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채 받으려면 꼴찌 되라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199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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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제2탄생 선언은 정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전문직업 집단으로서 전투력을 최대화할 때 완성될 수 있다.”

이번 예산국회를 통해 한국군은 더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첫 예산을 다루는 국회 예산결산 위원회에서 여야가 10조5천억원에 가까운 국방 예산을 놓고 논쟁하는 것은 내외 변동의 큰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방위원회에서 민주당은 4천억원을 삭감하자, 무기심사위원회를 설치하자, 비목에 따라 국방 예산을 공개토록 하자면서 공세를 펴고 있다. 군이 통뼈처럼 힘센 집단으로만 통하던 것은 이미 옛말이다.

 군사정권 시대에는 정치 목적에 따라 걸핏하면 과장하고 악용했던 ‘한번도 위기론’도 이번 국방위원회에서 점검을 받아 달라진 면을 보였다. 예산 심의에 들어가기 전에 열린 안보정세간담회에서 국방부장관은 위기를 확대해석하지도 않고 정세를 안이하게 보지도 않고, 사실에 따라 정세를 판단하는 자세를 보였다. 최근에 북한의 군사 동향이 거론되고 있지만 군사 행동을 점칠 만한 특별한 징후가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얼마전 ‘군보다 세다’고 한 《시사저널》기사 제목이 화제를 만든 일이 있다. 권력은 텔레비전에서 나온다는 말이 가끔 쓰인다. 텔레비전의 힘이 막강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진자 완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군이다. 총구에서 권력이 나온다는 표현이야말로 군사 조직의 물리적인 힘에 근거를 둔 정치 군인의 생각이 담긴 것이었다. 완력으로야 군을 당할 장사가 없으니, 군보다 세다고 한데 우선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시사저널》은 좌우 세력이 퇴조하고 중간세력이 부상하는 가운데 시민운동 세력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가장 큰 힘을 가진 단체로 꼽히자, ‘경실련, 군 보다 세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던 것이다.

정치 목적에 군사 완력 발휘하면 쿠데타
 군이 시민 단체보다 힘이 약해졌다면 사실 큰일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하는 힘이란 정치와 유착된 힘 곧 정치 권력임은 물론이다. 군사 행동은 국가 목적을 위해 완력(병력)을 써야 옳다. 군사 행동의 전형적인 예는 국가 간에 일어나는 전쟁이므로 군사 행동은 국방과 맥을 같이 해야 하는 법이다. 군사 목적이 아니고 정치 목적에 군사적 완력을 행사하면 쿠데타가 된다. 쿠데타라는 프랑스 말은 두명의 나폴레옹이 급습적이고 무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일으켰던 정변이 전형적인 것이 되어 자리를 잡았다.

 우리도 두명의 장군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들을 겪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난 30여년 동안 군이 정권과 유착한 힘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왔다. 80년대 세도를 누리던 신 군부 치하에서 군부 엘리트조차 부지중에 그런 시대가 오기를 기다려 왔다.

 서울대 사회학과 홍두승 교수가 84년에 군부 엘리트의 사회의식을 조사한 내용이 그런 점을 알려준다. 연구자는 조사 대상을 대기업주 · 중소기업주 · 전문 경영인 · 군 출신 기업인 · 군 지도층의 다섯 집단으로 나누었다. 다섯 집단의 응답자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역할과 비중이 어떻게 변화되기를 기대하는가 하는 물음에 1%만이 ‘군부의 성장을 바란다’고 했다. 이어서 재벌(4%) · 대학생(6%) · 정부관료(7%) · 종교집단(7%) 순이었다. 반면에 그 역할과 영향력이 증대되기를 바라는 집단으로 70% 이상이 지식인을 지목했고 농민(67%) · 중산층(63%) · 언론(59%) · 국회의원(50%)으로 이어졌다. 조사 대상자가 서울대학교 발전정책 과정과 최고경영자 과정 출신이라는 특성이 있지만, 신군부 시절의 군부 엘리트와 기업 엘리트가 오늘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대강 일치하는, 군의 정치적 영향력 감소를 기대했다니 새롭다는 느낌이 든다.

시대 변화 반증하는 새 용어 ‘군대 없는 사회’
 같은 연구자가 지난 9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군부는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 가운데 국회의원 · 언론인 · 재벌 · 재야 · 지식인에 이어 여섯 번째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리고 오는 2000년에 정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는 집단으로 군부는 최하위(1.5%)로 나왔다.

 우리는 지난 국군의 날에 군이 제2의 탄생을 선언한 것을 기억한다. 선언한 후에는 그 실천 항목을 착착 집행해 나가야 하는 법이다. 군은 정치적으로 가장 힘센 존재로 행세하던 오랜 구습을 깨고 정치권 밖으로 나가 영향력 순위에서 꼴지가 되는 것이 갈채를 받는 길이다. 앞으로 군의 정치적 영향력이 최소화한다는 것은 군이 전문직업 집단으로 정착함을 전재로 한다.

 요즘 군대 사회학 분야에 신조어가 생겼다. 새로운 사고 체계에 의한 세계적인 바람 때문이다. ‘탈군사 시대’가 논의되는 가운데 작년 칠레에서 열린 국제군대사회학회 토론장에 무전쟁사회(warless society) 및 무군사회(armyless society) 같은 신조어가 나와 시대 상황을 반영했다고 한다(홍두승 저 《한국 군대의 사회학》참조).

 군사 전문가들은 한국군이 군사비 축소를 전투력 축소와 동일시해 온 잘못된 발상으로 그간 국방비를 낭비해왔다고 지적한다. 국방비를 효율화하되 전투력은 오히려 향상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군인도 한 사람으로서 군사 전문화를 추구해야 군이 전문직업 집단으로 정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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