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반도 시각 달라졌다”
  • 워싱턴·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1.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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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鴻柱주미대사

盧泰愚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국빈예우'로 격상하는 일을 맡아 시원하게 해낸 주미대사 玄鴻柱씨는 그 자리를 거쳐간 13명의 전임자들보다 분명히 운이 썩 좋은 사람이다. 민주화를 내걸고 나온 6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부드러운 태도와 이해로 일하기가 무척 수월해진 데다가 만만치 않은 한국경제력이 풍기는 당당한 위세 때문에 신바람이 나 있다. 더구나 그는 노대통령의 개인적인 신임이 아주 두터운 측근사라는 딱지까지 붙은 이른바 ‘실세'라는 점에서 미국 조야가 주목을 하고 있다.

일년 가까이 유엔 대표부 대사 자리에 있다가 주미대사로 영전한 현대사는 지난 4월11일 부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냈다. 서울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全斗煥 장군에게 발탁되어 80년 10월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이 되기까지 검사로 일했다. 5공화국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노정권 출범과 함께 법제처장관으로 있다가 90년 4월 유엔대사로 외교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의 영어실력은 미국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한 ·소 정상회담 때는 외국기자들을 위한 대변인 노릇을 해 머지않아 그가 외교관으로 큰 자리를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거머쥐고 흔들 상전이 온다"고 바짝 긴장을 했던 주미대사관 직원들이 지레 겁먹은 일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경우가 밝다는 말을 듣고 있다. 노대통령의 방미와 한 · 미관계에 대해 그는 취임 후 처음으로 ≪시사저널≫과 만나 속을 털어 놓았다.

●盧泰愚 대통령의 미국방문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됩니까?
그렇습니다. 국빈예우는 초청국에서 모든 일정은 물론 경호까지 세심히 배려하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는 셈이죠. 다만 초청측에서 주최하는 공식파티에 인원제한상 우리가 원하는 인사 초청을 마음대로 못하는 불편은 있습니다.

●노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 시점에서 방미를 해야 할 사정이 있습니까?
결론부터 말해서 걸프전쟁 이후에 흔히들 말하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태동하는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우방인 미국과 우호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앞으로 두 나라가 협력해야 할 방향에 대해 정상간에 의견을 나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동안 이룩한 정치적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어느때보다도 높아져 있는 가운데 특히 북방정책이 성공하여 남북한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아시아 및 태평양지역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데 있어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전략적인 이해관계와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켜나가야 할 것인가를 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가지 더 의미를 찾아본다면 6 · 29선언만 네돌이 되는 시점에서 그간 노대통령이 추진해온 민주화의 진전상황 그리고 앞으로 밀고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인식을 같이하고 협력을 해나가는 결의를 다지는 뜻이 있다고 봅니다.

●걸프전쟁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로 표현되듯이 미국이 유일한 초강국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걸프전쟁 이후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보십니까?
결론부터 말해서 걸프전쟁 이후에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정책은 특별히 변한 게 없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한다면 미국이 군림하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힘의 한계를 깨닫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미국이 오만해져서 이런저런 요구를 해올 것이라는 우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미국사람들이 새로운 자신감에 넘쳐 국제협력을 더욱 활발히 펴나갈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5공 때만 하더라도 한 · 미관계는 아무래도 안보문제가 중심이 되어 두나라 관계는 수직적이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6공이후 대미관계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민주화가 시작된 것이 6공 출범과 때를 같이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외교적으로 부담이 굉장히 많이 덜어진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과는 달리 지금은 상대방에게 설명을 하거나 구차스런 변명을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일단 완벽치는 않지만 민주화를 위해 계속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보는 눈이 전과는 달라서 많은 문제들이 쉽게 해결이 됩니다. 이런 사실은 안보협력관계나 통상문제에서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대미관계 각 분야에서 차이가 생기고 있습니다. 굳이 수직이다, 수평이다 그런 표현을 떠나서 우리 외교가 한 단계 도약을 했고 한 · 미 관계도 그만큼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현대사는 대학초대강연에서 새 한 · 미관계는 동반자관계라는 말을 했는데 동반자관계는 경쟁자관계라는 말도 됩니까?
동반자라는 개념 속에는 두 가지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철학과 가치를 공유해야 된다, 즉 생각이 같고 주의 · 사상도 같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한다는 점에서 두나라는 똑같은 입장이고 책임분야에서는 우리의 힘이 차츰 커지면서 도덕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몫을 감당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돈을 대주어 한 대학연구소가 만들어 낸 <2천년대의 일본>이라는 보고서에 일본은 ‘우방'이나 ‘동맹국'이라는 말보다는 ‘적'과 ‘위협의 대상'으로 더 많이 표현했습니다. 한 · 미 관계도 ‘전통적 우방'으로 볼 수 있을까요?
아무리 여건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우리의 전통적인 우방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보협력 관계로도 가장 가까운 나라로 미국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는 인식과는 동일선상에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일본이 그러한 비판을 받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류를 위해 효과적으로 그것을 쓸 수 있는 철학이 있는지조차 분명치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기적인 국가요 원칙이나 주의도 없는 나라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다고 무조건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갖고 소중히 여기는 철학과 가치에 맞는 일이라면 여겨질 때는 설사 그것이 일시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라도 과감히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한국은 원칙이 뚜렷한 나라로 존경을 하게 됩니다. 유엔 같은 데서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기권이나 하다보면 한국의 위상은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미·북한관계가 요즘 비록 민간차원이긴 하지만 인적 교류가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로버트 스미스 미 상원의원이 판문점에서 북한 관리들을 만나 미군 유해를 인수받는 등 화해의 분위기가 엿보입니다. 미·북한 관계개선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북한의 대외정책이 유연해진 것이기를 바라면서 지켜보겠다는 것이 미국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미국이 북한을 대하는 데는 몇가지 특징이랄까 그런 것이 있는데 철저한 상호주의와 점진주의를 들 수 있습니다. 또 남북한간의 대화진전과 연결을 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면서 남쪽과의 대화를 소홀히 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북한과의 접촉을 하는 데 있어 우리정부와 충분히 사전협의를 한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앞지르는 일은 결코 없다는 말입니다. 미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손색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보고 가는 것이 미국의 의무라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얼마전 미국 쌀 도정업자들이 한국 정부가 북한과 물물교환으로 쌀을 보내기로 한데 대해서 미국 정부요로에 진정서를 보내고 이를 막는 것이 옳다고 시비를 건 일이 있었습니다만 미국정부로부터 공식적인 반응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상대하는 곳이 미국 국무부인데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어요. 농업부에서는 우려를 표시한 일은 있긴 했어도 공식태도표명이 아니고 관심을 나타낸 정도였습니다. 어느 정부기관도 이를 항의하거나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식으로 표시한 일은 없습니다. 쌀 문제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통상교역이 아니라 민족화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내부문제라는 것을 미국측에 설명을 했습니다. 미국 정부도 이런 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쌀을 물량을 늘려서 북한에 보낼 때 예컨대 10만톤 이상을 보내더라도 미국 정부는 입을 다물까요?
남북한 간에 주고 받는 쌀의 양이 제한돼 있는 것 아닙니까? 국제시장 가격에 영향을 줄만큼 많은 양이 거래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쌀문제 같은 자잘한 일에도 미국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남북통일 같은 큰일에 과연 미국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궁금합니다. 통일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나 약속에 대해 아시는 대로 말씀해주십시오.
미국이 한반도 통일에 관심이 없거나 또는 반대세력이라는 말은 어떤 경우에 맞는 말이냐 하면 통일이라는 것이 민주주의 하의 통일이 아니라 공산주의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때일 것입니다. 이런 통일은 미국이 절대로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방식과 원칙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통일이라면 미국이 어느 나라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정세와 여러가지 사정을 놓고 볼 때 미국이 통일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미국과 북미주정부가 추진중인 북미 자유무역지대 설정 계획과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벌써부터 경제의 블록화가 만들어지면 결과적으로 대미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북미주 자유무역지대 설정추진 과정을 놓고 나는 미국 정부에게 이것은 경제의 블록화로 그렇게 되면 한국과 같은 나라가 불이익을 면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정식으로 우려를 표명한 일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미국측은 절대로 블록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깃이라고 다짐한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가 일본과 아시아 몇나라와 함께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도 있지만 그보다는 GATT 제도를 활용해서 오히려 블록화를 방지하는 것이 상책이 아닌가싶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한 배경에는 GATT제도가 있기 때문에 자유무역을 한 것이며 이런 제도의 수혜국이 바로 한국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GATT 제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우루과이라운드라는 것이 결국 GATT제도를 강화하는 방편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문제는 일부에서 걱정하듯 그런 큰 염려는 아니다 라는 뜻입니까?
결코 그런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미대사라는 자리는 만들어진 정책을 집행하는 자리만은 아니고 정책수립에도 당연히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그런 자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어느 나라에 나가 있는 대사이든지 간에 현지 실정을 정확히 보고하여 정책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며 주미대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만 주미대사 자기는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가 질과 폭이 다른 나라와는 다르고,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에 건의를 하고 보고를 하는 기회도 그만큼 많다고 보아야지요. 북방외교가 우리가 생각한대로 잘 열매를 맺어 우기 외교가 활기를 띠고 있는 요즘 같아서는 일하는 데 신바람이 나기도 합니다.

●노대통령과의 관계 다시 말해서 개인적으로 두터운 신임을 받는, 이를테면 실세라는 딱지가 붙어서 그것이 혹시 일하는 데 어떤 부담 같은 것을 주는 일은 없습니까?
실세라는 말은 이상한 표현이고 모든 특명전권대사는 누구나 다 국가원수의 신임을 받고 있을 뿐 나라고 특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요. 혹시 내 경우 다른 대사들과 다른점 이라면 나는 직업외교관 출신이 아니고 노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을 전후하여 당과 국회에서 가깝게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점으로 해서 대통령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좀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이 일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지요. 하지만 어떤 때는 모든 깃을 다 서울서 결정한 일이니까 나는 잘 모른다고 미국 사람들에게 시치미를 뗄 수도 없는 처지이고 보면 그런 것이 다소 부담이라면 부담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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