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사람의 몸 안에 필요한 것(비타민·단백질)이 없거나 해로운 것(세균·바이러스·암유전자)이 있음으로써
발생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외부에서 공급하든지 내부에서 합성할 수 있게 하고, 해로운 것은 제거하거나 그 활성을 저해시키면 치료할 수
있다.
예를들어 금세기 최대 관심사인 암과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의 경우를 보자. 암은 성장을 멈추어야할 세포가 무질서하게 마구 성장 분화하는 현상으로 일어나는 병이다. 아직도 암의 원인이 완전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은 밝혀졌다. 따라서 암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하면 암을 치유할 수 있다.
에이즈는 HIV라고 하는 바이러스가 인체세포에 침입하여 일으키는 병이다. 이 바이러스는 인체세포가 자신의 유전자를 발현하도록 해 증식을 꾀하면서 인체의 면역체계를 교란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간첩 같은 HIV 바이러스의 유전자 발현만을 억제할 수 있다면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 특정한 유전자의 발현을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물질이 첨단치료제가 된다. 수년 전부터 선진국들은 이러한 신약을 개발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감염 바이러스 HBV의 유전자X가 발현하는 것을 저해하는 리보핵산(RNA)에 대해 오래전부터 연구해오고 있다. 간염은 우리나라 최대의 질병이다.
이 연구는 유전자 전사에 의해 합성되는 전령 리보핵산에서 단백질이 합성되는 과정을 차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에는 몇가지 방법이 있으나 가장 효과적인 것이 촉매 리보핵산을 이용하여 전령 리보핵산을 절단하는 것이다. 리보핵산은 특정한 형태의 구조를 이루면 특정한 곳에서 절단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리보자임 이용해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 발현 차단
특히 리보자임(어떤 생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촉매 리보핵산)이라는 리보핵산이 단밸질 효소와 같은 촉매작용을 통해 기질 리보핵산(생화학 반응에 의해 절단되는 리보핵산)의 절단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이 발견으로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토머스 첵과 예일대학의 시드니 얼트만이 1988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리보자임은 몇 가지 특수한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기질 리보핵산을 절단하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이 소위 망치머리형 구조이다. 두가지 리보핵산이 결합하여 이 구조를 이루면 한가지 리보핵산이 절단된다.
최근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간염 바이러스 HBV의 유전자X로부터 합성된 전령 리보핵산을 절단하는 리보자임을 개발하고 잇다. 그 전령 리보핵산의 한 부위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염기열과 망치머리형 구조를 이루는 데 필요한 염기열을 함께 갖는 리보자임을 설계하여, 그 절단과 분해의 효능을 시험한다. 이를 통해 단밸질 합성을 가로막는 효능을 가진 리보자임을 이미 수십개 확보하고 각각의 효능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 리보자임이 인체 세포 내에 존재하면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그 유전자의 발현을 차단함으로써 감염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인체세포에 투여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인체 내에서의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데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정해진 목표만 정확히 파괴하는 특성 지녀
단백질 합성의 정보를 가진 전령 리보핵산 중에서 특정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절단·분해하여 파괴할 수 있는 리보자임이 개발되면 해로운 단백질 때문에 생기는 모든 병을 치료하는 데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바이러스든지 그 특유의 단백질을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 내에서 합성함으로써 세포 파괴공작을 시작한다.이런 원리를 참고하면 바이러스 감염이나 암 유전자의 산물인 암 단백질에 의해 유발되는 암 속에서 유해 단백질 합성만을 선택적으로 저해하는 리보자임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기존의 항암제나 항바이러스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특정 부위에만 작용한다는 데에 있다. 마치 미사일이 특정
목표만을 정확히 파괴하는 것처럼 리보핵산 절단 리보자임 역시 특정 유해 리보핵산만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표 특이성’이 신세대 첨단
의약제가 갖는 장점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