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고립’ 雪海에 잠긴 관동지방
  • 글 박상기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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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 1m38㎝로 사상최고 적설량 교통 · 전기 · 수도 · 생필품 끊겨 도시기능 마비

고개를 넘으니 雪國이었다. 강릉市의 관문인 해발 8백65m의 대관령에 오르자 눈속에 갇힌 도시 강릉이 전혀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다. 1월28일 밤부터 연 나흘째 내린 1m38㎝의 폭설로 육로 · 항공 · 철도 · 해상 교통이 모두 끊긴 도시.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의 적설을 치워 고속버스가 부분적으로나마 운행, 외부와의 가느다란 숨통을 터놓고 있을 뿐이다.

 1911년 강릉기상대가 개설된 이래 최대의 적설량을 보인 이번 눈으로 강릉시내는 곳곳에서  단전 · 단수 · 지붕붕괴 등의 사고가 잇따르고, 택시와 시내버스는 물론 속초 · 삼척 · 정선  등으로 연결되는 73개 시외버스 노선도 전면 중단돼 도시기능이 마비되어버렸다. 3일째 중심가의 직장까지 4㎞를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다는 李始鍾(48)씨는 “생필품이 끊긴 것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벌써 파 · 마늘 · 오이 등 식료품값이 크게 올랐고 난방용 기름마저 구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강릉 인접지역인 명주군과 평창군의 산간 마을들도 雪海 가운데의 외로운 섬처럼 옴쭉달싹을 못하고 있었다. 군부대 제설차의 도움을 받으며 찾아간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3리.  눈길을 헤치고 이 마을에 편지를 전하러 온 횡계우체국 집배원 咸善鎬(37)씨는 “2백통을 받아왔는데, 그 절반도 돌릴 수 없는 형편”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예부터 아름드리 소나무 숲으로 유명한 명주군 사천면의 산간지방에는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모로 쓰러져 누운 雪害木들이 즐비했다. 뿐만 아니라 노변 주유소의 지붕마저 무너져내려 대폭설의 위력을 짐작케 했다. 2월1일 오후3시를 기해 영동지방에 내린 대설경보가 해제되고 하늘이 개이자 강릉시민들은 저마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난 설날 고향을 찾았다가 발이 묶인 귀성객들, 급한 환자가 발생하여 119구급대에 신고했으나 속수무책이었던 환자가족들, 단전 · 단수 · 전화불통 사고 등으로 전전긍긍하던 주부들, 비닐하우스가 폭삭  내려앉아 큰 피해를 입은 농민들···. 눈은 멈추었지만 ‘폭설의 사연’은 그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영동지방 산간오지의 고립 마을들은 처마밑까지 차오른 눈속에 파묻혀 앞으로도 꽤나 긴 날들을 동면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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