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경영합리화 전략 “임금 오른 만큼 내보낸다”
  • 안강·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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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 연내 1천여명 해고 방침 발표로 파문

의원 : 증인은 영수증도 안받은 10억원을 포함해 34억5천만원을 절대 권력에게 갖다바쳤다. 이것을 재투자해서 기업을 확장시켰다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근로자의 대우도 개선됐을 것인데 기업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증인 : 7~8년간에 걸쳐 있었던 일이라 간단히 언급할 수 없는 문제이다. 70평생 살아오면서 오늘 가장 뜨거운 꼴을 당하고 있다는 심정이다.

 의원 : 돈을 全대통령에게 직접 갖다준 것은 기업경영상 장래의 특혜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증인 : 아니다. 대구공고 선배로서 단임제를 꼭 실천해 훌륭한 대통령이 돼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면서 日海재단 기부금으로 낸 것이다. 말하자면 만용이다. 잘나지 못한 놈이 잘난 체 하다보니….

 지난 88년 11월에 있었던 일해재단 관련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풍산금속 柳纘佑회장과  민주당 盧武鉉의원이 벌인 문답의 일부이다. 어눌한 말솜씨로 의원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던 유회장은 당시 시청자들 사이에 적지않은 화제가 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회사가 ‘새로운 고용의 창출’과는 정반대로 ‘대규모 해고’를 계획하고 있다고 해서 사회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주식회사 풍산(종전 풍산금속에서 89년 3월 상호변경)은 지난 연말 경북 경주군 안강공장의 인원을 올해 안에 현재 4천1백40명에서 3천명 수준으로 3분의 1 가까이 줄인다는 ‘경영합리화 계획’을 확정, 노조측에 통보하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했다. 이와 함께 근무형태도 1일 3교대에서 주간 2교대로 변경, 1월15일부터 실시하고 있다.

 1천1백40명이라는 가히 ‘천문학적’수효의 감원방침에 대한 회사측의 설명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과도하게 오른 임금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요지다. 회사측  자료에 따르면 지난 88년 노조가 설립된 이후 2년간 인건비가 88% 올라 경영적자 누적액이  4백여억원에 달했으며 올해에도 1백여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악화된 경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매출액을 늘려야 하는데 안강공장은 정부에 생산전량을 납품하는 방위산업체로 그 수요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는 길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얘기이다. 서울 본사의 元明秀상무이사는 “노조원들의 지나친 요구와 과격쟁의행위로 임금은 오르고 생산성은 크게 떨어졌다”며 “이로 인한 경영난 타개를 위해서는 일부의 희생이 불가피하고 남은 사람들이 그만큼 일을 더 해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측은 1월20일 회사에 제시한 대안을 통해 올해 매출목표량은 작년에 비해 89%(회사측은 18%라고 밝힘) 늘어난 것으로 자동화실시와 1인당 생산성 향상을 감안하더라도 오히려 인원이 더 필요한 실정이라고 주장, 인원감축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또 근무형태변경으로 잔업이 없어짐에 따라 앞으로 해고에 대한 불안도 불안이지만 당장 전체 기능직 종업원들의 실질임금이 10~20만원씩 줄어들게 됐다면서 종전수준의 임금보장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풍산노조 안강공장지부 朴世鉉사무장은 “근무형태 변경으로 회사측은 이미 1차적인 임금인하효과를 얻고 있으며 지속적인 감원조치로 임금인상분 만큼 인건비를 줄이려는 속셈”이라고 풀이했다. “이는 또 한편으로 노조원들을 해고의 불안에 떨게 함으로써 결국 노동운동을 위축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정경유착 의혹속 20년간 고속성장
 종업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또다른 요소는 잔업을 없애고 사람을 줄이는 만큼 1인당 생산성 향상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빈발할것으로 예상되는 안전사고의 위험이다. 金萬重선전부장은 지난 연말과 1월에 잇따른 폭발사고로 2명이 사망한 사례를 들면서 “회사가 지금까지의 생산성 수준을 ‘근무태만’으로 몰아붙이면서 위험 · 위해수당을 올려주기는 커녕 압박만 가하게 된다면 안전사고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봄 노사협약 과정에서 회사측이 다소 후퇴할 전망이 없진 않으나 그 규모에 관계없이 일부의 감원이라도 강행된다면 이를 ‘생존권박탈’로 규정하는 노조로서는 거세게 저항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경유착의 의혹을 받으면서 지난 20년간 급속히 성장, 단일회사로 세계최대생산량을 자랑하는 대재벌이 일시적인 경영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임금 올려준 만큼 사람을 내보내야겠다”는 참으로 편리한 방법을 선택할진대 ‘산업평화’의 길은 멀고도 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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