은 이뤄질 것인가, 김총재의 복안은 무엇일까. 김총재의 한 측근은 그가 결국 ‘야권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2선으로 후퇴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 야당의 체제와 구조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권에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을 그는 직시하고 있다." 총재직 사퇴가 그의 정치행태로 비춰볼 때 대단히 어려운 일이긴 하나 그의 뛰어난 현실감각은 그것을 가능케 하리라는 것이다 .

무성한 '통합논의' 가닥 못잡아
집권을 목표로 했을 때 지금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의원내각제로 선회하거나 야권통합을 이뤄 후보로 추대되는 것밖에 없다. 내각제는 여당의 다수파가 미련을 못 버리고 있지만 김총재가 지금 단계에서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당 합당 이후, 특히 ‘공안' ‘치사' ‘선거' 정국을 거치면서 너무 강하게 내각제 거부를 못박음으로써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단계에서 김총재의 내각제 선회는 자신의 정치생명과 관계되는 ‘너무 큰 도박'이다. 그것은 14대 총선 후에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외신은 김총재 측근의 말을 빌려 14대 총선이후 내각제 수용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다 .

앞으로 신민당내에서는 지난해 통합논의가 결렬된 이후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민주당과의 통합문제가 다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당대 당 통합에 대해 일부 신민당의원들은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반민자 비호남' 성향의 유권자표를 겨냥했던 민주당이 이번 선거로 존재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빈껍데기임이 증명된 민주당과의 합당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李基澤씨도 가치가 없어졌다"고 신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는 당내 비주류로부터의 인책론에 시달리며 사면초가의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신민당내의 이런 주장은 민주당과의 통합논의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이기택 총재, 민주당과의 통합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권재편은 신민당과 민주당의 통합 외에도 중부권 신당창당, 범야권의 단결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논의만 무성할 뿐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중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있는 쪽은 소위 ‘통합서명파' 의원들이다. 서명파란 신민당의 조윤형 국회부의장, 노승환 최고위원, 정대철 이재근 김종완 이상수 이형배 의원과 최근 공천과정에서 불만을 품고 신민당을 탈당한 이해찬 이철용 의원 등이다. 이들은 지난해 4월 '민주당과의 통합에 적극 나서기 위해 평민당만의 전당대회는 연기돼야 한다'는 결의문에 서명했었다. 그들 중 일부가 신민당을 뛰쳐나가 새로운 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은 김총재를 옥죄고 있다. 조부의장 이해찬 이철용 이상수 의원과 민주당 사무총장직을 사퇴한 이철 의원 등은 신당창당을 논의하기 위해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 의원 중 이해찬 의원은 신민 · 민주당의 통합이 어렵다고 보아 신당창당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아울러 야당의 체질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시대와 사회는 변했으나 야당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젊은 세대와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야당의 모습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야당이 합치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쇄신된 모습을 보여야 국민의 야당성 정서를 끌어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신민당총재와 이기택 민주당총재는 야권재편에 있어서 중심인물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의 체질개선론은 바로 세대교체론과도 통한다.

민주당쪽에서는 이기택 총재에 대한 인책에 앞장서고 있는 박찬종 부총재가 별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는 신당창당을 타진하기 위해 지난 5월부터 신민당의 통합서명파 뿐만 아니라 김동길 전 연세대교수, 서영훈 전 흥사단이사장, 김은호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고흥문 양순직 이중재씨 등 정계원로, 민자당의 몇몇 민주계 의원들까지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부총재는 “이제 야당도 독재와 반독재의 단순도식에서 탈피, 삶의 본질을 향상시키는 데 정치의 중점을 둬야 한다. 또 통일을 준비하는 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역시 세대교체론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상징적 의미있는 신민 · 민주 통합해야"
야권통합에 관해 좀더 포괄적인 시각은 야권의 대동단결이다. 민주연합 출신의 이부영 민주당부총재는 “신민 · 민주당의 통합만으로는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 양당통합은 물론 정치권 밖의 양심 민주세력까지를 합친 야권의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미 민주당에 미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 세가 모아지면 그 세를 바탕으로 다시 통합을 추진하려 했으나 이번 선거 결과 민주당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민주연합은 작년 야당통합이 실패한 후 민주당과 합치면서 그것이 야권 전체의 통합을 위한 단계적 통합임을 분명히 했었다." 그는 이런 방향에서 야권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했다.

이러한 야권통합의 몇 갈래 길 가운데 신민당의 ‘주류'는 민주당과의 통합에 비중을 둔다. 신민당의 한 당직자는 “우선 가장 어려운 문제이면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신민 · 민주당의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대 당 통합을 하되 지분에 입각해 양당이 통합한 후 집단지도체제하에서 두 총재도 각각 최고위원 중 1인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김총재를 대통령후보나 당수로 사전에 못박는다든지 두 야당 총재의 당 운영 참여를 배제한 양당통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중부권 신당' 창당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당만 하나 더 생기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으며 이는 곧 여권의 공작과도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신당창당 움직임에 쐐기를 박기 위해서도 야당통합을 신속히 진행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민당과 민주당은 만신창이가 돼 탈진한 상태임에도 외부로부터 수혈할 요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것 또한 양당이 통합에 다시 적극성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야당은 선거에 패해 궁지에 몰릴 때나 선거 전 이미지 변신을 꾀할 때 재야영입이라는 긴급수혈로 겉모양새를 갖추면서 어느 정도 활기를 되찾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당통합에 나섰던 재야의 통합추진파마저 쪼개져 각각 민주당과 신민당에 입당해버린 상태다. 영입할 재야가 거의 없어진 지금 야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면 좀더 본질적이고 그만큼 어려운 통합작업에 다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반면 당 밖에서 야당통합을 촉구하는 재야세력이 없다는 사실은 양측의 이해를 조정해서 야당통합을 끌어낼 수 있는 세력이 없어졌음을 뜻하기도 한다.

현단계에서 야권통합에 진전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가 아직 6~7개월이나 남아 있어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는 정치인의 속성으로 볼 때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김총재가 버티고 있는 한 신민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어렵다는 시각이 상존한다.

재편 움직임에 여권 반응 민감
야권재편 움직임에 관한 여권의 반응도 민감하다. 정치의 양상이 여야당 혹은 당내외의 역학관계 속에서 그때 그때 규정된다고 볼 때 여권 또한 야권의 움직임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거 직후 김영삼 민자당대표는 “신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삼겠다"고 말했고 김종필 최고위원은 “이 기회에 야권이 통합돼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김대표는 야권이 분할된 가운데 신민당이 야권을 주도하고 김총재의 입지가 확고해져 ‘양김구도'를 정착시키기를 원한다고 볼 수 있다. 김최고위원은 야권통합이 이뤄질 때 김총재가 통합야당을 이끌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김최고위원의 야권통합 촉구는 김총재의 위상하락과 이에 필연적으로 따를 여권내의 판도변화를 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표와 김총재가 한 고리로 묶여 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김총재의 한 측근은 김총재가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구상은 적절한 시기에 차기 대권후보나 당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야권통합에 나서는 일이라는 것이다. 적절한 시기란 14대 총선후가 될지도 모른다.

집권당이 바뀔 수 있어야 정치의 질은 향상된다. 따라서 야권의 통합은 대국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당위다. 김대중 총재는 야권의 통합을 위해 어떤 도박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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