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구도가 만든 日 자민당
  • 윤영오 (국민대교수·정치학)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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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權 얽힌 부패상 연출…서독, 각당 노선 견지 聯政구성

 ‘1당우위’의 장기집권은 정치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렵고, 고작 일본 멕시코 등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물론 보수정당간에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장기집권한 경우는 정치선진국에서도 볼 수 있는데 스웨덴의 사민당. 캐나다의 자유당, 서독의 사민당 등이 그러한 예다.

 서독의 경우 진보정당인 사민당(SPD)은 1966~69년까지의 기간에는 보수정당인 기민당(CDU)과 ‘大연정’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69~82년까지는 자유민주당(FDP)과 ‘소연정’을 구성하였는데 연정 초반에는 브란트 총리, 후반에는 슈미트 총리를 배출하였다. 한편 자유민주당은 연정파트너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슈미트 총리 실각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기민당과 더불어 소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서독에는 2차대전후 지금까지 한번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으며 진보의 사민당과 보수의 기민당 사이에서 중도파로 자처하는 자유민주당이 균형역할(balancer)을 하는 가운데 정치적 시계추를 좌우로 움직여 제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처럼 보수와 중도정당의 합당이 아니라, 각기 자신의 노선과 견해를 견지하면서 연립정부를 구성, 정책적인 타협을 해왔을 뿐이다.

 한국의 보수대연합의 모델로 흔히 일본의 자유민주당이 거론되고 있다. 같은 보수정당으로서 자유당과 민주당이 통합하게 된 데에는 2차대전후 일본정치가 보혁대결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즉 1947년 5월부터 1948년 3월까지의 짧은 기간이지만 당시 제1당이 된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정권이 탄생했었다.

 전후 최초의 총선거에서 정원 4백66명 중 1백40석을 차지한 자유당은 하토야마(鳩山)를 수반으로 한 내각을 성립시킬 예정이었으나, 당시 일본정치에 영항력을 행사하던 연합국 최고사령부로부터 하토야마는 전쟁에 책임이 있어 공직추방에 해당하는 인물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하토야마 대신 등장한 것이 요시다(吉田)인데 하토야마에 대한 공직추방이 해제되는 대로 당권을 하토야마에게 돌려주기로 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하토야마는 50년 공직박탈에서 해제된 이후에도 요시다 총리의 주류파에 밀려 고전하면서 미키(三木)라는 정치력이 뛰어난 참모를 만나 반격을 기도하였다. 즉 자유당내의 反요시다파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을 모아 54년 11월에 일본민주당을 결성하였다.

 54년 12월 자유당 요시다 내각의 퇴진에 따라 민주당의 하토야마 내각이 성립하기는 했으나 소수당인 민주당 단독으로는 정국의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55년 2월 총선에서 당세를 크게 신장시킨 좌ㆍ우 사회당은 그해 10월 통합대회를 열고 4년만에 재결합하게 되었다. 원래 단일정당으로 출발했으나 51년 샌프란시스코 미ㆍ일강화조약과 그를 전후한 일본의 우경화 분위기에서 노선문제로 좌우 양파로 갈라졌던 사회당의 재통합은 보수진영에 일대 경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보혁 대결의 구도로서 나타난 것이 자유ㆍ민주당의 통합이었다.

 전후의 세계사에서 일본은 두개의 기적을 이루었는데, 하나는 경제대국이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민당 1당지배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미에서는 “일본은 경제적으로 선진국이지만 정치적으로 후진국”이라는 평도 들어왔다.

 자민당이 장기집권을 함에 있어서는 일본재계의 재정적 지원이 주요 이유이겠으나, 자민당이 실용적이고 융통성이 있는 정책을 추구해온 데에도 이유가 있다. 정치학자 중에는 이를 ‘창조적 보수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즉 자민당은 혁신정당의 주장을 재빨리 진취적으로 정책에 수용했는데, 환경문제ㆍ사회복지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매우 과감했다.

 당의 조직은 근대적 정당의 것이 아닌, 파벌 족벌 지연 개인후원회 등으로 엉킨 파벌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파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왕년의 오히라 총리는 “일본인이 세사람 모이면 두개의 파벌이 생겨난다”고 하였고, 다나카 총리는 파벌을 국민들의 병(진정사항)을 고쳐주는 전문의로 평가하고 자민당을 전문의를 거느리는 종합병원으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파벌의 긍정적인 면은 상호 견제와 균형으로 자민당이 독재화하는 것을 막는 면일 것이다.

 일본정치, 특히 자민당의 폐단으로 지적되는 것은 재계와 정치인이 돈과 이권으로 얽혀 전ㆍ현직 총리가 구속되는 등 온갖 스캔들이 일어나는 부패상을 연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작년 참의원선거에서는 자민당이 대패, 소수당으로 전락하고 이번 달로 다가온 중의원선거에서도 보혁 역전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은 경제발전면에서 후발국의 이점을 살려 선진국의 실패와 폐단을 축소시키는 가운데 진전이 있었다. 이제 정치민주화를 함에 있어서도 구태여 정치적으로는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할 수 없는 일본을 답습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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