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재처리 시설 단념하겠다”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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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국제사찰 중간보고…서방측 핵기술 이전 전제로 시사



 한스 블릭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지난 10일 빈에서 각국대사에게 설명한 자신의 북한방문(5월 11~16일)과 임시사찰(5월 25일~6월 6일)결과의 핵심은 북한이 아직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번 사찰을 통해 북한이 독자적인 핵연료 주기(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다시 연료로 투입하는 순환공정)의 보유를 추진해왔고 ‘꿈의 원자로’라고 불리는 고속증식로 건설까지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핵무기를 제조할 만큼 충분한 플루토늄의 생산 능력은 아직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의혹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현재 공사가 중단돼 있는 방사화학실험실이 완성되면 재처리시설로 사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처리시설은 평화적으로도, 무기제조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북한은 이 시설이 핵연료주기실험실이며 추출된 플루토늄도 핵연료로 재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의 태도에 뿌리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서방측을 납득시키기는 힘든 상황이다.

 특기할 것은 북한이 서방측의 핵기술 이전을 전제로 재처리시설을 포기할 것을 내걸고 나선 점이다. 북한측은 한스 블릭스 총장이 가스냉각, 흑연감속형 원자로가 비용도 많이 들고 체르노빌과 같은 사고위험이 있으니 경수로로 전환하라고 권고한 데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李哲 제네바 주재 북한대사는 10일 <교도통신>과의 회견에서 “미국이나 일본이 우라늄 농축기술과 경수로기술을 제공하면 핵연료 재처리시설의 개발을 단념할 용의가 있다” 고 밝혔다. 그는 6월1일 북경에서의 북한 , 미국 접촉에서 북한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계획’을 설명한 데 대해 미국측이 이해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리처드 솔로몬 미 국무성 동아시아, 태평양담당 차관보 역시 <산케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북한이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시설을 건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혹자는 북한의 이같은 적극적 태도변화를 비밀 핵개발 은폐를 위한 일종의 ‘평화공세’로 간주한다. 북한은 애초부터 핵무기제조의사나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라는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어느쪽이 옳건 간에 북한이 핵문제와 관련하여 상당히 유화적이고 누그러진 자세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을 다녀온 한스 블릭스 총장도 “북한이 사찰에 협조적이었고 태도도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핵사찰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미국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양새 좋은’ 해결방식을 찾는 모습이다. 미 의회 조사국의 래리 닉스 연구원은 “한미 양국 정부는 최소한 한미 안보이해의 손상을 최소화하기에 적절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다자간 안보체제의 구성이다. 이는 이미 베이커 국무장관에 의해 제시된 2+4회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외교안보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多者的 접근이 오히려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선 당사자인 남북한의 합의를 끌어내는 데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제 남은 절차는 15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국제원자력기구이사회와 7월10일 안에 국제원자력기구와 보조약정을 체결해 실시될 정기사찰인데, 이를 이행하면 일단 국제사찰의 첫 절차는 완료된다. 현재로서는 특별한 장애가 없다. 문제는 국제사찰과는 별도로 남북 간에 상호사찰이라는 현안이 걸려있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압력의 정도를 둘러싸고 정부 내에 강온 대립이 만만치 않아 오히려 정부 내 이견 조정이 시급한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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