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熹甲 교통사고 設과 진상 ‘딴판’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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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 확인 않고 보도…‘여자동행’ 사실과 달라

●문씨가 사고 초기에 운전자를 다른 사람으로 신고했다.
●사고가 난 시간은 지난 4월15일 오전이 아니라 전날인 14일 오후였다.
●사고 당시 문씨는 음주상태에 있었으며 함께 탄 사람이 친구인 정덕용씨가 아니라 여자였다.
 
대구서갑 보궐선거 당선자인 文熹甲씨(53)의 교통사고를 두고 지난 4월21일과 22일, 몇몇 일간신문은 정치면 가십란에 ‘說’의 이름을 빌어 위와 같은 내용을 기사화했다. 해당 인사의 도덕성을 시비하는 차원을 넘어 그의 정치생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치명적’인 說을 활자화한 이들 신문의 지면에는 그후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확인된 내용의 속보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미확인說’만 띄우고 확인기사를 뒷받침하지 않는 이같은 무책임성은 지난해 왜곡·과장보도로 피해를 입은 평민당 梁모위원의 ‘의경폭행사건’(《시사저널》89년 11월19일자 보도)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 일부 언론의 미확인보도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장확인을 통해 밝혀진 이번 사건의 ‘진상’은 언론의 횡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먼저 사고발생시간. 4월15일 일요일 오전 10시10분에서 20분 사이라는 것이 사고현장을 지켜본 주민들의 이구동성인데 목격자수가 2백명은 넘을 것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사고지점은 경주 보문관광단지에서 토함산 추령재를 넘어 동해안의 감포(문무대왕릉)와 울산 쪽으로 가는 2차선 국도에 있는 와읍교(경북 경주군 양북면 와읍리). 일요일인 이날 오전에는 행락 차량과 5일장인 양북장을 보러가는 주민 등으로 일대가 크게 붐볐다는 것이다.

 다리 바로 앞에서 사고순간을 목격했다는 金聲振씨(74 · 산불감시원)를 비롯한 주민들과 문씨 차와 충돌한 트럭의 운전자 李愚英씨(45 · 철물도매업·경기도 시흥시 도창동) 등의 이야기와 경찰조사를 종합하면 이날 사고는 문씨의 무리한 추월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자신의 차인 그랜저 3천cc에 친구 鄭德容씨(56 · 서울 서초구 방배동 · 건설업)를 태우고 가다 황색실선 지점에서 이씨의 4.5t 복서트럭을 앞지르고 지났을 때 길가던 소를 뒤늦게 발견하고 이를 피하려다 다 난간을 들이받았으며 트럭이 곧바로 추돌, 함께 다리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문씨는 행선지에 대해 “경주보문관광단지의 한 호텔에서 1박한 뒤 조용히 생각할 게 많아 문무대왕릉에 가던 길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문씨의 한 측근은 문씨가 ‘돈봉투’사건 관계로 전날인 14일(토요일) 대구에 내려와 지구당 당직자들과 대응책을 숙의한 뒤 함께 온 정씨의 제의로, “운전사는 주말이라 쉬게 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날 오후 경주로 떠났다고 말했다.

‘음주운전’가능성도 거의 없어

 ‘說’의 핵심이랄 수 있는 여자동승 관계 역시 사고 당시 현장에서 그 진위여부가 이미 명확하게 밝혀졌다. 사고가 나자 다리 아래로 뛰어가 구조현장을 지켜봤다는 김용삼군(14·양북중1)은 “함께 떨어진 트럭에서 2명이 나와 뒤집힌 그랜저의 유리창을 망치로 깨고 차안에서 사람들을 꺼냈는데 남자 2명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문씨의 음주 여부에 대해서 경찰은 “오전이라 음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측정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수술을 맡은 병원측이 “음주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뚜렷한 반증은 없으나 음주운전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은 문제는 사고 직후에 운전자를 누구로 신고했냐는 것. 정덕용씨는 “취재진이 몰려들자 병원에서 순간적으로 보안상의 필요를 느껴 내 이름을 댔으며 문의원이 의식을 회복하고 경찰조사가 시작됐을 때는 사실대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고 당일엔 정씨가 자가용 운전사인 것처럼 보도됐으나 다음날에는 “경찰조사 결과 문씨가 운전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속보가 나왔었다.

 이마 부위가 30㎝ 가량 찢기는 외상을 입고 대구가톨릭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동안 ‘면회사절’을 해왔던 文喜甲씨는 지난 25일 취재팀을 만나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무책임한 가십기사 하나 때문에 인격적으로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됐지만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한 ‘說’이 나돌고 기사로까지 나오게 된 것은 지난 보궐선거 과정에서 민자당과 문후보에 대해 느꼈던 국민들의 어떤 정서와도 혹시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번 선거와 사고를 겪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고 인생관도 달라졌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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