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農村, 추운 ‘겨울 주름살’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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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시름 · 가격파동 등에 찌들어 들녘엔 한숨만 離農 늘어 ‘농한기 정취’도 옛말

끝닿는 데 없이 아득히 펼쳐진 만경들, 곡창지대인 김제평야가 자리한 이곳에는 밤새도록 쉼없이 내린 눈이 논바닥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겨울 농촌의 들녘은 비어 있다. 살을 에이는 추위속에서 부지런한 농부들이 올 농사를 위해 객토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논 한가운데에 꽂혀 있는 ‘김제지역 경지정리사업’이란  팻말이 유난히 크게 눈에 들어온다. 빈 들녘을 장식하는 유일한 소품인 셈이다.

 한 농가의 처마끝에 매달린 긴 고드름과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장독대에서 언 단감을 꺼내는 촌부의 모습이 창백한 수채화를 그려낸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한 무리의 참새떼가 날아간다. 농가의 밥짓는 연기가 멀리서 보아도 구수하다.

“이 시대 마지막 천민” 자조섞인 한탄도

그러나 농촌이 도시인의 향수속에 자리잡은 평화로운 안식처라는 인식은 이제 걸맞지 않다. 그동안 공업화의 뒷전에 밀려 소외된 농촌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심하게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농촌은 춥고 농민들의 마음은 차디차게 얼어붙어 있다. 예년보다 훨씬 내려간 수은주 탓도 있지만 농민들의 체감온도는 이보다 훨씬 낮다.  ‘이 시대 마지막 천민’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조와 분노섞인 말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썰렁한 빈 집들과 빚만 지는 영농실태는 농정 실패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오늘의 농촌의 모습이다.

 연산홍이 곱게 핀 전남 장성군의 한 농가. 텃마당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은  잔뜩 흐린 날씨와 닮아 있다. 농사가 싫다며 떠나버린 자식을 이 노인은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늘도 무심혀.” 혼자 뇌까리는 노인은 1년에 한두번 볼 수 있는 자식들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설이 찾아와도 설 기분이 예전같지 않다. 아낙네들은 여전히 지난한해  애써 거둬들인 쌀로 가래떡을 뽑고 지지미를 부치는 등 차례상을 준비하지만 과히 즐겁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이맘때면 왁자지껄해야 할 농촌에 휑하니 찬바람이 흐른다. ‘즐거운 명절과 고향맞이가 되시길 바랍니다’란 지역구 국회의원이 내건 플래카드만이 어색하게 바람에 나부낄 뿐이다.

 농한기의 농촌을 가면 양지녘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올 농사를 걱정하는 농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진 건 땅밖에, 아니 농사짓는 기술밖에 없다 보니 이들은 올해 농사타령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어차피 흙을 버릴 수는 없는데 어떤 작물을 얼마나 지어야 손해를 보지  않을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 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소를 길렀다가 종잣돈까지 날리고 돼지를 길렀다가  빚만 산더미에요. 보리농사를 하라고도 하지만 어데 몰라서 안 짓습니까. 지어봤자 소득은커녕 생산비도 못 건지는 것이 현실 아니라요. 뼈빠지게 일한 우리 식구들의 노동력은 고사하고 말입니다.” 전북 김제군 금구면 청운리에 사는 李貞坤(33)씨는 평생 농사만 지어온  부모님에게 이제 남은 것은 병든 육신과 산더미같이 쌓인 빚뿐이라고 탄식한다.

 崔斗植(34 · 김제군 봉남면 대송리)도 10년 이상 잘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묵묵히 흙을 파왔는데 손에 남은 것은 농협 부채와 사채로 끌어쓴 빚 1천3백만원이 전부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는 것도 아니고 막걸리와 소주가 고작인 기라요. 그 흔한 다방도 안가고 그렇다고 개줄(넥타이)매고 멋내는 친구도 없어요. 그런데도 빚은 자꾸 늘어가는 세상, 어딘가 잘못된 기라요” 이들은 84, 85년의 소파동과 88년의 고추파동, 지난해의  양돈파동 등으로 이어진 농 · 축산물 파동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농산물시장 개방 직,간접 피해 ‘엄청’

특히 최근엔 농산물시장 개방과 함께 외국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농민들은 직접 피해뿐 아니라 간접피해도 엄청나다고 말한다. 포도 · 담배 등을 경작해온 농민들은 판로가 막히고 값이 하락, 애썩 지은 농산물을 길바닥에 버려야 했다. 이러한 와중에서 일부 기업들의 횡포는 말도 못할 정도라고 충남 서산군의 한 농민은 말했다.

 고추나 배추, 과일 등도 극히 불안정한 가격 때문에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충남 도고면 시전3리 효도마을의 金達順(62) 할머니는 지난해 고추를 못판 마을사람들이 논바닥에 고추를 쌓아놓고 불태웠다고 노여워한다. 정부측 말만 듣고 농사를 지으면 손해보니까 이를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돌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작년에 5천평 논에서 1백섬 좀 못되게 수확을 했제. 수매가 문제로 우리가 건의도 했지만 쌀금이 겨우 8만4천원으로밖에 오르지 않았나베. 이 쌀금으로는 이익이 남을 수가 없어. 10만원은 되어야제. 비료값도 비싸지만 기계값으로 매달 지출해야 할 돈도 얼메나 부담스러워. 거기다 인부 노임이 비싸졌어. 우리 둘 노동력은 고사하고 남는 게 별로 없제. 우리네야 쌀이 돈이나 마찬가진데 쌀금이 헐해. 그러다 본께 쓰고 싶은 거 제대로 못쓰제.” 전북  김제군 만경면 송상리 신덕부락에 사는 朴鍾錫(61) 할아버지는 뿌옇게 흐려진 들녘을 바라보며 농사짓는 게 이젠 고역일 뿐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일년내내 논에서 거머리에 뜯겨가며 땡볕 아래서 일을 해도 먹고 살기에 전전긍긍해야 한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 마을 이장 朴鍾萬(48)씨도 한마디 거든다. 쌀값이 헐한 것도 문제지만 농민들이 원한 만큼 정부에서 수매를 해주지 않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에 강한 불신 표출

 이같은 지적에 대해 김제군청 崔圭喆 농산과장은 “정부에서 다 사들여라 하는데 재원 · 보관시설이 모두 부족한 상태여서 현실적으로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엔 무리가 있다”고 밝힌다. 또 농민회 등에서 생산비를 보장하라고 요구하지만 수매가 자체보다는 정미소에서 제때에 돈을 쥐어주면 어려움은 덜어질 수 있다고 농민들과는 다른 처방을 내렸다. 김제군 농민회 吳仁根 교육부장은 하다 못해 손톱깍이 등 모든 상품은 가격을 생산자가 정하는데 왜 유독 쌀값 등 농산물값은 생산자인 농민이 정할 수 없느냐고 분개했다. 吳씨는 농민들의 이같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권리를 찾아 연대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지금 한창 벌어지고 있는 농협 단위조합장 직선에도 농민들은 ‘별거 있겠느냐’는 식으로  시들한 반응을 보였다. 전국농민협회 등 농민단체들은 지난해 쌀값 보장, 전량 수매, 농민과 도시빈민을 동시 구제할 수 있는 이중곡가제 실시, 농민대표로 구성된 곡가기구 상설화 등을 주장, 제몫찾기 민주화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땅에서 희망을 잃은 농민들은 별 기대도 걸 수 없는 도시로 떠나고 있다. 김제군 성덕면  대목리는 농가수 58호 남짓의 작은 마을로 농촌 중에서도 못사는 곳으로 손꼽힌다. 큰 나무가 많아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 60년대만해도 ‘웬만큼 사는’마을은 되었었다. 그러나 밭  한뙈기도 없는 농가가 30% 이상으로, 영세민카드 지급자가 80%나 된다는 이 마을은 불과  5~6년 사이에 이농으로 농가수가 20여호 가까이나 줄었다.

 전남 승주군 오산면 오산리 오산부락도 이농인구가 많기는 매 한가지다. 최근 15년 사이에 가구수가 3분의 1이나 줄어들어 현재는 60가구 2백50여명이 썰렁해진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것도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회지로 나가고 거의 노인들만 남아 있다. 이들조차 세상을 떠나게 되면 이 마을은 어쩌면 지도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농현상의 심각성은 통계로도 입증이 된다. 농림수산부의 표본조사에 의하면 88년말 현재 총농가구수는 1백82만6천호로 지난 85년에 비해 10만호가 농촌으로부터 떠나갔다. 농가인구는 7백27만2천명으로 71년에 비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를 성별과 연령별로 보면  여성과 50세 이상 연령층의 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어 농촌이 고령화 · 여성화로 치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별 보고 나가서 별 보고 들어올 때 전기불 켜놓고 기다리는 시어머니만  있어도 살맛이 나겠다는 한 농촌 아낙네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이 농촌의 실상을 알리는 단적인 사례일지도 모른다.

새 기술로 돈 버는 ‘신세대 농민’도

 농가부채도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88년말 현재 농가 한가구당 부채는 3백13만1천원으로 정부의 갖가지 융자 지원에도 불구, 87년보다 31%나 늘어났다. 부채가 전혀 없는  계층이 18.7%임을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빚을 안고 있는 셈이 된다. 실제로 빚 갚을 길이  막연하다고 호소하는 농민들 중엔 1천만원대의 부채에 신음하고 있는 농가도 많았다. 농가부채 증가는 농업기계화, 주택개량, 소 입식자금 융자 등 투자확대와 자녀교육비, 의료비 지출증가 등 여러 요인이 얽혀 나타나는 현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농산물가격 불안정과 저농산물가격 정책으로 농가 실질소득이 제대로 늘지 않은 데에 있다는 것이 농업경제 전문가들의 견해다. 농정과 농업생산성의 획기적 개선 없이는 농가부채가 줄어들 수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농촌의 일반적인 피폐와는 대조적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이들도 없지 않다. 남다른  영농기술 개발이나, 재배와 출하시기를 잘 포착해 고소득을 올리는 ‘신세대 농부’들도 상당수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金南珍씨(31 · 경남 사천군 사남면 화전리)는 ‘수막재배’란 비닐하우스 신농법을 개발,  올해부터 획기적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천 향토사랑 청년회’회장이기도한 金씨는 농촌에서 뿌리를 내리고 황폐한 농촌을 다시 일구려는 야심찬 젊은이 중 한사람이다.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도 수막재배법을 전수, 실질적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저는 공고 출신이지만 쇠는 생명이 없어 매력이 없지예. 흙은 다르죠. 씨를 뿌려 꽃이 피고 열매맺기를 고대하면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함으로 정신적 행복을 만끽하게 되지예.” 金씨는 젊은 사람을 농촌에 붙들어두지 못하는 현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申洛龜(41) · 朴蓮淑(36)씨 부부는 전남 나주군 남평면 평산리 앞뜰부락에 사는 억척농사꾼들이다. 이 부부의 1천2백평 비닐하우스에는 상치가 한겨울을 잊은 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수박 모종을 돌보고 있는 申씨는 처음 몇년간은 생산비도 못건질 정도로 적자영농을 했었다. 그러나 농민대학을 다니는등 꾸준히 재배기법 연구를 한 결과 이제는 매년 순익을 2천만원 정도 올리는 부농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도시에서 장사를 하던 申씨가 흙에  다시 돌아온 것은 그의 亡父가 ‘神農씨’라 불릴 정도로 탁월한 농사꾼이었다는 점에서 영향받은 바가 크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영리한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 있습디다. 남보다 앞서려면 연구를 많이 해야해요. 일도 열심히 했죠. 여름엔 더우니까 저녁 어스름께부터 달빛을 보면서 진짜 애지중지 자식마냥 정성을 쏟았지요. 팔려갈 때는 서운하기까지 합디다.”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옥암리에서 만난 朴湘龍(30)씨도 고소득 농부 가운데 한사람. 1만7천마리의 양계장을 경영하고 있는 朴씨는 일찌감치 축산업을 택해 아버지의 조언을 들으면서  닭을 키워왔다. 계사에서 지새운 밤도 많았다. 닭이 잘 걸리는 병이라든가 닭의 모든 것에 대해 朴씨는 철저한 연구를 했다 지금은 연간 총수익의 1억대가 넘어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에 버금가는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꽃 농사로 한해 2천만원 벌이

고소득으로 치면 경남 김해군 초정리의 화훼농가들도 빼놓을 수 없다. 광활한 들판이 온통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화초밭. 이곳에선 국화 · 장미 · 카네이션 등 갖가지 꽃들이 한창 봉우리를 터뜨리고 있다. 1천2백평 규모의 꽃농사를 짓고 있는 車양수(35)씨는 “연간 총판매액이 억대에 가까워 순익이 2천만원 정도인데 더 대규모 경작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곳엔 많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이들이 오늘의 농촌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이 남다른 애착과 노력으로  부를 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직하고 열심히 땅만 파온 대부분의 농군들이 갈수록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꼬리를 무는 농민의 자살. 농사짓는다는 이유만으로 제짝을 찾아 가정을 이룰 기회마저 박탈당한 농촌 총각들. 전체 농가의  71%에 이르는 소작농들은 매년 애써 지은 농사의 41%를 빼앗기고 있다는 통계 등 농촌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다. 빈농 · 소작농 · 부채농으로 전락하여 생산수단인  땅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분리되는 농민들의 수가 매년 50만명이나 되며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도시의 산업예비군으로 편입돼 고용 · 주택 · 교통문제 등 새로운 도시문제를 야기시킨다. 농촌 자체의 피폐상도 문제지만 이는 국민경제 전체에도 주름살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나 농협 · 농지개량조합 등 농민관련 기관들은 이들의 진정한 협력자가 되지  못한다. 농정부재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소파동’ ‘고추파동’을 겪은 이들은 더 이상 정부나 정치인들을 믿지 않는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농어촌발전 종합대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2천년대까지 호당 평균 2.7 헥타아르의 국제경쟁력을 갖춘 전업농가 육성을 목표로 이농과 농촌공업화(농공단지)를 통한 在村脫農, 농지집중화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1백50만호의 생존권이 달려있기 때문에 추방대상인 절대다수 빈농층(농민의 85%)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게다가 GATT 국제수지 조항에서 우리나라가 졸업함에 따라 97년까지 전체 농 · 축산물에 걸친 수입개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입개방을 전제, 이 구조조정 정책으로 빈농을 청소하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 정책 가체가 반농민적이라는 것이다.

“농민들 마음도 거칠어지고 있다”

 전남 나주군 남평 농협의 尹昇赫조합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의 농업기반은 뿌리째 흔들리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李佑宰 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은 “모든 농업 · 농민 · 농촌문제의 주범은 저농산물가격 정책에 따른 독점자본의 농업수탈 정책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 농업 연관산업, 유통 · 저장 · 수입 · 수출 · 금융 등 모두가 농민의 손으로 넘어가야  한다. 농업의 개념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이 시급한 때”라고 주장했다.

 조선농민사를 쓰고 싶다는 소설가 鄭東柱씨의 지적은 더욱 절실하다. “순박하기만 하던 농민들의 심성이 거칠어지고 있다. 생산을 더 많이 하려는 이기주의가 팽배, 농약을 뿌리는  것이 아니고 퍼부어대고 있다. 이 농작물을 누가 먹어 인체에 해를 끼치더라도 나만 안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발상으로 이들은 삐뚤어져가고 있다. 인간성 상실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들에게 참된 의미에서 인간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는 마치 부메랑 현상처럼 농촌 · 농민의 참담한 현실이 우리를 할퀴고 지나갈 것이다. 도시라고 안전지대는 아니다.”

 겨울 농촌의 텅빈 들녘처럼 농민들의 마음은 스산하다. 가난했지만 따스한 인정이 넘쳐 살맛났던 농촌. 이곳이 메말라가면서 상실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고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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