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축안’들고오는 체니 美국방
  • 워싱턴·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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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지상군 향배 관련 서울회담 관심 · 한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할 듯

50만명의 병력을 25개국과 5대양에 파견하고 있는 미국은 올해 해외주둔병력을 총체적으로  재평가 내지 재조정하는 작업을 추진하느라고 한창 바쁘다.

 부시 행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군사비를 줄인(숫자로는 전년보다 53억달러가 늘었으나 인플레를 감안할 때 2% 정도 감소) 91회계연도 새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국내외 군사기지  70여곳을 폐쇄 · 축소키로 한 것은 이제부터 눈앞에 벌어질 많은 변화들을 예고하는 하나의  신호이다.

 해외주둔 미군병력에 대한 감축을 전제로 한 재평가는 작년 의회를 통과한 ‘넌-워너 수정안’에 따라 올 4월1일까지 행정부가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이 법은 해외주둔 미군의 역할과 병력구조 배치상황을 재평가 할 것과 감축이 필요할 경우 당사국과의  협의를 통해 이를 조정하도록 되어 있다.

 리처드 체니 국방장관이 14일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의회에 낼 대통령의 보고서를 최종적으로 마무리짓기 전에 아시아동맹국들을 순방하여 그동안 미행정부가 만들어놓은 계획을 가지고 당사국과 협의를 하기 위한 것이다.

 한 · 미 양국정부는 주한미국의 장래를 놓고 1월18일 하와이에서 고위실무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는 체니 장관의 서울방문에서 제기될 미국측 안을 중심으로 양측이 의견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측 소식통은 이 회담의 중심의제가 주한미지상군의 감축과 방위비분담이었다고 전했다. 지상군의 감축규모나 시기에 대한 미국측의 구체적인 계획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李相勳 국방장관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지상군감축논의가 진행중임을 시인하고 “1차적으로 행정지원병력의 단계적 감축은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로 미루어 체니 장관과의 회담에서 미지상군의 감축과 시기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될 전망이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액을 늘려서 미군주둔에 대한 미국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주장은 주일미군 주둔비용의 40%를 일본정부가 떠맡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더욱 강한 압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해마다 주한미군 유지비로 26억달러를 쓰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연간 3억달러의 분담금을 내고 있는 것은 엄청난 대미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한국의 위치로 볼 때  너무 인색한 것이라고 의회가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협상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할 수 있다는 방향에서 미군의 갑작스런  감축계획을 다소 연기할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하와이 고위 군사실무회담에서 미국측은 한국이 방위비 분담을 ‘현격히’(drastically) 늘려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구체적으로 얼마를 더 내야 하는지 숫자를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군사전문가들은 체니 장관이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미행정부의 최종안을 보따리에 싸들고 서울로 간다고 말했다. 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 · 미  두나라 사이에 이미 설왕설래가 있은 내용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로는 지난 연말에 체니 장관이 李장관에게 공한을 보내 한반도를 둘러싼 극동정세는 유럽의 경우와는 전혀 달라 긴장완화의 조짐이 희박한 상태에서 주한미군의 현 상태에 대한 갑작스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사실을 들고 있다. 체니 장관의 편지는 그보다 앞서 <워싱턴 포스트>의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할 계획이라는 군관계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가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해명하려고 한 것이다. 미 · 일의 언론들은 최근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무성한 보도를 한바 있다.

 국방성의 한 관계자는 “92년까지는 주한 미지상군에 대한 감축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미지상군의 감축은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가 평화지향적이라는 징조가 뚜렷해야만 하고 또 미군이 빠져나가는 공백을 대신 메꿀 만한 다른 힘이 생겼을 때라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미행정부와 의회지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군의 위치를 대신할 수 있는 힘으로서 지역안보의 새 세력으로 위상이 떠오르고 있는 경제대국 일본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서는 소련과 중국은 물론이거나와 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결국 한국이 자주국방이라는 힘겨운 짐을 지고 북방외교를 더욱 가속화하여 국제정치적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대북한관계에서도 대립이 아닌 공존관계를 설정해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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