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남 칼럼] 지금은 선택의 계절인가
  • 최일날 칼럼 ()
  • 승인 199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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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파’라는 것이 있었다. 9 · 28수복후 인민군의 침공을 피해 한강을 건넜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서울에 남아 있던 인사들은 제물에 ‘잔류파’가 된 셈이었으며, 그후 전개된 여러가지 상황속에서 ‘도강파’가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어디 그때 뿐인가. 사람 사는 곳에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파’를 가르는 성향이 있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이런 일이 당연히 심한데, 최근의 신당창당을 앞두고 민주당의 참여 거부파를 신문은 ‘잔류파’라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파’의 구별은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그것이 무리를 이루어 정착되면 ‘계보’로 이름을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파’의 탄생조건은 일단 각자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게 상식이다.

 어찌 정치뿐이겠는가. 사람은 일생 동안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같은 어마어마한 명제는 셰익스피어에게 다시 돌려주자.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로 시작해서, 이것을 따르자니 저것이 울고 저것을 택하자니 이것이 운다는 따위 결단의 순간은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무엇을 사먹을까를 두고 1~2분쯤 망설이는  ‘정오의 고민’까지를 이에 포함시키는 건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다.

선택은 순간이고 책임은 영원하다

선택의 기준이 당사자로서는 애매하고, 이현령비현령식 명분을 띠고 동시에 들이닥치기 때문에 고민이 필수적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 또한 없다. 민주당 잔류파들이 “고민 많이 했다”고 실토하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이리라. 비단 그들만이 갈등을 겪었다고 볼 것도 없다.  ‘야합’과 ‘구국’으로 평가와 자부가 엇갈린 3당합당을 놓고 세 수뇌도 나름대로의 고민을 했을 것이며, 야권통합을 외치는 쪽도 다가온 선택의 시간앞에서 그 방법을 두고 고민과 궁리가 한창이리라 믿는다. 어느쪽의 손을 맞들어줄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굴리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선택의 순간은 짧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할 기간은 영원한 시점에 서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다. 그러나 사인이 아닌 공인의 처지에 있는 정치인,  더구나 모두의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걸 좌지우지할 만한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의 행동규범이, 지금쯤은 의리나 인정 차원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의리와 인정이 아름다운  것이기는 할망정 이제는 그게 공인의 의무라든가 더 나은 선택으로 바뀔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리를 다 한다면 모를까 노상 코에 걸고 다니는 건 언짢다.

 한번 내린 결단을 굳은 의지로 밀고 나가는 것은 좋으나,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후퇴할줄 모르는 지도자들 때문에 우리 역사가 상처를 많이 입었다는 인식은 더 중요하다. 억지에 억지를 보태고 ‘똥고집’같은 아집을 부리다가 비참한 종말을 당한  독재자가 다른 후진국에도 왜 없었을까마는, 선진국 지도자들은 그걸 슬기로 극복한 예를  ‘선발 증진국’의 수준으로 본받았으면 싶다. 이런 뜻에서 누구나가 잘아는 드골의 저런 낙향은 괜찮은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나  당당하고 깨끗한 마지막으로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고향인 릴로 가지 않고 정신박약 때문에 스무살에 요절한 둘째 딸 안느를 못잊어, 그녀가 묻힌 콜롱베이에서 살다가 그곁에 더불어 묻힌 그는 이중으로 사람의 도리를 깨우친다. 하물며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그런 정치인의 출현을 목마르게 기다렸다. 박수와 칭찬을 항상 준비하고 있었으나 그들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독재자는 빨아도 독재자일 뿐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참회서를 쓰는 기분으로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새치기로 권력을 잡아 나라의 민주주의와 도덕률을 거덜내놓고도 잘했다고만 우기는 정치지도자들의 행렬에 질린 지 오래다. 한번도 참회의 국면을 거쳐 거듭나는 무대를 갖지 못한 형편에서, 걸핏하면 들먹이는 ‘후세의 역사’운운도 더는 듣기 싫다. 현세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후세에 가서 괄목 평가되는 예를 별로 보지 못했다. 사마천의 ≪사기≫가 그토록 칭송되고 생명이 긴 것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형안과 역사에 대한 정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때의 桀紂는 지금도 걸주이며, 독재자는 빨아도 독재자라는 이치엔 변함이 없다.

 수틀리면 ‘백의종군’을 입에 올리는 것도 신물난다. 자기 논에 물대는 꼴의 상투적 언사라는 느낌이 짙다. 그것은 이충무공에 대한 모독이랄 수도 있으며 오만의 또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감을 잡는다. 한점 사심없이, 사형선고에 이르는 모함을 받고도 백의의 몸으로 전장에 나가는 충무공의 우국충정에 비긴 것은 아닐지 모르나, 그걸 전혀 염두에 두지말라는 법도 없어 하는 소리다. 차라리 정치적 소신이 뚜렷하다면,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을 비판했다가 ‘走資派’로 몰려, 고향집 마당에서 닭이나 치고 채소를 가꿨던 등소평처럼  시대의 다른 진운을 기다리며 사는 게 낫다. 그래서 모택동으로 하여금 그가 “솜에 싼 바늘”이자 “쓰러지지 않는 작은 거인”이라며 마침내 돌아서게 만든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은 선택의 계절인가 보다. 다만 유권자들은 지켜볼 따름이거니와, 전자가 오히려 끝내 당당하기를 희망하는데 후자는 표가 도망갈 것을 염려하는 처신을 한다면 모양이 우습다.  확실한 무언가를 착실히 보여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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