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과 투쟁도 예술적으로"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2.06.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활정서??로 활로 찾는 민중가요 운동‥‥??투쟁 목적에만 써야??반론도


 지난 18일 저녁 7시 ‘반민자당 시위출정 전야제’가 열린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는 5천여명의 학생이 몰려들었다. 이번 학기 집회중 가장 많은 숫자였다. 그들은 집회 직전에 열린‘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공연을 보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하고 간간이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한 시간여의 공연이 끝나갈 무렵〈님을 위한 행진곡〉등의 빠른 노래가 합창으로 변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더니 태재준 전대협 의장 겸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전대협진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노찾사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노찾사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 장면은 노래운동이 이 땅에 나온 뒤 집회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일단 노찾사의 대중적 인기에 학생이 끌렸고, 노찾사는 분위기 잡는 노래들을 불러 자연스레 집회로 연결되도록 한 것이다.

 이 집회에서는 노래가 대중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그러나 노찾사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만 자신들의 노래가 그런 매개체나 수단은 아니라고 밝힌다. 운동권 내부에서만 불리는 ‘민중가요’를 일반 대중에게 보급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찾사는 상업 유통망을 통해 제도권에 진입한 지 5년여 만에 어느 대중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3집까지 나온 음반은 1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갔고, 노래발표회 때마다 예외없이 관중 동원에 성공했다. 이를 통하여 노찾사는 노래운동을 음악의 한 조류로 제도권 속에 등록해 놓았다.

 운동가요도 사회변혁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냉전적 대립구조가 깨진 국내외 상황변화에 둔감할 수는 없다. 즉87~89년에 이르는 변혁운동 상승기에 발표됐던〈파업가〉와 같은 투쟁적인 행진곡이 나오지 않고 있고 창작품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느리고 정서가 가라앉는 노래가 유행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뚜렷한 대표곡도 없다고 지적된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4월21일부터 5월6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열린 ‘한국 근현대 노래 80년사-끝나지 않은 노래’ 공연은 그 시험무대였다. 다큐멘터리식 음악극으로 진행된 이 공연에 대해 노찾사 柳相基 총무는“기존의 콘서트 형식에 대중은 식상해 있다”라면서 “과거를 반추하여 오늘의 좌표를 설정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했다.

 노동현장에 직접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는 현장의 노래패들도 나름대로의 방식을 분주하게 찾고 있다. 지난 3월 ‘노동자노래단’과 ‘예울림’은 ‘꽃다지’라는 이름을 통합하면서 “노동자의 일상 정서를 폭넓게 표현해야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밝혔다. 또 84년 처음 조직적 음악운동 집단을 결성하여 노래운동의 선두에 서온 노래모임‘새벽’도“이젠 변혁운동이 꺾인 상황을 검토하고 그것을 대중과 공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벽’대표 崔容晩씨는 “낮은 차원의 문화선전대로서는 운동도 예술도 안된다”라면서 “운동이 실패했다면 그 이유를 따져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며, 노래운동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새로 시작한다는 자세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선전·선동보다는 예술가로서의 프로정신을 다지고 노래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전국적으로 산재한 노래패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성남의‘노래마을’대표 백창우씨도 “이젠 건강한 노래도 작품성·가창력에서부터 앞서나가야 대중적으로 확산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중을 상대로 하는 노래패건 현장중심의 노래패건 현재는 뚜렷한 결과물, 즉 새로운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정체기에 있다. 이런 침체 속에서 최근에 나온 안혜경의 음반은 노래운동의 새길찾기에 있어 작은 전범이 될 듯하다. 여성문화예술기획(대표 이혜경)에서 기획한 이 음반은 환경·여성 문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했는데, 기존 운동가요의 낮설음과는 달리 일상인들의 생활 주변 이야기를 실어 ‘생활가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한편 88년에 등장해 노래운동의 중심을 대학에서 노동현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작곡가 김호철씨는 이와 다른 입장이다. 그는 “노래가 투쟁의 무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노동 가요는 운동에 복무하는 목적의식을 상실해서는 안된다”고 밝힌다. 그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이 시기를 고민하게 하는〈각성의 노래〉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중이라고 하면서“노동자들은 현장에서는〈파업가〉를 부르고, 돌아서서는〈내 사랑 내곁에〉를 부르는 형편이다. 그들이 일상 생활에서 쉽게 부를 수 있는 희망과 전망을 담은 노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중문화평론가 金昌南씨는 “노래운동이 원칙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 전략 차원에서 방향을 모색해야 할 단계”라고 이 시기를 규정하고 “개별 작업을 하나로 묶는 작업과 더불어 전문적인 기획 역량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가요 음반을 제작하는 임진모씨(동인기획 실장)도 이와 비슷한 견해이다. “이제은 음반을 낸다는 기획 의의만 갖고서는 안된다. 음반 유통구조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 속에 묻혀 있는 만큼 기존 가요 관계자들이 취했던 논리를 완전히 체득하고 수용해야 한다. 운동가요가 자본에 압살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사회변혁운동의 정체기 때는 문화가 앞서서 이를 끌고나간 경우가 많다. 개인 활동에 머물러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미국의 가수 밥 딜런이 좋은 예이고, 성공적 사례로는 광주민주화항쟁 직후의 한국 문화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각 노래패들의 활동과 모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 시대에 대응하는 새 성과물은 올 가을 이후에야 쏟아질 전망이다. 노래패들에겐 어제와 오늘만 있고 내일은 아직 불확실한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