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상황 악화됐다” 꼬리무는 조사 보고
  • 김당기자 ()
  • 승인 199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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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면위 이어 辯協도 … 정부는 “왜곡” 주장 일관

우리나라의 인권문제를 ‘안주’삼아 외국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을 듣기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연초부터 외국정부 및 국제인권단체들이 여러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에 대해 유별나다 할 만큼 비판적으로 ‘간섭’을 해오고 있고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그때마다 근거없는 왜곡보고라고 반박함에 따라 국민들은 도대체 어느쪽 말을 믿어야 할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또 최근에 정부에서는 3·1절을 맞아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좌익수 22명을 포함한 수형자 1천1백11명을 가석방하였으나 이른바 시국관련 구속자는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불씨가 되고 있다.

가정 먼저 포문을 연 국제사면위는 지난 1월17일 ‘한국 : 억압과 고문으로 복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에만도 시국 및 공안관련 구속자수가 1천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법무부에서는 1월25일 논평을 내고 “한국의 실정법을 잘 모르거나 무시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美국무부도 “國保法 적용 잦아졌다”

한편 해마다 각국의 인권상황을 종합·발표해온 美국무부는 올해에도 2월21일 발표한 ‘89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남한(15페이지 분량)과 북한(8페이지 분량)의 인권상황을 언급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민주화 작업은 ‘진행중’이라고 전제하고 “88년에 전반적인 인권상황이 크게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89년에는 반체제인사들에게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이 적용되는 사례가 잦아졌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廬정권이 출범한 88년 2월부터 89년 8월말까지 2천94명을 ‘국가안보와 관련된 혐의’로 체포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천3백15명은 89년 들어 체포됐다”면서 “정치범의 수효를 정확히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인권관계 소식통들은 89년말 현재 8백명쯤의 ‘정치범’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법무부에서는 2월23일 다시 반박 논평을 내고 ‘사실무근’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날 대한변호사협회(회장 박승서)에서 발표한 ‘89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적어도 “89년 인권상황은 그 이전시기보다 훨씬 더 악화”됐으며 오히려 ‘정부의 주장이 사실무근’임을 반증하고 있다. 우선 외국에서 발표한 인권보고와 달리 ‘한국의 인권실정을 잘 알 뿐 아니라 실정법에도 밝은’ 공정한 전문 변호사단체가 조사해서 작성한 보고서라는 점에서 어떤 보고서보다 ‘믿을 만하고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도 2월28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허형구법무장관은 변협의 통계를 인용한 한 야당의원의 지적에 대해 “6공 들어 시국관련자가 5공의 두배라는 주장은 오해라고 본다”면서 “통계는 법무부가 내지 변협이 내는 게 아니다”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그러나 막상 6공 들어 구속된 시국관련 사범의 구속사유별, 직업별 현황을 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법무부에서는 ‘시국관련 사범’이라는 개념으로 별도 통계를 내고 있지 않다”면서 예를 들어 화염병을 던진 폭력이건 일반 폭력이건 모두 폭력행위로 간주할 뿐이라고 밝혔다).

변협 보고서에 따르면 6공화국 들어와서 (88.2~89.8) 시국관련 구속자수는 총 2천94명, 하루평균 3.78명으로 제5공화국 시절의 하루평균 1.61명보다 두곱절이 넘는다. 또한 88년과 89년을 비교하더라도 구속자수가 88년 한해 동안 7백79명인데 견주어 89년 1월부터 8월 사이에만도 1천3백15명이나 되어 특히 지난해에 시국관련 구속자가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변협 보고서는 그와 같이 구속자수가 늘어난 이유로 “89년 4월에 전혀 법률적 근거가 없이 발족한 공안 합동수사본부에 의한 대량구속의 결과였다는 점”과 “정부여당까지 그 개정안을 내놓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남용한 것”을 들고 있다. 보고서는 이어 “인권상황의 전반적인 악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위기상황으로 발전되지 아니한 점은 89년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라고 규정짓고, 이는 “정권담당자들이 인권문제를 ‘체제수호’의 문제로 대치해 보수대연합구도에 의한 좌우대결쪽으로 문제의 방향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는 본질적인 변화없는 현상적인 눈가림에 불과한 것임을 머지 않아 알게 될 국민대중이 현 정권에 더 이상의 기대를 포기할 때 급격한 정치적 위기상황이 초래될 수 있음을 간과한 매우 위험한 정치적 곡예”라고 보고서는 경고했다.

결국 나라 안팎의 여러 인권보고서 및 지표로 나타난 인권상황을 종합해 볼 때 지난해는 ‘6공의 인권탄압 원년’으로 기록될 법하겠다. 따라서 90년 한해가 그 두 번째 해가 될지 아니면 ‘6공 인권탄압 말년’이 될지는 당장 눈앞에 걸려 있는 국가보안법, 안기부법 등 이른바 악법개폐 문제에서 현정권이 ‘인권수호’쪽을 택할지 아니면 ‘체제수호’쪽을 택할지에 따라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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