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범죄계 등장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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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택시 폭발사건 ··· 불특정 승객 노린 ‘테러행위’

 사제폭탄을 이용하여 특정대상을 폭살하고자 하는 범죄는 대부분 원한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88년 1월 부인과 놀아난 방위병을 살해하기 위해 소포로 사제 폭발물을 발송, 방위병 일가족 여러명을 다치게 한 정모씨의 범행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24일 잠 9시40분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일어난 콜택시 폭발 사건은 불특정 승객을 주요 타격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조수석, 즉 운전사 옆자리 밑에 사제 시한폭탄을 장치한 것이다.(옆 사진 참조). 다행히 그 자리에는 승객이 타지 않아 치명적인 사고는 피할 수 있었으나 운전사 엄재훈씨(35)와 뒷자리에 탔던 조경숙씨(여 ·31) 일가족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처음 천연액화가스(LPG)에 의한 폭발로 판단, 단순사고로 처리했으나 “밀폐된 공간이 아니고서는 LPG가 누출되더라도 화재 이외의 폭발은 있을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라 다음 날 뒤늦게 현장검증에 나섰다.

 한국화약 제조 백색 전기식 뇌관, 가전제품용 타이머 태엽(길이 68㎝ 너비 3.5㎜), 싱가포르제 1.5V 건전지, 폭약포장용 마분지 등이 현장에서 수거 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결과 폭발물의 종류는 다이너마이트로 밝혀졌다. 폭약을 터뜨리기 위한 순간적인 열 발생용 건전지 몇 개와 뇌관을 전선으로 연결하고 타이머에 의해 조절될 수 있도록 만든 시한폭탄이었다. 폭약에 대한 기초 상식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조잡한 수준의 것이었다.

 경찰은 회사 내부자 소행쪽으로 수사방향을 좁히고 있다. 최근 경영을 둘러싸고 임원들 사이에 심한 내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경영이 악화된 데다 지난 2월에는 임원진이 회사공금유용 혐의로 고발 되고, 얼마 전 주주총회에서 모 이사가 퇴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회사에 타격을 가할 목적으로 폭탄테러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운전사 엄씨의 신분이 노조위원장이라는 점에서 의문은 경영에 얽힌 내분으로만 국한 되지 않고 있다. 엄씨는 지난 달 택시 파업 과정에서 회사측의‘선정상화 후협상’안을 받아들여 일주일만에 파업을 푸는 등 그동안 온건노선을 펴 일부 강성 노조원들의 불만을 사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조합 전임으로 평소 운전을 하지 않던 엄씨는 이날 쉬는 차를 이용, “용돈이나 벌 생각으로” 우연히 핸들을 잡게 됐다고 말한다. 배차주임에게 허락받은 때는 오후 5시, 3시간 뒤인 저녁 8시쯤 차를 몰고 강동구 암사동 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사고를 당한 조씨 가족을 집 근처에서 태운 것은 1시간 쯤 뒤의 일이다.

 경찰은 최대 3시간까지 조절이 가능한 타이머의 성능으로 보아 폭탄을 장착한 시각은 오후 5~8시 사이, 따라서 장소는 회사 주차장에서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범인이 회사 내부에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외부인의 소행인가, 또는 회사 임원인가 노동조합원인가에 있지 않다. 범인이 누구이건 간에 자기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선량한 승객을 겨냥, 시한폭탄을 장치한 그 잔인한 테러행위가 소름끼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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