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결의”만으로 될까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2.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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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초선 의원의 선언은 시선하고 반가운 일이나 부패한 정치 풍토에서는 보다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얼마전 재야 출신 민주당 초선 의원 12명이 ‘깨끗한 정치’를 선언한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그들의 단호한 결의가 실천으로 옮겨지고 다른 모든 동요의원한테 파급되어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 땅의 정치가 맑고 깨끗한 정치로 승화하는 데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소원 간절하다. 그들은 경조사에 화환이나 돈봉투 안보내기, 골프장이나 호텔에 드나들지 않기, 고급 승용차 안타기, 각종 인사장?달력 안돌리기, 국회 회기 중에 주례 안서기 등을 실천 요강으로 결의하고, 그 대신 ‘정치비용’을 핑계삼은 음성적 자금이나 비리성 자금은 거부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 땅의 정치문화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쾌한 움직임이다. 부정?독배의 광풍이 회오리치던 어둡던 시절, 몸과 마음을 민주화 투쟁에 불살랐던 혁명가적 기질이 ‘깨끗한 정치 선언’으로 나타난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13대 국회에서 깨끗하다고 정평이 난 이해찬 의원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엔 화환을 보내는 것을 비롯하여 이것 저것 경조사 챙기는 데 한달에 3백만~4백만원을 썼다”고 한다. 지구당 운영비를 제외하고도 한달에 1백50만원 정도씩 적자가 나, 결국은 화환을 보내지 않기로 작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13대 국회의 경우 적어도 1천만원쯤 들 것이고, 따라서 세비 4백만원을 가지고는 6백만원의 적자를 면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적자를 메우려면 사재를 털던가 아니면 ‘검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법적으로는 지구당별로 후원회를 만들어 지구당 운영에 필요한 돈을1년에 1억원까지 각출할 수 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비리자금을 쓰지 않으면 안되게 공작?통제한다는 것이 이해찬 의원의 주장이다.

 

소선거구제에서는 뿌리깊은 ‘서비스 경쟁’ 고치기 어려워

 사실 이의원이 밝힌 8백만~1천만원이란 돈은 국회의원의 체면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액수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훨씬더 많은 돈이 필요한 현실이다.

 따라서 재야 출신 초선 의원 12명이 ‘자정결의’로 화환 안보내기 등을 결정한 것은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유권자에 대한 쉴새 없는 서비스 경쟁이 효과적 선거운동이 되는 타락 풍토 속에서, 국회의원을 다시 안할 각오라면 모르되 관혼상제 등 최소한의 인사 치레를 4년 내내 외면하고 세비만 가지고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어쩔 것인가.

 진정으로 부패한 정치 풍토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개혁이 단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첫째, 한 지역에서 한 사람의 의원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 아내에서는 고질적 부패문화인 선거구민에 대한 서비스 경쟁을 뿌리뽑을 길이 없다. 역사적으로 ‘미풍 양속?예의범절’과 뇌물성 선물‘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전통인 데다가, 국회의원이라는 ’벼슬‘자리를 시켜주는 데 대한 대가를 기대하는 선거구민의 심리가 영국이나 미국의 선거구민들과 판이하다. 결국 정치인들은 부패로 몰아넣는 것은 선거구민들이고, 돈을 써서라도 벼슬을 하겠다는 정치인의 야심이 여기에 상승작용을 일으킨 경과 영국에서는 7백만~8백만원이면 되는 선거 비용이 한국에서는 심지어 7억~8억원까지 쓸 정도로 악화되었다.

 

활발한 국회활동은 가장 올바르고 돈안드는 선거운동이다.

 해답은 간다하다. 소선거구를 버리고 대선거구로 바꾸며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로 고치는 것이다. 그러면 선거구민들에 대한 후보자의 자살적 서비스 경쟁은 뚝 그칠 것이다. 돈을 쓰는 것과 당선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된다. 돈 만드는 데 재주가 없는, 그러나 나라 다스리는 데는 경륜이 뛰어나고 책임있고 통찰력있는 사람들이 정치무대에 주역으로 등장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새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로는 국회가 말하고 따지는 일하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당 합당 후 지금까지 국회는 있으나 문을 여는 일이 별로 없었다. 정기국회 말고는 정부가 필요할 때만 잠깐 열어 수십개 의안을 무더기로 날치기 통과시켰다. 거기에 진지한 토론과 타협과 합의가 있을 수 없다. 정말 국회가 늘 열려 날 살림에 시시비비를 가린다면 국회의원 의정 활동의 우열과 승패가 선거구민 판에 자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가장 바른 선고운동이고 거기에는 돈이 전혀 필요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부의 들러리를 전락한 국회이기 때문에 늘 ‘놀고 먹는’국회의원이 되고, 노는 동안에 ‘검은 돈’이라도 챙겨 선거 조직을 키우는 것만이 재선을 기약하는 길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도 없이 국회의원 대다수의 ‘양심과 도의’에 호소함으로써 ‘깨끗한 정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리 정치 현실에서 오히려 순진난만한 생각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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