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아무도 못말려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199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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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 시장 진출 본격화 … “경쟁 통해 경쟁력 키운다”



 삼성이 승용차 시장에 새로 뛰어들겠다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아무도 없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기존 업체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삼성은 단호하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중공업의 한 임원은 “우리는 반드시 승용차를 만들 것이다”라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해 관계가 크게 걸려 있는 기아자동차측도 삼성의 승용차 시장 진출을   막기 힘들다는 점을 시인한다. 기아경제연구소의 朴源莊 연구위원은 “법적으로는 막을 길이 없다”라고 말했다. 승용차 시장에 신규 집입하는 것을 차단할 규제는 이미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도 삼성중공업이 내년 상반기중 기술도입신고서를 제출할 경우 반려할 명분은 별로 없다. 이른바 ‘국민 경제’ 차원에서 반려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자율과 경쟁을 줄곧 강조해온 터라 설득력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바로 이 자율과 경쟁을 가장 강력한 참여 논리로 들고 나온다. 삼성중공업의 한 임원은 “현대 · 기아 · 대우 등 3사가 시장을 독과점한 결과 한국 자동차 산업은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그 근거로 일본 노무라연구소에 용역을 주어 완성한 연구 보고서의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놈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하위 그룹으로 처져 있다. 1그룹은 GM · 포드 · 도요타 등 3개사, 2그룹은 닛산 · 혼다 · 폴크스바겐 등 5개사, 3그룹은 미쓰비시 · 마쓰다 · 크라이슬러 등 4개사이다. 한국은 4그룹에 속해 있다.

 국내 1위의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자동차가 발표한 자료를 보더라도 한국은 기술 · 품질 · 생산성 면에서 열세이다. 새 차를 판매한 후 3개월 이내에 1백대당 문제가 발생한 건수를 보면 일본 도요타가 74건인 데 비해 한국은 1백94건이다. 생산성도 크게 높지 않아, 자동차 1대를 조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본이 16.8시간이지만 한국은 30.3시간이나 된다(도표 참조).

 일반 국민의 생각과는 달리 수출도 부진한 편이라고 삼성측은 주장한다. 지난해 승용차 수출액을 25억3천4백만 달러에 달해 총수출(7백66만3천1백만 달러)의 3.3%에 불과했다.
 이처럼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뒤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경쟁다운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삼송중공업측은 참여 명분을 내건다. 삼성이 승용차를 내놓으면 경쟁을 자극해 자연스럽게 경쟁력도 높아진다는 논리다.

기존 업체와 삼성의 논리 대응
 경쟁력이 경쟁을 통해 나오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경쟁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게임의 룰’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과당 경쟁의 역기능이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탈락해야 마땅한데, 재벌이 막대한 자본력을 총동원해 손해를 보면서도 필사적으로 버틸 경우 경쟁력 있는 기업이 도태되는 엉뚱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승용차 진출을 반대하는 기존 업체의 또다른 논리는 ‘규모의 경제’다. 80년대 초부터 미국을 제체고 세계 자동차 시장을 사실상 석권해온 일본은 현재 극심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업체간 제휴 등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여러 자동차 전문가들은 세계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연가 2백만대는 생산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리의 경우 현대자동차만이 1백망대 수준에 도달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삼성이 새로이 승용차 시장에 진입할 경우 내수 시장에 기반을 둔 국내 업체들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려워 치열한 경쟁이 오히려 경쟁력을 더 떨어뜨리는 경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반대 논리를 펴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 업체의 반대 논리와 삼성의 대응 논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만, 실상 기업이 이같은 대의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기존 업체로서는 장차 시장을 빼앗기는 것이 두렵고, 삼성으로서는 눈앞에 보이는 덕을 못본 척할 수 없는 것이다.

 삼성은 이미 지난 78년 아시아자동차 인수제의를 받는 등 손쉽게 자동차 사업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스스로 포기한 바 있다. 따라서 삼성측이 자동차 사업이 그룹의 숙원 사업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어폐가 있다. 하지만 현재 삼성으로서는 승용차 시장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내부적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것이 사실이다. 

 한솔제지(전 전주제지) · 신세계백화점 · 제일제당 등이 계열에서 독립해나간 지금 삼성그룹의 사업구조를 보면 상당히 취약한 형편이다. 삼성그룹의 총매출 가운데 금융 · 정보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62%로 압도적으로 높다. 반면 제조업 쪽에서는 전자가 23%를 차지하고 있을 뿐 엔지니어링이 10%, 화학은 5%에 불과하다(도표 참조). 금융과 전자 부문에 극도로 편중된 불균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삼성이 ‘대표선수’로 내보일 수 있는 것은 전자, 그 중에서도 반도체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반도체는 수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시기를 놓치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삼성전자가 현재 16메가D램을 일본보다 앞서 시장에 내놓아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지만 다음 세대 반도체에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삼성그룹으로서는 보다 안정적이고 확실한 제조업 분야에 진출할 내적 필연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자동차가 가장 투자할 만한 사업이라는 게 삼성의 판단이다. 게다가 자동차에서 전자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기 때문에 중공업과 전자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현재 승용차 사업에 매우 의욕을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출신 ‘자동차쟁이’들도 상당수 확보해놓은 상태다. 삼성측은 “삼성이 시작해서 망한 일이 있느냐”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승용차 생산은 만만하게 볼 사업이 결코 아니다. 우선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하는 일이 문제다. ‘새끼 호랑이’인 삼성에 기술을 호락호락 넘겨줄 외국 기업이 있겠느냐는 얘기도 업계에 나돌고 있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의 한 임원은 “전과 달리 기술을 도입하기가 훨씬 쉬워졌다”라고 여유를 보인다. 최근 일본 미국 등이 거대 기업들이 무한 경쟁을 피하고 공존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상대를 고르는 입장이라고 말한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동향을 볼 때 이 말이 사실일 수 도 있다.

세계적 흐름에 편승할 가능성도
 현재 세계 자동차 업계는 몇개의 굵직한 그룹으로 통합할 조짐이 있다. 미국의 2개 기업, 일본의 2~3개 기업, 유럽의 3~4개 기업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기업들은 현지 계열사 형태로 묶인다는 시나리오가 바로 그것이다. 나아가 국적을 초월해 미국 · 일본 · 유럽의 거대 기업들이 연합하는 형태로 자동차 업계가 재편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은 이같은 세계적인 흐름에 편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독자 개발을 추진해오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거대 기업들이 기술과 부품을 공유하고 시장을 나눠갖는 마당에 한국만 독자 노선을 걸을 경우 위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기술 도입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삼성중공업은 수백개의 부품 업체를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남는다. 수만개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드는 완성차의 경쟁력은 부품의 경쟁력에 의해 좌우된다. 삼성중공업은 부품의 국산화율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주장하지만, 기술력 있는 부품업체들을 모아 계열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승용차 3사는 각기 계령화한 부품 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 부품업체는 각 사로부터 자금과 기술 지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삼성측이 기존 업체와 줄을 대고 있는 부품업체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일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삼성은 승용차 시장 진출을 기정사실화해 놓고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이 승용차에 뛰어들 경우 4조~5조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내년만해도 1조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삼성중공업측은 밝히고 있다. 92년의 그룹 총매출액이 38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으로서도 승용차 진출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실패한다면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 판단으로, 우리 돈으로, 우리가 한다. 위험도 우리 몫이다. 제발 앞길을 막지 말아달라.”
金尙益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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