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낸 시설투자가 부실 부채질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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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부채비율 3백9% 대만은 84%… 삼미그룹이 대표적 예



 지난해 말 증권사 객장에서 투자정보조회용 단말기를 두들겨본 투자자 김모씨는 ‘삼미그룹 자금악화설’을 보고 긴장했다. 그는 삼미종합특수강 주식을 1만주 이상 갖고 있었다. 그 소문의 사실 여부를 알기 위해 그는 노심초사했다. 그의 걱정은 올해 들어 더욱 깊어졌다. ‘부도설’ ‘법정관리설’등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증권가의 소문은 80% 이상이 사실무근이지만 삼미의 경우는 거의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벌어서 이자 갚기에 급급한 상황인 것이다. 당장 살아남기 위해 비싼 이자의 급전을 꾸고 이를 갚기 위해 또 꾸는 돈이 “수백억원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자연히 주가는 6개월 내 반토막이 됐다. 상장사인 삼미특수강과 (주)삼미의 주가가 1만1천원 선에서 5천원대로 주저앉았다.

 삼미그룹 金顯哲 회장은 지난 85년 말 임직원을 대상으로 ‘5개년 발전전략’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7천여 임직원이 그린 미래상은 특수강을 수직계열화하고 소재가공산업으로 다각화하고 항공 전자 화인세라믹스 등 첨단산업에 진출하고 또 국제화하는 것이었다. 이는 김회장의 구상과 같았다. 87년 삼미공정을 시작하여 88년에 삼미이튼(삼미기공으로 상호 변경)·삼미켄하 등을 설립했다. 89년에도 기업 늘리기는 계속됐다. 항공산업 참여를 위해 삼미항공·삼미아구스타항공·삼미항업(처분중) 등을 설립했다. 확장바람은 해외로도 불었다. 89년 8월 캐나다의 아트라스사 및 미국의 알텍사를 2억2천만달러(1천4백억원)에 인수했다.

 기존기업의 증설에도 박차를 가했다. 87년부터 90년 11월까지 3천억원을 들여 삼미특수강 창원공장의 생산능력을 42만5천톤에서 1백만톤 규모로 늘렸다. 창원공장 증설과 해외공장 인수로 1백59만톤 생산능력을 갖게된 삼미는 북미지역에 판매망을 구축했고 일본(코스모스틸사)·덴마크·멕시코 등지에 해외 판매법인을 만들었다. 자본금이 1천4백67억원인 이 회사는 지난해 말 현재 1천63억원을 판매법인 등에 출자했다.

 삼미의 왕성한 기업확장 의욕은 경기흐름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그룹 전체를 휘청거리게 했다. 88년 2월 최고점(통계청 분석)을 형성한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어가자 판매부진이 두드러졌다. 그런데도 투자는 계속됐다. 경기는 89년 6월 최저점을 지난 뒤에도 정체상태를 보였다. 재고는 쌓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지법인인 삼미아트라스사와 삼미알텍사가 미국시장 침체로 2년 동안 적자경영을 보이자 자금사정은 크게 악화됐다.

 간판기업인 삼미특수강의 91년 결산기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를 보자. 이 회사는 영업에서 1백35억원의 적자를 냈다. 부동산 매각 등으로 1백93억원의 특별이익을 내 간신히 31억원의 당기순익을 냈지만 밑진 장사였다. 장사가 신통치 않으니 그동안 빌린 돈의 이자를 갚고 운전자금을 구하기 위해 또 빚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말 이 회사의 부채는 총 8천5백억원으로 90년에 비해 2천7백억원이나 늘어났다. 특히 유동성 사채와 단기차입이 크게 증가했다. 대신경제연구소의 한 분석가는 “21년 이내에 갚아야 할 빚이 크게 증가한 것은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지난해 이 회사가 이자로 낸 돈은 2백32억원에 달했는데 그중 금육비용부담률이 10.5%나 된다. 철강업종 평균 수준의 2배를 웃돈다. 1천원의 제품을 팔아 1백5원을 이자로 무는 셈이다. 모기업인 (주) 삼미도 특별이익 1백48억원을 내 20억원의 이익을 올린 것으로 보고됐으나 사정은 특수강과 큰 차이가 없다. 그룹에서 두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71%에 이른다.

 

재계서열 19위 삼미, 투자액 절반이 빚

 재계서열 19위의 그룹(지난해 말 현재 현지법인을 포함해 매출액이 1조7천억원)이며 지난해 11월 해외전환사채(CB)를 발행할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삼미그룹이 경영위기로 내몰린 것은 “자기 힘에 부치는 과도한 투자를 한 데 있다”는 것이 동서경제연구소 한 간부의 진단이다. 제일증권의 한 간부는 “김현철 회장이 첨단병에 걸렸다”고 말하면서 하이테크 산업에 지나치게 몰두한 것이 화를 자초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삼미그룹 宋憲一 상무는 “특수강은 생산능력이 1백만톤이 넘어야 경쟁력이 있다. 세계 1위업체인 일본의 다이토특수강은 1백80만톤이다. 삼미정공 삼미기공 등의 설립도 특수강의 수직계열화 작업의 일환이다”라고 반론을 편다. 또 “경기흐름을 거슬렀다고 하지만 대규모 투자에 들어가기 전에 경기예측을 했다. 다만 동서화해 분위기 등으로 군수산업이 정체될 것은 예상할 수 없었으며 경기도 당시보다 급격히 나빠진 데다가 인천제철과 포항제철이 특수강 시장에 새로 뛰어들어 경쟁이 격심해졌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설사 경기가 후퇴국면에 들어갔다고 해도 기업이 먼 장래를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차입에 대해서도 “자기 돈만을 갖고 기업 활동을 하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5년 동안 잇달아 투자를 하고 투자 소요액의 절반 이상을 빚으로 메워온 것은 “경영잘못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 이 그룹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본 분석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삼미그룹의 경영부실화를 초래한 이러한 과도한 투자는 삼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한국 기업의 현주소를 삼미그룹이 극명하게 보여 줄 뿐이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 분석에 위하면 설비투자 등 유형고정자산증가율이 지난해에도 17.1%의 높은 수준을 보였다. 90년의 18.8%보다 떨어지고 있지만 이 수준은 여전히 지나치다고 한국은행은 진단한다. 투자를 유형별로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산업은행의 설비투자 계획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투자금액을 1백%로 할 때 단순한 생산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투자는 제품의 질과 생산성을 높이기보다는 공급과잉을 야기해 재고가 늘어나게 만든다. 기업의 과도한 주차는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금융과 세제의 혜택을 주면서 투자가 무조건 좋다고 부추긴 정부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자소요액을 조달하는 행태는 더욱 문제다. 한국은행 金炳和 산업분석과장은 “설비투자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과실이 생기므로 남의 돈을 지나치게 꾸어다가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단기자금에 의존하는 것은 경영부실화를 가져오기 쉽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우리 기업들은 매출액의 11.1%를 설비투자에 쏟았다. 매출액 중 자기자금은 9.2%에 그쳤다. 두 비율의 차이가 1.9%로 벌어지고 있다. 빚을 많이 얻고 있음을 말한다. 이같은 행태는 고장비율(투자 등 고정자산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것)이란 지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고정비율은 일반적으로 1백%를 표준으로 보는데 우리 기업의 경우 2백%가 넘는다.

 이로 인해 제조업의 자기자본이율(자기자본을 총 자산으로 나눈 것)은 89년 28.2%에서 91년 24.4%로 떨어졌으며 부채비율(부채를 자기자본으로 나눈 것)은 2백54%에서 3백9%로 높아졌다. 경쟁국인 대만은 자기자본 비율과 부채비율이 각각 54.5%와 83.5%였다(90년). 차입금의존도(차입금을 총 자산으로 나눈 것)도 44.6%에 달한다. 이는 금융비용부담률(금융비용을 매출액으로 나눈 것)을 높이 팔면 이자로 57억원을 물어야 하니 임금주고 영업비용을 빼면 실익이 없을 수밖에 없다. 기업의 재무구조를 보여주는 지표들이 한결같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빚을 낸 돈으로 투자→이자부담 급증→부채 증가→순익감소의 악순환과 함께 경기가 식기 시작하면 경기정체→매출액 감소→재고누증→자금사정 악화→부채 증가→경영부실화를 가져와 기업은 도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악순환은 한 기업만을 결딴내는게 아니다. 과도한 투자는 물가상승을 가져온다. 금리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를 인플레·고금리 체질로 만든다.

 한국은행 文學模 조사2부장은 “양적팽창에서 질적 구조로 넘어가는 상황이므로 발상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말한다. 단순한 생산능력 위주의 무리한 시설투자를 자제하고 투자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경기가 감속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경기진작책을 쓰라고 정부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 경제안정화 정책을 통해 물가를 떨어뜨려야 기업경영 여건이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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