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통합은 반민주 야합” 대학가, 올봄 파란 예고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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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중 끌어당길 호기” … 전민련 등과 공동투쟁에 주력

“무엇이 어떻게 돼가는 것이냐.” 3당의 갑작스런 통합에 어리둥절한 국민들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어느 때보다 정국의 추이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장외 주도세력’인 학생운동권이 이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는 올해 시국전개의 중요한 변수로서 비상한 주목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이번 합당을 “92~93년 권력재편기를 앞두고 감행된 美ㆍ盧의 재집권 음모”라고 규정짓고 있다. “지난 87년 이후 급속히 성장한 ‘민족민주운동세력’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정권안정화 기도이며 대권 가능성이 희박해진 야당 정치인들이 일정한 권력 지분을 보장받고 이에 야합한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친미파쇼야합’ 또는 ‘반민주 반민중적 정치야합’이라고 명명한다.

 이번 정계개편과 미국의 역할부분에 대해서는 ‘식민지 지배권력 안정화의 또다른 방편’등으로 표현, 관련혐의를 분명히 하고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의 한 간부는 “미국이 릴리전대사를 통해 ‘보혁구도의 정계개편’을 시사하거나 ‘식민지시대의 총독’이라고 불리는 그레그 대사를 끝내 부임시킨 점 등은 이러한 혐의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ㆍ구 집행부가 갈리는 총학생회 이월기에 ‘기습당한’ 각 대학 운동권은 우선 규탄 성명과 산발적인 집회ㆍ시위로 대처하면서 서총련(3기 준비위원장ㆍ윤진호 고려대 총학생회장) 등 전대협의 각 지구별 조직정비와 함께 대응방안을 2월초까지 확정, 본격적인 투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전민련 등 재야단체에서도 3월부터 ‘범민주세력 연대’ 추진으로 공동투쟁을 벌이기로 함으로써 이른 봄부터 큰 파란이 예상되고 있다.

 4ㆍ19혁명 30주년, 광주민중항쟁 10주년이라는 각별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올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3당통합은 오히려 “중간층 등 멀어진 국민대중을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학생운동권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지난 공안정국 속에서 우리는 탄압의 본질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해 답답했었다”고 말하는 전대협의 한 간부는 “이번 기회로 싸울 명분이 더 확실해졌다”며 역설적인 ‘호기론’을 폈다.

 학생들은 따라서 국민들의 혼돈된 상태를 ‘분노’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올 상반기 투쟁 활성화의 전제조건이라고 판단, ‘야합의 본질 폭로를 위한 선전전’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검거농성, ‘타격투쟁’ 등 과격한 방법을 지양하는 대신 유인물 배포, 4~5명 단위의 숨바꼭질식 구호시위 등을 주로 벌일 계획인데 “서울시내 일부에서 벌인 지난주의 결과로 보아 대다수의 시민들이 상당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학생들의 분석이다.

 전대협을 비롯한 전민련ㆍ전노협ㆍ전농련ㆍ전교조 등 이른바 ‘5대전씨’를 주축으로 여러 재야단체가 사상ㆍ이념ㆍ정견을 초월한 ‘반노연합전선’, 즉 ‘영구집권음모 분쇄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같은 공동 투쟁기구를 결성하여 대중의 신뢰를 얻으면서 강력하게 투쟁할 수 있는 방안을 학생들은 재야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보ㆍ혁구도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기 위한 화이트칼라 계층의 견인문제는 “거대신당 구성은 곧 민주주의 말살ㆍ1당 독재화의 음모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설득시킴으로써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학생들은 내다보고 있다.

 학생운동권은 평민당과 민주당 잔류파 등의 제도권 세력과의 직접적인 연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통합철회 서명 작업 등의 투쟁에는 동참할 계획으로, 이런 분위기를 계속 확산시켜 전민련에서 계획하고 있는 ‘13대 국회 즉시해산, 총선실시’의 정치공세를 함께 들고나와 올봄 장외투쟁의 주요 이슈로 등장시킬 것이라는 예상이다.

 통합이 발표된 지 얼마 안돼 벌써부터 ‘토지공개념 연기’ ‘실명제 단계적 추진’ 등의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심상치 않은 기류에서 “현 집권세력은 중간층의 이익조차도 대변할 수 없다”는 학생운동권의 주장이 상당 부분 먹혀들 경우 정국은 의외로 급속히 냉각, 거리가 또다시 매운 연기로 뒤덮히는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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